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는 원래 바닷가에서 하던 운동이다. 아니, 운동보다 놀이에 가까웠다. 15세기 스코틀랜드 동쪽 해안 링크스(Links) 지역 모래언덕에서 처음 시작했다는 게 정설에 가깝다. 이후 잉글랜드, 아일랜드, 웨일스 등 영국 전역으로 확산했는데 그 원형은 유지됐다. 링크스 지역과 비슷한 바닷가 모래톱에 골프장이 주로 들어섰다. 골프장을 분류할 때 해안가에 있는 골프장을 흔히 링크스 코스라고 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골프에 자부심이 큰 영국인 중에선 지금도 링크스 코스가 아니면 진짜 골프장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더러 있다. 전통을 중시하는 이들은 자연적으로 생긴 게 아니라 일부러 조성한 벙커, 해저드마저 극도로 꺼린다. 지금도 영국의 오래된 골프장 상당수는 외부에서 가져온 모래를 쓰지 않는다. 이들의 ‘고집’ 덕분에 영국 골프장에선 원형에 가까운 골프 코스를 많이 볼 수 있으니, 이 또한 골퍼들에게 축복이 아닐까.
안타깝게 한국에선 이런 링크스 코스를 찾기 어렵다. 애초부터 골프장이 서울 인근을 중심으로 생겼으니 이걸 바라는 게 사치다. 한국의 많은 ‘명문 골프장’은 산을 깎고, 인공 호수를 조성하고, 잘생긴 나무를 심어 그 명성을 얻었다. 링크스 코스가 최근 여러 곳에 생겼지만 여전히 한국의 골프장은 산악 코스, 파크 코스(공원 느낌의 평탄한 골프장) 위주다.
눈을 해외로 돌리면 링크스 코스가 지천이다. 특히 골프의 본고장 영국, 골프를 대중화한 미국, 넓은 해안선을 보유한 호주와 뉴질랜드엔 세계 최고 수준의 링크스 코스가 즐비하다. 골프다이제스트가 꼽은 2022~2023년 세계 골프 코스 톱10 가운데 9개가 링크스 코스인데, 대부분 영국, 미국, 호주에 있다. 물론 링크스 코스도 이런 톱 랭커 골프장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까이는 중국과 일본, 북마리아나제도 등에도 ‘접근성 좋은’ 링크스 코스가 있다. 가장 원형에 가까운 골프장에서 치는 골프는 어떤 맛일까. 링크스 코스의 세계로 떠나보자.
링크스 코스 베스트7
페어웨이 살짝 벗어나도 러프
'골프의 성지' 세인트앤드루스
세계서 가장 비싼 페블비치
바다 보며 절벽 라운딩 '환상'
승부욕 자극 로열카운티다운
블라인드홀 많아 길잡이 필수
세계적인 링크스 코스는 ‘골프의 메카’ 스코틀랜드를 비롯해 주로 영국에 있다. 세인트앤드루스, 로열카운티다운, 뮤어필드 등은 세계 골프장 순위에서 늘 상위권에 든다. 골프 ‘성지 순례’를 간다면 빼놓지 말아야 할 곳들이다. 현대 골프를 주도하는 미국도 빠지지 않는다. 서부 캘리포니아 페블비치와 사이프러스포인트, 동부 시네콕힐스 등은 영국 최고 골프장 이상으로 명성을 쌓았다. 최근에는 호주 로열멜버른, 뉴질랜드 타라이티가 무섭게 치고 올라와 이들의 자리를 위협 중이다.
(1) 스코틀랜드 '세인트앤드루스'
세인트앤드루스에는 ‘골프의 발상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 등의 수식어가 붙는다. 종교인이 성지 순례를 하듯 골퍼들이 살면서 꼭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골프장으로 꼽힌다.
미국프로골프(PGA) 4대 메이저 대회인 브리티시 오픈(디 오픈)이 열리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디 오픈은 4대 메이저 대회 중 가장 오래됐으며, 미국 외 국가에서 열리는 유일한 대회다.
