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만원 날릴 뻔" 아찔…30대 직장인에 벌어진 일 [이슈+]

입력 2024-09-04 06:37   수정 2024-09-11 09:10


# 30대 직장인 고모씨는 최근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에서 전셋집을 찾다 사기를 당할 뻔했다. 전셋집 계약을 마친 후 이른바 '쪼개기 방'임이 드러나 계약을 파기하는 아찔한 경험을 한 것이다.

계약당일 주민센터에서 전입신고와 전세 계약 신고를 한 고씨는 주민센터 직원으로부터 "기존에 살던 세입자가 아직 이사한 곳에서 전입신고를 하지 않은 것 같다"며 "집주인에게 연락해 전 세입자가 얼른 전입신고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얘기를 들었다.

고씨는 해당 내용을 집주인에게 전달했고 집주인은 "알겠다"고 답했다. 이후 갑자기 부동산 공인중개업소로부터 "설명해 드리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연락이 왔다. 공인중개업소에 따르면 고씨가 계약한 방은 하나의 방을 여러 가구로 나눈 이른바 '쪼개기'를 한 곳이었다. 해당 유형은 전세 사기에 노출되기 쉬운 형태다. 해당 가구에 전입신고가 돼 있는 사람은 같은 층에 있는 다른 가구 사람이었다.

고씨는 "'설명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해당 집에서 나가겠다"고 공인중개업소에 통보했고, 다행히 전세 보증금 5000만원을 무사히 되돌려 받을 수 있었다. 이후 구청에 해당 공인중개사를 신고했는데, 이미 다른 세입자들로부터 신고된 상태였고 영업정지도 걸린 상태였다. 사실상 불법 중개를 하고 있던 셈이다.


고씨의 사례와 같이 빌라촌이 밀집해 전세사기 진원지로 꼽히는 화곡동엔 여전히 먹구름이 짙게 껴있다. 전세사기 사건이 터진 후 예비 세입자들은 화곡동 빌라(연립·다세대)를 외면하고 있다. 집주인들은 정부가 내놓은 전세 사기 방지책에 오히려 세입자들에게 돈을 내줘야 하는 처지로 몰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일부 부동산 공인중개업소에선 여전히 예비 세입자들을 상대로 위법 행위를 하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4일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 전세 보증금 반환보증 사고액은 2조6591억원, 사고 건수는 1만2254건으로 집계됐다. 빌라 전세 사기와 역전세 상황이 지속하면서 올해 상반기 보증사고는 지난해 상반기(1조8525억원)보다 43.5% 급증한 셈이다.

올해 전세 보증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한 지역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이었다. HUG가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1~5월 화곡동에서 보증사고 498건이 발생했다. 피해 규모만 1181억원에 달한다.


잇달아 전세 사기가 터지면서 화곡동 일대 빌라 등 주택들은 올해 초부터 무더기로 경매 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법원경매정보에 따르면 전날 기준 화곡동에서 나온 경매 물건은 168건으로 집계됐다. 다세대 주택·오피스텔·근린생활시설을 다세대 주택으로 불법 이용하는 근생빌라가 물건의 대다수를 차지했다.

전세 사기 여진이 계속되면서 해당 지역 임대차 시장은 전반적으로 얼어붙은 상황이다. 예비 세입자들은 여전히 화곡동 일대 빌라를 꺼리는 분위기다.

화곡동에 있는 A 공인 중개 대표는 "전세 사기가 터진 이후 화곡동 일대 빌라촌이 전부 기피 지역이 됐다"며 "집을 보러 오는 손님들 대부분이 '이 집, 문제없죠?'란 질문을 가장 많이 한다"고 전했다.

이어 "일단 빌라는 제외하고 나홀로 아파트라도 먼저 보는 경우가 많다"며 "빌라 전·월세 물건을 보고 가더라도 이들 중 다시 돌아와 계약을 맺는 경우는 손에 꼽는다"고 덧붙였다.

화곡동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최근에도 전세 사기와 비슷한 일이 여전히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한 손님이 '쪼개기'가 된 집에 계약했다면서 계약서 등을 들고 와서 괜찮은 집인지 확인하고 간 경우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세입자들이 '전세 사기' 우려에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면 집주인들 역시 강화된 규제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른바 '공시가격 126% 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전세 사기에 반환보증이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난해 5월 가입 요건을 강화했다. 보증한도를 공시가격의 140%까지만 인정해주고 담보인정비율도 90%로 낮췄다. 이에 공시가격의 126%까지만 반환보증을 받을 수 있는 '126% 룰'이 나오게 됐다.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지키기 위해 보증이 가입되는 전셋집만 찾아 나섰고, 임대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세입자를 받기 위해 보증금을 낮출 수밖에 없게 됐다. 집주인들은 보유한 현금 혹은 대출을 받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되돌려주면서 상황이 악화했다.

강서구에서 임대업을 하는 한 집주인은 "가지고 있는 빌라를 가구 수로 보면 10가구 정도 보유하고 있는데 126% 룰을 적용하면 기존보다 전세 보증금을 5000만원가량은 낮춰야 한다"며 "10가구면 5억원인데 이 금액을 내어주지 못하면 사기꾼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화곡동에 있는 B 공인 중개 관계자는 "세입자들이 빌라 전세를 꺼리는 데다 살고 있던 세입자들마저 나가는 경우도 있는 상황"이라면서 "전세 사기를 막겠다고 '126% 룰'을 적용하면서 집주인들이 보증금까지 돌려줘야 해 힘들어하는 임대인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달 8·8대책을 통해 연립·다세대주택, 다가구주택, 도시형 생활주택, 주거형 오피스텔 등 최근 심각하게 위축된 비아파트 주택의 수요와 공급을 활성화하고자 하는 내용을 포함한 '국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공급 확대 방안'을 발표했다. 다만 이 대책은 시장에 큰 의미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 회장은 "그동안의 정책적 불합리로 인한 비아파트 민간 시장의 정상화 회복보다는 공공 신축매입 공급 확대같이 정부의 주도로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무리하고 편향된 방안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며 "이마저도 치솟은 건축비로 인한 예산 부족, 부실한 임대 관리 및 공실 우려 등으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비아파트 주택 수요와 공급 위축의 핵심적인 원인과 구체적인 개선 내용이 모두 빠져있어 '알맹이 없는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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