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가락 정책에 은행권도 롤러코스터 [대출규제①]

입력 2024-09-06 06:00   수정 2024-09-06 08:35



“은행들은 1월 들어 대환대출(갈아타기) 프로그램이 주택담보대출(주담대) 등으로 확대된 것에 대응해 금리를 경쟁적으로 인하했다.”(2월 말 한국은행 ‘가계대출 대환 프로그램 시행의 영향 점검’ 보고서)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2단계 시행일을 7월 1일에서 9월 1일로 연기하겠다.”(6월 25일 금융위원회 발표)

“가계대출 증가액이 경영 계획을 초과한 은행은 내년도 시행하는 은행별 DSR 관리 계획 수립 시 더 낮은 DSR 관리 목표를 수립하도록 지도하겠다.”(금융감독원 8월 27일 ‘향후 가계부채 관리 대응’안)

금융당국의 대출 관련 정책이 수개월 단위로 뒤집어지며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당국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은행들도 곤혹스럽긴 마찬가지다.

당국은 올해 초까지만 해도 대환대출 인프라를 개시하고 정책대출을 확대하며 은행권의 금리인하 경쟁을 유도했다. 그러나 서울과 수도권 중심으로 주택시장 회복세가 나타나고 금리인하 기대 등이 더해져 가계대출이 큰 폭으로 늘자 은행권의 가계대출 취급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선회했다. 5대 은행은 지난 7월 이후 20차례 이상 주담대 금리를 올렸다. 그럼에도 아파트 가격이 꺾이지 않자 강력한 대출 규제책이 나왔다. 이제 은행권은 주담대 대출을 무주택자로 제한하거나 유주택자의 전세자금대출을 막는 등 대출 공급 줄이기에 나섰다. 사실상 9월을 기점으로 담보나 신용이 충분해도 대출을 받기 어렵게 된 것이다.

‘대출 절벽’을 피해 은행을 뺑뺑 돌던 소비자들은 인터넷전문은행, 보험사, 지방은행, 상호금융 등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지만 이곳 역시 은행권과 비슷한 방식으로 하나둘 대출 문을 걸어 잠그고 있다.

◆강력한 대출 제한 던진 우리은행

9월 1일 우리은행이 초강수 카드를 던졌다. 9월 9일부터 서울 등 수도권에서 집이 없는 사람에게만 전세자금대출(전세대출)을 내주기로 했다. 전 세대원 모두 주택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 예컨대 재건축·재개발 지역에 빌라 등을 매입하고 전세살이를 전전하고 있는 경우 우리은행에선 빌라를 처분하지 않는 이상 전세대출이 힘들다는 얘기다. 서울에 집이 있지만 직장이나 교육을 위해 생활권을 옮겨야 하는 서민들이 전세 계약이 만료된다면 다른 은행을 알아봐야 한다.

민간 은행권에서 유주택자의 전세대출을 제한한 것은 처음이다. 3년 전 부동산 폭등 시기에도 전세대출을 막은 적은 없었다.

우리은행은 “투기 수요를 방지하고 실수요자 중심으로 지원하기 위한 대책”이라며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세 연장인 경우와 9월 8일 이전에 전세 계약을 체결하고 계약금을 지급했을 때는 집이 있어도 전세대출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우리은행은 또 주택을 한 채라도 보유한 경우 서울 등 수도권에 주택을 추가로 구입하기 위한 목적의 대출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이사 시기 불일치 등에 따른 일시적 자금 부족 시에만 예외적으로 대출을 집행하기로 했다.

주담대 만기를 최장 40년에서 30년으로 줄이는 대책도 내놓았다. 앞서 KB국민은행도 수도권 소재 주담대 대출 기간을 최장 50년에서 30년으로 일괄 축소했고, 신한은행 역시 주담대 최장 만기를 50년에서 30년으로 줄이기로 했는데 우리은행도 이런 흐름에 올라탄 것이다. 돈 빌리는 사람 입장에서 주담대 만기 축소는 타격이다. 대출의 만기가 줄어들면 DSR 계산식에서 연간 갚아야 하는 원리금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결국 대출 한도가 축소된다.




◆금융권의 대출 공급 차단 릴레이

우리은행의 초강수 대책에 금융권은 긴장했다. 은행 한 곳이 대출 조이기를 실시하면 다른 은행으로 대출 수요가 쏠리는 ‘풍선 효과’가 발생할 수 있어 타 은행도 뒤따라 비슷한 대책을 시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미 움직임은 시작됐다. 대출 한도에 여력이 있던 시중은행은 물론 인터넷은행과 보험사도 대출 공급 차단 릴레이에 동참했다.

