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통상 부메랑 된 검역 장벽…수출로 먹고사는 현실도 돌아봐야

입력 2024-09-03 17:31   수정 2024-09-04 08:04

한국의 까다로운 위생검역 제도가 통상 문제로 번지고 있다. 정부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을 회원국으로 둔 세계 5대 경제블록 메르코수르와 2021년 9월까지 총 일곱 차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한 공식 협상을 벌였으나 검역 문제에 관한 견해를 좁히지 못해 결렬됐다. 2022년 3월 FTA 협상 재개를 선언하고도 2년 넘게 공식 협상이 없는 멕시코와의 장애물 역시 검역으로 전해졌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2023년 국별 무역장벽보고서’에서 한국의 동식물 위생검역 조치를 본격 문제 삼기도 했다.

검역은 인간과 동식물 보호를 목적으로 각국이 취할 수 있는 합법적 수입 규제 장치다. 문제는 한국이 유독 그 절차가 까다롭고 기간이 오래 걸려 사실상 비관세장벽으로 악용한다는 오명을 무릅쓰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5대 과일 가운데 수입이 자유로운 품목은 포도밖에 없다. 나머지 사과·배·감귤·복숭아는 엄격한 검역 절차로 수입을 사실상 막고 있다. 호주는 1989년, 일본은 1992년 한국에 사과 수출을 신청했는데 30년 넘게 절차가 진행 중이다.

국민 건강 안보 차원에서 검역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외국산 과일이 국내에 들어오는 과정에서 병해충이 함께 들어와 과수 생태계를 교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이 유독 사과와 배 수입을 막는 이면에는 농가를 보호하겠다는 정책 의지가 깔려 있다. 한국 사과가 세계에서 가장 비싸져 밥상 물가 상승을 부추기고, ‘사과와 배를 수입하지 않는 나라’라는 이미지가 우리 무역에 타격을 주는 건 그 후과다. 지난 설 명절 때 불거진 ‘금사과 논란’처럼 가격 폭등으로 소비자들이 사과 소비를 줄이거나 품질 낮은 사과를 찾는 데 따른 후생 감소가 생산자 이익보다 결코 작지 않다. 대만 홍콩 미국 등지에 사과를 수출하는 마당에 더 이상 ‘내로남불’ 태도를 유지하기도 어렵다.

국내 작황에만 수급과 가격을 맡기기보다 일정 정도 검역 장벽을 낮춰 수입을 신축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때가 됐다. 사과 시장을 개방하면 오히려 우리 농산품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개방을 기회로 반전시킨 포도와 한우를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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