골프장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한 곳이기도 하다. 인공 조형물을 배제하고 세월이 지나며 생긴 자연스러운 지형을 그대로 살렸다. 페이웨이는 대부분 일직선으로 비교적 단순하지만, 벙커가 깊어 한번 빠지면 나오는 게 쉽지 않다. 바닷가 바람에 모래가 자꾸 쓸려 나가 벙커를 깊게 했다고 한다.
(2) 아일랜드 '로열카운티다운 골프클럽'
영국을 대표하는 골프장 중 하나다. 북아일랜드 다운 카운티의 뉴캐슬에 있다. ‘신(神)이 내린 골프코스’란 수식어가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듣는다. 챔피언십 코스가 특히 유명하다. 디 오픈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올드 톰 모리스가 1889년 설계하고, 이후 여러 코스 디자이너가 다듬었다.
골프장은 대자연 한가운데 있다. 큰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바로 옆으로 대서양이 파도친다. 모래 해변이 사방에 펼쳐지고, 파도 소리를 바로 옆에서 느낄 수 있다. 코스 난도는 매우 높은 편이다. 러프와 페이웨이는 경계가 모호하고, 사구가 도처에 있다. 상당수가 블라인드 홀이어서 티샷을 할 때 어떻게 쳐야 할지 일러주는 ‘길잡이’가 있어야 한다.
(3) 미국 '사이프러스포인트'
페블비치 골프장과 쌍벽을 이루는 미국 서부 해안의 대표 골프장이다. 1928년 개장한 이곳은 1921년 US여자오픈 우승자인 매리언 홀린스와 전보를 발명한 새뮤얼 모스의 손자가 함께 조성한 곳이다. 오거스타내셔널을 설계한 앨리스터 매킨지가 로버트 헌터에 설계를 맡겼다. 샌프란시스코 남부 몬터레이반도에 있다. 페블비치와 가까워 두 골프장을 함께 가는 사람들도 있다.
코스 길이는 짧은 편이지만 난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특히 파3 16번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어려운 홀로 명성과 악명이 동시에 높다. 절벽 위에서 태평양을 가로질러 섬 같은 곳을 향해 티샷을 해야 한다. 캐리로 최소 220야드를 날려야 그린에 공을 올릴 수 있다. 웬만한 아마추어 골퍼는 버디는커녕 파도 하기 어렵다.
(4) 미국 '페블비치'
사이프러스포인트 회원권이 없어도 희망은 있다. 여기서 차로 5~10분 거리에 그 유명한 페블비치 골프장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골프장, 골퍼들의 꿈의 골프장으로 통하는 이곳은 다행히 퍼블릭이다. 물론 이 골프장은 비싸다. 그냥 비싼 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 1년 단위로 그린피가 바뀌는데, 현재 게시된 가격은 링크스 코스 기준 1인당 675달러. 90만원을 웃돈다. 여기에 카트 비용도 인당으로 받는데, 55달러다. 캐디 이용료는 155달러다. 모두 합하면 가볍게 120만원을 넘어간다. 세금과 팁을 포함하지 않은 금액이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골프를 치겠다는 사람이 줄을 잇는다. 페블비치엔 링크스를 비롯해 스파이글래스힐, 더링크스앳스패니시베이 등 4개 코스가 있는데 이 가운데 단연 링크스 코스가 인기다. 태평양 바다를 낀 링크스 코스는 바다와 절벽의 절경이 어우러져 최고의 풍광을 빚어낸다. 특히 파3 7번홀은 거리가 100야드 남짓으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짧은 파3홀’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다.
(5) 미국 '시네콕힐스'
1891년 개장한 이곳은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골프장이다. 미국 뉴욕 사우샘프턴 지역에 있다. 미국 동부 최고의 골프장 중 하나다. 설립자들은 스코틀랜드의 링크스 코스를 염두에 두고 코스를 설계했다. 미국 골프장 가운데 가장 스코틀랜드스러운 코스로 이름났다.
코스에서는 나무를 보기 힘들고, 페어웨이를 조금만 벗어나도 억센 러프가 나온다. 최대한 자연환경을 활용해 코스를 설계했다. 남자 프로 선수들조차 이곳에선 언더파를 치기 어려울 만큼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2018년 브룩스 켑카가 이곳에서 열린 US 오픈에서 우승했을 때 최종 스코어가 1오버파였다.