NH농협은행은 9월 6일부터 2주택 이상의 다주택자에 대해 수도권 소재 주택 구입 목적의 자금 대출을 잠시 중단한다. 임대인 소유권이전, 선순위채권말소(감액), 주택처분조건 등 조건부 전세대출도 한시적으로 막는다. 쉽게 말해 전세 끼고 주택을 매입하지 말란 얘기다.

모기지보험 상품(MCI·MCG) 가입도 제한해 사실상 대출 한도를 줄이기로 했다. MCI·MCG는 주택담보대출과 동시에 가입하는 보험이다. 보험이 없으면 소액임차보증금을 뺀 금액만 대출받을 수 있어 대출액 한도를 줄일 수 있다. 다만 저소득 실수요자는 보호하기 위해 주택도시기금(디딤돌)대출과 집단(잔금)대출은 제외한다.

농협은행은 지난 8월 21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이 올해 경영 계획 목표치의 52.3%다. 대출 한도에 여력이 있단 의미다. 하지만 주요 시중은행들의 가계대출 옥죄기로 대출 문턱이 낮은 농협은행에 수요가 쏠리자 급하게 규제 카드를 꺼낸 것이다.

보험사 중에선 삼성생명이 첫 타자로 나섰다. 삼성생명은 9월 3일부터 기존에 주택을 보유한 사람에게는 수도권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을 제한하라고 각 영업점에 통보했다. 특히 1주택자가 기존 주택을 처분하기로 하고 대출받는 형식의 ‘즉시처분조건부 대출’도 해주지 않기로 했다. ‘완전한 무주택자’만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원금을 제외한 이자만 일정 기간 낼 수 있는 ‘거치형 대출’을 중단하기로 했다. 이 경우 대출 이후 원리금을 함께 상환해야 해 대출자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한다.

보험업권의 주담대 금리 하단은 3%대 중반까지 낮아진 데다 은행보다 10%포인트 높은 DSR 비율(50%)이 적용돼 대출 한도도 더 많다. 이렇다 보니 대출 수요가 제2금융권으로 넘어오기 시작한 것, 이를 선제적으로 대처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8월 말 기준 삼성·한화·교보 등 3개 대형 생명보험사의 주택 관련 대출잔액(가마감 기준)은 30조6080억원으로 7월 말(30조2248억원) 대비 3832억원 늘었다.

인터넷은행 중에선 카카오뱅크가 나섰다. 집 없는 사람에게만 주담대를 실행하고 최장 만기를 50년에서 30년으로 축소한다. 임차보증금 반환이나 기존 대출 상환 목적이 아닌 생활안정자금의 한도도 1억원으로 제한한다.

카카오뱅크는 시중은행과 달리 이미 주담대 잔액의 증가폭(1분기 2조7000억→2분기 6000억원)이 쪼그라든 상태다. 지난 5월 여신 성장 목표치를 20% 내외에서 10% 초반으로 하향 조정하면서다. 다만 중도상환수수료 전액 면제를 내건 카카오뱅크에 수요가 몰리면서 더 바짝 고삐를 쥔 모습이다.

앞서 3번의 대출 대책을 발표한 국민은행은 이미 빡빡한 규제책을 내놓은 만큼 당분간 추가 대책이 없다는 입장이었지만, 우리은행의 대출 대책이 나온지 나흘 만에 1주택 세대의 수도권 주택 추가 구입 목적의 주담대 취급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또 신용대출 한도도 연소득 이내로 제한한다. 대출자가 다른 은행에서 빌린 신용대출 금액까지 한도에 포함할 방침이다.

예컨대 연봉 5000만원 직장인이 타 은행에서 2000만원 신용대출을 이미 받았다면 국민은행에서 가능한 추가 대출은 최대 3000만원까지다. 국민은행은 통장자동대출(마이너스 통장) 한도를 기존 1억5000만원에서 5000만원으로 대폭 감액한 바 있는데, 이 같은 제한을 신용대출 전반으로 확대하는 조치인 셈이다.

신한은행은 자체 DSR 도입을 통해 한도를 조정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고 상대적으로 대출 규제가 까다롭지 않은 하나은행은 아직 추가 대책이 없다고 밝혔다.


