메모리 기업들의 감산 결정으로 움츠러들었던 D램 투자가 다시 본격화했다. ‘생성형 AI 시대의 필수품’으로 불리는 AI가속기의 성능을 끌어올릴 핵심 무기로 HBM 등 고부가가치 D램이 떠오르고 있어서다. 엔비디아, AMD 등 AI가속기 전문 기업에 더해 최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까지 AI가속기 자체 개발에 나서면서 D램 수요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D램 시설투자를 늘려 쏟아지는 주문에 대응할 계획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씨티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해 D램 시설투자액(건물투자 제외)은 95억달러(약 12조7000억원)로 2023년(87억달러) 대비 9.2% 늘어날 전망이다. 2020년 이후 최대 투자 규모다. 2025년엔 120억달러로 더 커진다.
지난해 감산한 SK하이닉스도 올 들어 ‘적극 투자’로 돌아섰다. 지난해 D램 시설투자액은 22억7000만달러로 2022년(63억달러)의 3분의 1토막 났지만 올해 71억달러, 내년 105억달러로 정상화된다. 피터 리 씨티증권 글로벌 반도체 헤드(전무)는 “내년엔 메모리 반도체 투자액의 65%가 D램에 집중될 것”이라고 했다.
변화의 움직임은 개별 기업에서도 감지된다. D램 세계 1위 삼성전자가 그렇다. 지난 5월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으로 부임한 전영현 부회장이 ‘반도체의 근원 경쟁력 강화’를 주문하고 있다. 한때 매출의 77.7%(2018년 3분기)를 담당한 반도체, 그중에서도 ‘장남’ 역할을 하고 있는 D램 사업이 먼저 경쟁력을 회복해야 전체 DS부문이 살아날 것이란 게 전 부회장의 판단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D램 신기술 개발에 드라이브를 걸고 P4 투자를 재개한 것도 전 부회장의 ‘D램 살리기’ 프로젝트의 연장선상이란 분석이 나온다.
SK하이닉스도 비슷하다. 낸드플래시 라인이 주로 깔린 충북 청주에 M15X 공장을 지으며 D램 생산 라인을 설치했다. 투자액은 5조3000억원, 이곳에서 생산된 최첨단 10나노급 D램은 2026년 HBM4에 들어간다.
늘어나는 투자와 캐파에 공급 과잉 우려가 있지만 반도체업계에선 ‘기우’라는 평가가 우세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구글, 알리바바 등 미국과 중국의 13개 빅테크가 계획 중인 AI데이터센터 투자액은 올해 2262억달러로 전년(1692억달러) 대비 33.7% 증가할 전망이다. 내년 투자액은 2566억달러로 커진다. 빅테크 투자액의 대부분이 AI가속기 구매에 활용되는 만큼 D램 호황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특히 내년 말 기준 D램 캐파의 26~28% 정도를 차지할 HBM 가격이 최신 범용 D램인 DDR5의 5~6배 수준인 것도 메모리 기업의 수익성을 높이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반도체업계에선 올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률이 40%를 돌파할 것으로 보고 있다.
황정수/김채연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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