(6) 호주 '로열멜버른 골프클럽'
골프장 이름에 ‘로열’에 붙었다는 것은 영국 왕실이 칭호를 내렸다는 의미다. 1891년 호주 빅토리아주 블랙록에 조성된 이 골프장은 4년 뒤인 1895년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로열 칭호를 받았다. 호주 골프장 중 최초였다.
골프장에서 바다가 보이긴 하지만 다른 세계적인 링크스 코스와 다르게 맞닿아 있진 않다. 그럼에도 최고의 링크스 코스로 꼽히는 이유는 지형을 최대한 활용한 초기 골프장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블랙록은 모래톱이 길게 이어져 있어 ‘샌드 벨트’로 불리는데, 이곳에 로열멜버른 외에도 많은 명문 골프장이 있다.
(7) 뉴질랜드 '타라이티 골프클럽'
역사가 100년이 훌쩍 넘는 명문 링크스 코스와 달리 이 골프장은 10년도 안 된 ‘신상’이다. 뉴질랜드 북섬에 있으며, 2015년 10월 개장했다. 미국 최고의 코스 설계가인 톰 도크가 디자인했다. 리디아 고가 지난해 신혼여행 중 이곳에서 홀인원을 했다고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 지어졌지만 인공 설치물을 최소화하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극대화한 것은 여느 명문 링크스 코스와 다르지 않다. 세계 최고 골프장을 타깃으로 했지만 멋을 내거나 과장된 설계가 전혀 없다.
한국서 가기 좋 링크스 코스2
아시아 100대 골프 코스로 꼽혀
인천서 1시간…한국어·음식 다 갖춰
골프장 내 최고급 호텔·휴양시설도
링크스 코스를 해외 골프장에서, 그것도 세계 최고 수준의 골프장에서 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영국 미국 호주 등 주로 한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에 있고, 설령 갈 수 있다고 해도 부킹이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원제 골프장은 클럽하우스에 입장조차 거부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한국 인근에도 훌륭한 링크스 골프장들이 있다. 중국 아시아나 웨이하이 컨트리클럽&리조트, 사이판 코럴오션리조트 등이 대표적이다. 짧은 일정이 가능하고, 부킹이 크게 어렵지도 않다. 한국 기업이 운영해 한국어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거리. 중국 웨이하이에는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링크스 코스가 있다. ‘아시아나 웨이하이 컨트리클럽&리조트’(AWCC)다.
이곳의 지형은 독특하다. 용이 누운 모양을 한 기다란 돌 지형이 반도에서 삐죽 튀어나와 바다와 접한다. 사실상 섬 같은 곳에 코스를 조성해 18홀 모두에서 바다 절경을 보며 플레이할 수 있다. 세계적인 코스 설계사 미국 골프플랜의 데이비드 M 데일에게 설계했다. 제주 클럽 나인브릿지, 전남 해남 파인비치 골프 링크스, 경기 여주 해슬리 나인브릿지 등을 설계한 유명한 코스 디자이너다. 그는 이곳을 리모델링하기 위해 수차례 현장답사를 한 뒤 있는 그대로의 자연과 어우러진 코스로 재탄생시켰다. 골프트래블은 2022~2023 아시아 100대 골프 코스에 이곳을 선정하기도 했다.
그림 같은 풍경이 모든 홀에서 펼쳐지지만, 특히 12번홀(파4)과 16번홀(파5)은 해안절벽 사이 바다 위로 티샷해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내륙에서 가장 먼 5번홀(파3)은 망망대해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에도 좋다. 17번홀(파3)은 오후에 가면 수평선 너머 석양을 볼 수 있다. 전반적으로 거리를 많이 내는 것보다 정확도가 높은 샷을 해야 플레이하는 데 부담이 작다.
이곳의 또 다른 장점은 한국 골프장과 다름없이 편하게 시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거리가 제주도보다 더 가깝다. 당일치기는 쉽지 않지만, 1박2일 일정은 무리가 없다. 웨이하이로 입국하면 한 시간, 옌타이로 입국하면 한 시간 반이면 닿을 수 있다.
