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로봇 만드는 '로보팩처링'…부품 스캔한 뒤 스스로 조립·운반

입력 2024-09-05 17:34   수정 2024-09-13 17:48


지난달 29일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에서 서쪽으로 약 100㎞ 떨어진 소도시 베스테로스. 세계 최대 로봇기업인 ABB의 ‘심장’으로 불리는 로봇·자동화기기 생산공장에는 사람보다 로봇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산업용 로봇 ‘IRB 8700’은 모니터 뒤편에 선 사람의 지시대로 긴 팔을 뻗어 수십 개의 나사를 조이고 있었다. IRB 8700이 제조하는 건 자신의 ‘발’(회전축)이었다. 로봇이 로봇을 만드는 셈이다. 그렇게 제작한 회전축은 무인운반로봇(AGV)에 실려 다음 작업장으로 옮겨졌다. IRB 8700은 둘러본 작업장마다 배치돼 있었다. 한곳에서는 용접을, 다른 곳에선 부품을 조립했다. 최대 1t짜리 부품을 들어 차곡차곡 쌓는 것도 IRB 8700이었다.

클라에스 벵트손 ABB 로봇·자동화기기 관리매니저는 “조립, 적재, 용접 등은 로봇이 맡고, 사람은 관리·감독하는 식으로 일을 나눴다”며 “로봇이 자신과 똑같이 생긴 로봇을 만드는 게 주된 업무”라고 말했다.
○‘로보팩처링’ 시대 온다

로봇이 산업 전반의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로보팩처링’(robot+manufacturing)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운반, 용접처럼 한 가지 일만 하는 수준을 넘어 부품 조립 등 여러 기능을 동시에 맡는 똑똑한 산업용 로봇이 현장에 배치돼 로봇이 로봇을 만드는 모습이 현실이 됐다.

베스테로스 공장은 로보팩처링의 상징과 같은 곳이다. 회전축 작업장에서 만난 IRB 8700은 부품 바코드에 담긴 ‘작업 지시’를 읽은 뒤 그대로 수행했다. 조립을 마친 후 AGV에 싣는 것도 IRB 8700 몫이었다.

이 공장은 사람이 일하는 곳과 로봇이 일하는 구역을 따로 나누지 않았다. 사람과 로봇이 어우러져 함께 일한다는 얘기다. 벵트손 매니저는 “로봇에 카메라와 인공지능(AI)을 적용해 스스로 사물을 인식하고 작업을 한다”며 “사람은 일을 지시하고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식으로 로봇과 협업한다”고 설명했다.

로봇 덕에 사람의 일은 과거와 완전히 달라졌다. 베스테로스 공장 입구엔 로봇을 통한 공정 효율화에 기여한 직원들에게 주는 ‘혁신상’ 수상자들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이날도 공장 한쪽에 ‘로봇 작업 방식 효율화’를 주제로 한 작은 토론회가 열렸다. ABB 관계자는 “ABB 직원에게 가장 중요한 업무는 로봇이 일을 더 잘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장 필수품 된 산업용 로봇
로봇과 사람의 협업에 방점을 둔 것은 세계 5위 산업용 로봇기업 일본 야스카와전기도 마찬가지다. 지난달 8일 찾은 기타큐슈 제1공장의 협동로봇 ‘모토맨’ 본체 조립 공정에는 사람(한 명)보다 로봇(네 대)이 더 많았다. 사람과 로봇이 한 팀을 이뤄 30여 개 부품을 조립하자 모토맨이 태어났다.

매달 모토맨 1200대를 쏟아내는 이 공장을 지키는 것은 사람 10여 명과 모토맨 25대, AGV 16대다. 야스카와전기 관계자는 “몇 년 전만 해도 사람이 직접 조립해야 하는 파트가 많았지만 정밀제어 기술이 발전해 지금은 대부분 로봇이 한다”고 했다.

1970년대부터 현장에 배치된 산업용 로봇이 ‘1차 전성기’를 맞은 건 1990년대였다. 저출생·고령화 여파로 일손이 부족해진 유럽과 미국, 일본이 ‘로봇 일꾼’을 대안으로 삼았다. 제조업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아무리 비싸도 공장에 로봇을 들여야 했다.

산업용 로봇은 2020년대 들어 ‘2차 전성기’를 맞았다. ‘세계의 공장’ 중국이 빠른 속도로 로봇 도입을 늘린 덕이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2020년 39만 대이던 산업용 로봇 신규 설치 대수는 지난해 59만3000대로 52.1% 늘었다. 2026년엔 71만8000대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2022년 기준 29만대를 설치해 세계 신규 설치 로봇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사람 손보다 빠르고 정확한 산업용 로봇 덕에 중국산 제품의 품질이 좋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산업계에서는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떠난 선진국 제조시설이 본국으로 ‘컴백’하는 배경에도 로봇이 있다고 본다. 높은 인건비와 인력난을 로봇이 해결해 주기 때문이다. 중국 상하이 등지에 로봇 공장을 지은 ABB가 다음 공장을 베스테로스에 세우기로 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ABB 관계자는 “로봇·자동화 공장 직원을 크게 늘리지 않고도 새 공장을 운영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고 말했다.

산업용 로봇은 이제 공장을 넘어 가정으로 파고들고 있다. 야스카와전기는 일본 맥도날드 매장에서 설거지와 포장, 청소 등 온갖 허드렛일을 하는 모토맨을 개발 중이다. 도시락을 포장하는 로봇도 연구하고 있다.

베스테로스=김우섭/기타큐슈=오현우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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