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새 놀라운 성장 속도를 보인 산업군을 꼽으라면 'K팝 업계'를 빼놓을 수 없다. 빌보드 차트 석권에 아시아는 물론 미국과 유럽까지 투어를 돌며 연일 매진 기록을 써 내려가는 아이돌들은 어느새 한국 문화의 자부심이 됐다.
해외 진출 공략에 맞춰 여러 외국인 작곡진들이 K팝 작업에 참여하고, 다양한 장르의 곡들이 쏟아져나오며 업계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좋은 성과가 나오는 만큼 경쟁도 더욱 치열해진, 말 그대로 '별들의 전쟁'. 아이돌 2세대부터 현재 5세대에 이르기까지 그 화려한 길을 음악으로써 빛내고 있는 프로듀싱팀 별들의전쟁*(GALACTIKA*)을 만나 K팝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 서초동 갈락티카 스튜디오에서 만난 강정훈(39) 대표 프로듀서(활동명 friday.)는 "오후에 출근해 새벽 5~6시까지 작업한다. 하루 12시간 정도 작업실에 머무는 것 같다"며 웃었다.
별들의전쟁*은 강 프로듀서가 고교 시절부터 친구였던 김창겸 프로듀서(CHANG)와 함께 결성한 프로듀싱팀이다. 2009년 애프터스쿨 'AH'로 데뷔해 씨스타19 '마 보이(Ma Boy)', 몬스타엑스 '아름다워', 워너원 '약속해요', 우주소녀 '버터플라이(BUTTERFLY)', 트와이스 '하트 셰이커(Heart Shaker)', '셋 미 프리(SET ME FREE)', 있지 '달라달라', '워너비(WANNABE)', '로꼬(LOCO)', '스니커즈(SNEAKERS)', 제로베이스원 '이터니티(Eternity)' 등을 작업했다. 2010년대 K팝 부흥기를 함께해온 이들은 꾸준히 인기곡을 만들어내며 K팝 최고 전성기인 현재 '히트곡 메이커'로 자리매김했다.
H.O.T., 유영진 프로듀서의 팬이었던 강 프로듀서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스무 살이 되던 해에 경북 구미에서 상경해 클럽에서 일했다. 이후 함께 살았던 김 프로듀서가 YG엔터테인먼트의 엔지니어로 입사하면서 많은 음악인과 연이 닿아 본격적으로 업계에 뛰어들었다.
그는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분이 유영진(전 SM엔터), 유건형(피네이션) 선배님"이라면서 "유영진 선배님의 '그대의 향기'라는 곡을 좋아했다. '지애'라는 앨범이 있는데, 그것도 당시에는 나올 수 없는 알앤비 앨범이었다. H.O.T. 곡은 정말 많이 들었고, 프로듀싱하신 신화 노래도 좋아했다"고 말했다.
당시 강 프로듀서에게 'K팝'은 감성을 건드리는 매력적인 곡이었다고 한다. 그는 "노래를 따라 부르다 보면 후렴에서의 폭발력이 팝과 비교도 안 되게 크다. 또 마이너한 감성을 건드리는 게 있었다. 이를테면 빅뱅의 '거짓말'처럼 신나는데 슬픈 곡이 외국에는 없다.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하는 게 신기했다"고 털어놨다.
패기로 똘똘 뭉쳤던 두 프로듀서는 "스타들이랑 계속 같이 일하게 될 거니까 그 '별들의 전쟁'에서 승리를 선물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자!"면서 팀명을 별들의전쟁*으로 지었다.
이름 따라 업계는 실제로 치열하면서도 화려한 전쟁판이 됐다. 내수시장을 넘어 전 세계로 영향력을 뻗어나간 K팝의 성장은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었다. 별들의전쟁*이 작업한 '로꼬'가 수록된 있지의 첫 정규앨범은 미국 빌보드의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 11위로 진입했고, '워너비'는 미국 내 싱글과 앨범 판매량에 따라 50만 이상을 기록하면 수여하는 미국레코드산업협회 골드 인증을 받았다.
강 프로듀서는 "살면서 K팝이 빌보드 차트에 오르는 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현업에 몸담고 있는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게 이뤄지는 걸 보면서 K팝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한 장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한글로 된 음악이 영어권 국가 등 메인 스트림에서 울려 퍼진다는 자체가 말이 안 되게 느껴지더라"면서 "내가 프로듀싱하는 그룹에 누가 되면 안 되고, 그들을 더 빛나게 해줘야 하니까 어느 시점엔 너무 커진 영향력이 좀 무섭기도 했다"고 전했다.
여러 기획사가 일본 시장을 뚫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그 변화는 더더욱 와닿는다. 이제는 도쿄 최고의 번화가 시부야 전광판에도 K팝 그룹이 크게 걸리는 때다. 해외여행을 하다 보면 K팝을 틀어놓고 춤추는 현지인들도 만날 수 있다.
강 프로듀서는 "일본에 갔는데 한 매장에서 있지 '워너비'가 나오는 걸 직접 들었다. 내가 만든 노래가 나오고, 그 안무를 따라 추는 걸 보고 너무 비현실적이고 이상하더라. 아내가 프랑스 여행을 갔다 왔는데 개선문 앞에서도 춤을 추고 있었다더라. 정말 신기했다. 또 씨스타19 '마 보이'도 갑자기 틱톡에서 유행해서 서양인들이 춤을 추는데 아직도 안 믿긴다"며 감탄했다.
