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심장' 탓에 출산 포기했는데…'2세 기쁨' 안겨준 명의

입력 2024-09-06 17:30   수정 2024-09-07 00:53


선천성 심장판막 질환 탓에 수술을 받으면 평생 와파린을 복용해야 한다. 혈전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 때문에 아이 낳는 것을 포기하는 여성도 많다. 임신 주수 등 임신부 상태에 맞춰 적절한 약물을 활용해 맞춤 치료를 하면 출산할 수 있지만 여러 진료과 의료진이 모여 이를 꼼꼼히 관리하고 출산을 유도하는 게 쉽지 않아서다.

박성지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교수는 이처럼 ‘2세 계획’을 포기한 여성들에게 출산의 기쁨을 선물해주는 의사다. 판막 질환자들이 질환 없는 사람과 같은 일상을 살도록 돕는 다양한 연구 결과도 발표하고 있다. 박 교수는 6일 “외래 진료에서 만난 환자들의 안타까운 사연을 토대로 다양한 연구를 설계하게 됐다”고 했다.
○세계 최고 美심장협회지 단골 저자
박 교수는 심장 분야 세계 최고 학술지로 꼽히는 ‘미국심장협회지’ 단골손님이다. 올해 7월 대동맥판막협착증이 있어도 증상이 없다면 다른 질환으로 수술받아도 괜찮다는 내용의 논문을 해당 학술지에 발표했다.

심장의 좌심실과 대동맥 사이에 있는 대동맥 판막은 혈액이 역류하는 것을 막아준다. 판막에 문제가 생겨 딱딱해지면서 좁아지는 질환이 대동맥판막협착증이다. 이 질환이 있으면 심장에서 전신으로 혈액을 보내기가 쉽지 않다. 심장은 혈액을 잘 퍼뜨리기 위해 더 강하게 수축하고 이 때문에 심장 근육이 두꺼워진다. 결국 심장이 제 기능을 못해 호흡곤란, 흉통, 실신 등을 호소하게 된다.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는 암, 퇴행성 관절염 등이 생겨 병원을 찾아도 수술을 거부당해 ‘떠돌이 신세’가 되는 일이 흔하다. 수술 중 심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편견 때문이다. 삼성서울병원 등 일부 대형대학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배경이다.

박 교수는 2006~2007년 세계 최고 병원으로 불리는 미국 메이요클리닉에서 연수하면서 심장질환별 독립센터 시스템을 익혔다. 이를 한국형으로 바꿔 중증 환자에게 최적의 진료를 제공하는 다학제팀을 꾸렸다.

2016년 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 통증 원인을 규명한 연구 결과를 미국심장협회지에 공개했다. 환자들의 자기공명영상(MRI)을 분석해 관상동맥이 막히지 않아도 모세혈관이 제 기능을 못 하면 흉통이 생긴다는 것을 입증했다. 그는 “이를 계기로 판막 외 심장근육 검사까지 하는 게 진단 표준 프로세스가 됐다”고 했다.
○출산 포기한 여성에게 새 생명 선물
가임기 여성 환자의 출산을 돕기 시작한 것은 2010년께다. 거대 심장을 가진 엄마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어느새 중학생이 됐다. 이 산모는 이후 둘째아이까지 출산했다. 이 환자를 계기로 삼성서울병원엔 박 교수와 함께 고위험 임신부를 돌보는 산부인과 교수, 심장수술 상황에 대비한 흉부외과 교수가 모인 다학제팀이 꾸려졌다.

판막이 제 기능을 못해 금속·조직판막 등을 넣는 수술을 여러 차례 받은 환자는 평생 와파린을 복용한다. 이 약물은 태반을 통과해 태아 기형을 일으킬 수 있어 임부 1급 금기약이다. 약 때문에 사산하는 임신부도 많다.

이들이 병원을 찾으면 최적의 환자 맞춤 치료 전략을 짠다. 목표는 안전한 출산이다. 그는 “임신 초기, 중기, 말기로 나눠 태아가 불안전한 시기엔 와파린 대신 주사제를 쓴다”며 “임부와 태아 모두 문제가 없는지 계속 모니터링하면서 그때마다 상태에 맞춰 수시로 약물 처방 등을 설계해야 한다”고 했다.

환자를 진료하기 전 예습은 필수다. 임신부마다 주수에 따라 체중 변화가 다른 데다 태아 상태도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치료 설계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 어려운 환자를 끝까지 책임지는 이유를 물었다.

“다른 병원에서 힘들다고 보낸 환자를 포기할 순 없잖아요. 출산율도 낮은데 우리까지 어렵다고 하면 이 환자들은 갈 곳이 없습니다. 아이를 원하는 분은 고생 끝에 첫 아이를 낳은 뒤 둘째, 셋째까지 시도하는 사례도 많습니다. 의료진도, 환자도 생명의 소중함을 놓지 말자는 마음에선 같은 거죠.”
○“80세 이상 환자도 치료 포기 말아야”
박 교수는 중증대동맥판막협착증 환자의 허벅지 동맥으로 인공판막을 교체하는 타비 시술, 승모판막폐쇄부전 환자의 벌어진 판막 사이를 클립으로 집어 역류를 줄이는 마이트라클립 시술 등을 많이 한다. 20여 년 전엔 판막 질환이 있으면 가슴을 여는 수술을 받거나 약물로 증상을 조절하는 데 그쳤다.

80세 이상 고령층은 수술이 힘들어 치료를 포기하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심장 시술이 도입되면서 80세도 치료하는 시대가 열렸다. 박 교수의 외래 환자 30%가량이 80세 이상이다. 이들이 치료를 통해 왕성한 활동을 하는 것을 보는 게 그에겐 큰 보람이다.

대동맥 판막 협착증이 있으면 급히 움직일 때 흉통을 호소할 수 있다. 계단처럼 경사진 곳을 오를 때 숨이 차고, 멈췄다가 갑자기 움직이면 눈앞이 깜깜해지는 증상도 많이 호소한다. 이런 증상이 있다면 심장초음파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그는 “판막질환 치료는 마라톤처럼 전문가와 함께 같이 가야 하는 긴 여정”이라며 “치료를 시작했다면 증상이 나아진 것 같아도 의료진 판단을 믿고 끝까지 치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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