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성인남녀 절반 이상이 '세컨드 잡'을 꿈꾸는 시대입니다. 많은 이들이 '부캐(부캐릭터)'를 희망하며 자기 계발에 열중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꿉니다. 이럴 때 먼저 도전에 나선 이들의 경험담은 좋은 정보가 되곤 합니다. 본캐(본 캐릭터)와 부캐 두 마리 토끼를 잡았거나 본캐에서 벗어나 부캐로 변신에 성공한 이들의 잡다(JOB多)한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편집자주>
모두가 궁금해했던 근황이었다. 암에 걸린 어머니를 위해 시골로 이사한 아들의 따뜻한 마음이 담긴 글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반향을 얻었다. 13세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성숙한 감수성과 눈빛을 자랑하던 소년의 모습에 그를 소개한 프로그램 출연진과 제작진뿐 아니라 이를 본 시청자들까지 감동했다.
8년 만에 훌쩍 자라 성인이 된 그는 최근 유튜브 채널 '우아한비디오'를 통해 "모델을 준비한다"는 의외의 근황을 전하며 다시 주목받았다. 모델 아카데미 케이플러스에서 마주한 그는 아직 프로 모델로 데뷔하지 않았지만, 비현실적인 비율로 이미 시선을 사잡는데 성공했다. "근황을 듣고 놀랐다"는 말에 "부모님도 모델이 되고 싶다고 하니 놀라셨다"면서 웃었다. 이어 "그렇다고 글쓰기를 포기한 건 아니다"며 "꾸준히 쓰고 있고, 앞으로도 쓸 것"이라며 글 쓰는 모델이 되고 싶다고 했다. 올해로 21세가 된 정여민의 포부였다.
정여민이 처음 세상에 알려진 건 2016년 방송된 SBS '영재발굴단'을 통해서였다. 2015년 제23회 우체국 예금·보험 어린이 글짓기 대회에서 정여민의 수필 '마음의 온도는 몇도일까요'가 마음과 마음을 나누는 따뜻함을 '온도'로 표현하며 8042대1의 경쟁률을 뚫고 대상을 받았고, 그의 남다른 감성이 발현될 수 있었던 어머니의 이야기가 공개됐기 때문. 희귀암 말기 판정받은 정여민의 어머니를 위해 그의 가족들은 경북 영양으로 이주해 생활했는데, 아픈 어머니를 챙기고, 자연을 벗으로 삼으며 자라난 감성이 글에 고스란히 담겼다는 평을 받았다.
방송이 큰 주목을 받았지만, 이후 정여민의 근황은 공개되지 않았다. 그는 그동안의 시간에 "조용히 학교에 다녔고, 대학교에 입학할 즈음엔 코로나19로 수업을 듣는 게 어려워 군대부터 갔다"며 "이름을 검색해보는 스타일이 아니라, 방송이 큰 관심을 받았다는 것도, 저를 찾는 분들이 많았다는 것도 주변에서 말해줘서 뒤늦게 알았다"면서 웃었다.
'영재발굴단'에 출연했을 때도 진행자였던 김지선이 그의 얼굴을 보며 "잘생겼다"고 했을 만큼 훈훈한 외모를 자랑했기에, "방송 이후 아이돌 소속사에서 연락은 안 받았냐"고 묻자 "부모님을 통해 온 거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그때 부모님이 다 관리를 하셔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많은 곳에서 연락이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낯을 많이 가리고, 부모님도 제가 말이 많은 편이 아니라 고민을 하셨던 거 같아요. 제가 모델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도 놀라셨어요. 그래도 계속 말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모델들이 워킹하는 걸 보며 '하고 싶다',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고, 부모님께 본격적으로 말씀드린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는데, 그 이후로 계속 얘기했죠."
188cm의 키에 손바닥만 한 얼굴 크기, 이미 모델로서 가장 중요한 신체 조건을 갖췄음에도 부모님께 말씀드리기까지에도 1년 이상 시간이 걸렸을 만큼 가슴 속에 꼭꼭 숨겨왔던 모델의 꿈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게 된 계기는 군대였다. "군대에 가서 많은 사람을 만났는데, 조심스럽게 꿈에 관해 얘기를 했을 때 주변에서 '도전해보라'고 응원해줬다"며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거 같아 전역 후 바로 서울로 와서 모델 아카데미에 등록했다"고 말했다.
정여민이 등록한 모델아카데미는 주우재, 이승찬을 비롯 장기용, 남주혁 등을 배출한 곳이다. 아카데미 관계자는 "이런 스토리가 있는지 몰랐을 때부터 성실하게 노력하고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으로 칭찬받았던 친구"라며 "과거 이력이 공개되면서 요즘 여기저기서 많이들 관심을 주시고 계신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정여민은 슬림한 모델 몸매를 만들기 위해 한 달 만에 5kg을 감량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연습할 때 미리 나와서 근력 운동을 하고, 추가로 1시간씩 더 해서 하루에 2~3시간씩 운동했던 거 같아요. 원래 대식가인데, 탄수화물도 끊고, 닭가슴살과 샐러드만 먹었죠. 빼는 건 쉽게 뺐는데, 유지를 해야 하니 그게 더 쉽지 않은 거 같아요.(웃음)"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도 모델을 준비하며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아이돌 뺨치는 콘셉트 포토로 화제가 됐던 사진 역시 "수업을 들으며 촬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DM으로 개인적으로 만나달라는 연락은 안 받냐"고 다소 짓궂은 질문을 하자 "그런 건 아예 확인도 안 하는 편"이라며 "솔직히 SNS를 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전에도 계정이 있긴 했는데, 거의 쓰지 않았어요. 그러다 군대에 가니 '안 하겠다' 싶어서 없애버렸고요. 모델 일을 배우면서 사진도 올리게 됐어요."
정여민의 도전이 알려진 후 주변에서도 응원이 이어지고 있다. 정여민의 근황이 공개된 유튜브 영상에는 "군대 후임이었는데, 항상 후임들을 챙겨주고,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마음으로 분위기를 좋게 이끌었다"며 "너무 칭찬만 하는 거 같은데 정말 그런 사람이고, 나중에 모델을 하나 문학을 하나 좋은 결과를 낼 사람"이라는 댓글도 등장했다.
"정말 군대 후임이 맞냐"는 질문에 정여민은 수줍은 미소를 보이며 "맞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군대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내성적이던 성격도 많이 바뀌게 됐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새로운 꿈을 응원해 준 이름 모를 사람들에게도 "그런 반응을 기대하며 방송에 출연한 건 아니었다"며 "완전히 새로운 도전인데, 응원해주시고 좋은 말을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인터뷰를 마친 후에도 "연습실에서 연습을 더 하고 갈 예정"이라며 지치지 않는 열정을 드러냈던 정여민은 "노래하는 것도 좋아한다"며, 지난해 자신에게 공개적으로 러브콜을 보낸 가수 박재정에게 "함께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거 같다"고 말해 앞으로 어떤 활약을 펼칠지 호기심을 자극했다.
"노래를 듣고 부르는 것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다 좋아요. 서울에 와서 바쁜 일상을 보내다 보니 요즘은 매일 할당량을 정해 '여기까진 읽자'하고 독서를 하고 있어요.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시간이 1시간이 넘는데, 그때 책을 봐요. 소설도 좋아하는데, 요즘은 재밌는 것도 좋지만 다양한 주제의 글을 보고 있어요. 글쓰기도 계속하고요. 수필과 시로 알려졌지만, 저 혼자 몰래 동화를 써보기도 했어요. 그래서 시나리도 작업도 해보고 싶고요."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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