저작권료 효자 곡은 단연 있지의 '워너비'라고. 강 프로듀서는 "있지가 이 스튜디오를 다 지어줬다"고 재치 있게 말했다. 있지와는 여러 차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 별들의전쟁*이다. 데뷔곡 '달라달라'로 있지의 당차고 주체적인 팀 컬러를 확실히 각인시켰고, 이어 '워너비'에 '로꼬'까지 히트에 성공했다.
강 프로듀서는 '달라달라' 작업 당시를 회상하며 "곡에 대한 자신이 있었다. 만들어놓고 만족스러웠던 곡이라 잘 될 걸 확신했다. 우린 많은 기획사, 레이블들이 필요로 하는 음악을 만드는데, 그 과정에서 온전히 우리 마음대로 했던 곡이 바로 '달라달라'였다. 우리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고, 또 제일 마음대로 한 곡이다. 별들의전쟁* 스타일과 부합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K팝에서 '성공하는 곡의 기준'은 무엇일까. '알고리즘'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그는 "팬 문화가 모든 분야에 다 적용돼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즐길 수 있는 시대다. 범대중적으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줄어드니까 팬들이 만족하고, 팬층이 넓어지는 효과로 이어지는 게 요즘 시대의 성공인 것 같다. 예전엔 A부터 Z까지 모든 사람을 사로잡아야 히트곡이었는데, 이젠 A에서 B, C 정도로만 확장해도 성공의 기준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을 밝혔다.
플레이어만큼이나 창작자들의 전쟁도 치열해진 요즘이다. 폭넓은 시장 공략에 따라 다채로운 장르, 여러 해외 인프라 등이 K팝에 유입되고 있다.
강 프로듀서는 "예전엔 작곡가 크레딧이 짧게 나왔는데 이제는 해외 작곡가분들이 너무 많으니까 크레딧이 엄청나게 길게 나온다. 오늘도 SNS에서 해외 작가들이 한국에 와서 송 캠프하고 있는 걸 봤다. 이분들과 경쟁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너무 무섭고, 머리가 아프기도 하다. 매일매일 전쟁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K팝 시장이 이렇게나 도전해 보고 싶은 시장이 됐구나 싶다"고 말했다.
자신들을 "살아남았다"고 표현한 그는 "애프터스쿨로 데뷔했는데 그 시절을 2세대라고 한다면 지금은 4세대, 5세대 그룹도 나오지 않았냐. 최근에 작업한 팀이 제로베이스원이다. 가끔은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을 때가 있다"며 미소 지었다.
별들의전쟁* 작업물의 특징은 유행을 무조건 좇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강렬한 비트 위주로 중독성을 불러일으키는 음악이 유행할 때도 이들이 작업한 곡에는 늘 귀를 확 사로잡는 '멜로디'가 살아있었다. 핵심 멜로디를 따라 다양한 장르의 장점을 입히는 '퓨전 그루브'는 곧 이들의 색깔이다.
강 프로듀서는 "K팝이 콘셉트 위주로 가고 비주얼·시각화에 치중하면서 멜로디컬한 부분이 많이 없어지기도 했다. 그게 매력이기도 하지만 더 많은 사람한테 소구하려면 그래도 멜로디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빌보드 차트에 올라간 곡들은 다 멜로디컬하고 쉬운 노래다. 그래서 난 오히려 이게 우리 강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멜로디를 잃지 않으면서 가사나 비트는 콘셉트에 충실해 만든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데 이질적인 느낌이 결합한 기시감이 우리 음악의 특징이다. 멜로디는 1, 2세대 때 들은 K팝 같은데 트랙 사운드는 요즘 느낌인 거다. 익숙한 것과 새로운 걸 끌고 와서 결합한 것,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음악. 그게 우리의 음악"이라고 부연했다.
2016년 설립한 팀 갈락티카는 어느덧 9년 차가 됐다. 두 메인 프로듀서를 필두로 JVDE, 지혜(AthenA), OGI, 우빈, NOAH, PABLO, And1, RIM 등 유능한 작가진들이 모여 고유의 색깔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지난 4일 발매된 그룹 여자친구 출신 예린의 '웨이비(Wavy)'는 메인 프로듀서들의 도움 없이 팀원들의 힘으로만 완성해낸 작업물이다. 콘텐츠 크리에이터 집단으로 단단하게 내실을 다져나가는 중이다.
"작곡가 팀이 얼마나 더 많은 히트 작곡가를 배출해내고 콘텐츠 그룹으로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어요. 9년간 브랜딩이 조금은 됐다고 생각해요. 이제 더 대중들에게 알려질 수 있도록 해봐야죠. 갈락티카라는 크레딧이 보이면 '얘네는 그런 음악을 하는 것 같아!'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나의 브랜드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K컬처의 화려함 뒤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땀방울이 있습니다. 작은 글씨로 알알이 박힌 크레딧 속 이름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스포트라이트 밖의 이야기들. '크레딧&'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을 하는 크레딧 너머의 세상을 연결(&)해 봅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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