공항에서 골프장까지 셔틀버스가 다닌다. 인천에서 출발하는 제주항공의 오전 10시30분 비행기로 출국한 뒤, 옌타이에서 출발하는 중국 동방항공 오후 6시50분 비행기로 입국하면 1박2일 36홀 라운드가 가능하다.
거리만 가까운 게 아니다. 잔디가 한국 골프장에 가장 많은 벤트그래스여서 이질감이 적다. 그린 뿐 아니라 페어웨이에도 동일한 품종을 썼다. 또 한국어를 하는 직원과 캐디가 있어 외국어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 금호석유화학 계열사인 금호리조트가 관리 중이어서 한국어 서비스에 특히 신경 썼다. 클럽하우스에선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갈비탕, 육개장, 떡볶이 등 한국 음식을 판매한다. 소주와 막걸리도 있다.
웨이하이에는 다양한 관광코스도 있다. 청·일전쟁 기념관, 선박에 탑승해 유공도를 이동하면서 관람하는 섬투어가 대표적이다. 중국 3대 공연 중 하나인 ‘신유전기’를 큰 배 위에서 360도 회전하며 관람하는 공연을 보기에도 좋다. ‘위고몰’ 등 대형 쇼핑몰도 많아 쇼핑하는 데 부족함이 없다.
골프장 안에는 최고급 호텔과 빌라가 있다. 호텔은 스위트룸 50실, 디럭스 스위트 3실이 있다. 빌라는 세 개 지역에 총 26개 동이 있다. 모두 바다와 맞닿아 있으며 규모가 크다. 부대시설은 회의실과 노래방 등이 있다.
(2)코럴오션리조트 사이판
'PGA 10승' 래리 넬슨이 디자인
코스 길고 평평해 장타연습 제격
바다뷰 라운딩, 거북이 만날수도
미국령인 사이판은 에메랄드빛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이 때문에 과거 신혼여행, 여름휴가 여행지로 각광 받았다. 최근 베트남 필리핀 등 조금 더 ‘가성비’ 좋은 휴양지가 부상하면서 사이판의 인기가 다소 사그라들었지만, 그새 사이판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중 하나가 골프장 투어 목적의 방문객이 늘었다는 점이다. 호텔에서 바캉스를 즐기는 ‘호캉스’를 넘어, 골프와 바캉스를 함께하는 ‘골캉스’ 여행지로 떠올랐다.
코럴오션리조트는 사이판을 대표하는 링크스 코스다. 이랜드파크 해외법인 마이크로네시아리조트가 운영하는 코럴오션리조트 사이판은 리뉴얼을 거처 2022년 1월 새로 문을 열었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 10승을 한 래리 넬슨이 설계했다. 사이판 유일의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공식 규격 18홀을 갖추고 있다. 홀의 절반가량에서 태평양의 푸른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자연 지형을 잘 보존한 코스는 사이판의 독특한 특색을 보여준다. 예컨대 2차 세계대전 때 사용된 벙커와 동굴 등을 그대로 남겨 놓았다.
코스는 대체로 길고 평평해 장타자에게 유리하다. 벙커는 많지 않으며, 해저드도 찾기 힘들다. 파3 7번홀과 14번홀이 시그니처 홀이다. 바다를 넘겨 공을 쳐야 하는데, 바닷바람을 이겨내야 한다. 이들 홀에선 거북이가 자주 나타나 때때로 플레이가 지연되곤 한다. 대부분이 관광객이어서 플레이가 다소 늦춰져도 불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이들 홀은 황금빛 일몰 명소로도 유명하다. 골프장 측은 아예 ‘트와일라잇 와인 브리즈’란 이름으로 관광 상품화했다. 골프장 잔디 위에서 일몰을 감상하면서 와인과 치즈 플래터를 먹을 수 있다. 또 1번홀부터 골프 카트나 자전거를 빌려 7번홀까지 이동하면서 산책하는 ‘선셋 트레일’도 이용할 수 있다.
이곳의 장점 중 하나가 접근성이 좋다는 것이다. 사이판국제공항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다. 사이판국제공항은 사람이 많지 않아 입·출국 시 시간이 오래 소요되지 않는다.
인천에서 사이판국제공항까지 4시간 반가량 걸리지만, 공항에 닿기만 하면 골프장까지는 금세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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