◆시장 혼란에 금융당국 ‘은행 탓’

급작스러운 초강력 규제에 시장은 혼란스럽다는 반응이다. 담보나 신용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돈을 빌리기 위해 은행 창구를 돌아다니는 ‘대출 유목민’이 늘고 있다. 온라인에선 ‘카카오뱅크와 케이뱅크의 주담대 오픈런에 성공하거나 실패했다’는 경험담이 나오고 ‘지방은행은 대출해준다는 기사에 연차를 내고 부산 등에 내려갔다’는 직장인의 사례도 떠돈다.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은 순번이 밀리며 기회를 뺏기고 금리가 높은 2금융권을 이용하는 실수요자가 늘어날 경우 서민들의 이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또 은행별로 대출 금리는 물론 대출 제한의 시기나 기준이 다 달라 현장에 혼선이 발생하고 있다. 가장 실수요에 가까운 전세대출까지 받기 힘들어지면서 금융소비자들의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부랴부랴 진화에 나섰다. 금융감독원은 9월 4일 간담회를 열고 실수요자 피해를 최소화해달라고 은행권에 당부했다. 풍선 효과를 막기 위해 2금융권 주담대에 대해서도 일일 점검 체계에 돌입한다고도 밝혔다.

최근 유주택자에 대한 주택 관련 대출을 전면 중단한 은행권의 대책에 대해선 “과한 조치”라고 지적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1주택자 분들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경우의 수가 있고 실제 투기 목적이 아닌 경우가 있어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건 (실수요자에게) 어려움이 있다”며 “1주택자는 무조건 전세대출이 안 된다는 등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금융당국과 공감대가 없었다”고 말했다.

당국의 오락가락한 정책에 금융권에선 볼멘소리가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모든 걸 ‘은행 탓’으로 돌린다”면서도 “내년 장사에 페널티가 있는 만큼 금융당국이 원하는 방향에 맞게 대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금감원은 8월 27일 ‘향후 가계부채 관리 대응’안을 발표했는데 “가계대출 증가액이 경영 계획을 초과한 은행은 내년도 시행하는 은행별 DSR 관리 계획 수립 시 더 낮은 DSR 관리 목표를 수립하도록 지도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일각에선 은행들이 제각각 내놓는 대책으로는 가계빚을 잡기는커녕 실수요자들의 주거 질을 떨어뜨린다는 의견도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10억짜리 집을 전세(6억) 끼고 산다고 가장해보자. 전세 들어오는 사람이 현금 5억이 있는데 은행권의 조치로 1억 대출을 못 받아서 결국 다른 곳을 알아본다. 세입자는 원래 구하고자 했던 집보다 더 낮은 전셋집으로 가고 이는 결국 갭투자의 하단만 내려갈 뿐 갭투자 자체를 잡지는 못한다”고 꼬집었다.


돋보기
‘막차 타자’에 주담대 9조 폭증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8월 말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 포함)은 568조6616억원으로 7월 말(559조7501억원)보다 8조9115억원 늘었다. 주담대는 7월 증가폭(7조5975억원)이 역대 최대치였는데 한 달 만에 1조3140억원을 웃돌아 2016년 이후 최대 월간 증가 규모를 기록했다.

앞서 지난 8월 29일 기준 주담대 잔액은 567조735억원으로 7월 말보다 7조3234억원 늘어난 상태였다. 2단계 스트레스 DSR 실행(9월 1일)을 앞두고 8월 30∼31일 이른바 ‘막차’ 수요가 몰리면서 이틀 만에 1조5881억원이 늘어난 셈이다.

신용대출도 한 달 만에 8494억원(102조6068억→103조4562억원) 늘었다. 올해 들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것. 주담대 문턱이 높아지자 신용대출까지 최대한 끌어 쓴 것으로 풀이된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8월 말 가계대출 잔액은 725조3642억원으로 7월(715조7393억원)보다 9조6259억원 증가했다. 가계대출 잔액은 2016년 1월 이후 가장 큰 월간 증가폭이다. 기존 기록이었던 2020년 11월(9조4195억원)보다도 2000억원 이상 많다.






용어설명
스트레스 DSR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해당 차주가 한 해 갚아야 하는 원리금 상환액을 연 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차주의 전체 금융부채 원리금 부담이 소득과 비교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가늠하는 지표다. 현재 은행권의 경우 대출자의 DSR이 40%를 넘지 않는 한도 안에서만 대출을 내줄 수 있다.

스트레스 DSR은 기존 DSR보다 강력한 규제다. DSR 산정 시 미래 금리 변동 위험을 반영해 대출 금리에 ‘스트레스(가산) 금리’를 더해 대출 한도를 계산토록 하는 제도다. 예컨대 대출 금리가 5%이고 스트레스 금리가 1.5%라면 대출 한도 산정 시 총 6.5%의 금리를 적용하는 것이다.

정부는 9월부터 가계의 대출한도를 더욱 줄이는 2단계 스트레스 DSR 규제를 시행했다.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신용대출과 2금융권 주택담보대출에 0.75%포인트, 은행권 수도권 주택담보대출에는 1.2%포인트의 가산금리가 적용되고 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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