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쫓겨나는 K헬스케어 스타트업

입력 2024-09-08 17:23   수정 2024-09-19 12:53


국내 헬스케어 스타트업들이 해외로 나가 약 배송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글로벌 배달 플랫폼과 손잡거나 현지 유통기업의 배송 인프라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한국 의료산업 경쟁력이 규제에 발목 잡혀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버이츠 손잡은 닥터나우재팬
8일 업계에 따르면 비대면진료 스타트업 닥터나우의 일본 법인은 음식배달 플랫폼인 우버이츠와 제휴해 실시간 약 배송을 준비 중이다. 우버이츠와 앱프로그래밍인터페이스(API)를 연동해 30분 내 약 배송 인프라를 일본에 구축하기로 했다. 지난 7월 일본에서 비대면진료 서비스를 시작한 닥터나우는 야마토운수, 사가와익스프레스 등 택배회사와 협업해 약을 배송하고 있다. 이번에는 더 빠른 배송을 위해 배달 플랫폼과 새롭게 손을 잡았다.

닥터나우 관계자는 “일본은 약 배송을 요청받은 약사가 조제 전 환자에게 한번 확인받도록 하는 것 외엔 사실상 약 배송 규제가 없다”며 “배달 플랫폼을 활용해 시장을 공략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닥터나우는 코로나19 때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진료 관련 규제가 지난해 재개되자 일본으로 나갔다.

일본은 여러 유통기업과 배달 플랫폼이 약을 배송하고 있다. 아마존재팬과 약국체인 웰시아홀딩스가 처방약 배송 사업을 추진하는 게 대표적이다. 아마존 앱에 처방전이 올라오면 약국 체인과 연계해 조제하고 아마존 배송망으로 약을 나르는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약 배송 시장이 사실상 사라졌다. 코로나19 시기 하루 1만 건에 달한 닥터나우 약 배송은 현재 3~5건으로 줄었다. 다른 비대면진료 플랫폼인 나만의닥터도 하루 약 배송이 5건 안팎에 불과하다. 장애인과 일부 도서지역 거주민을 제외하곤 약 배송이 가로막힌 탓이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엔 여러 퀵배송 플랫폼과 협업했지만 이젠 택배 등으로 단건씩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스타트업들은 약 배송이 허용되는 미국 일본 등에 나가 사업을 모색하고 있다. 메디히어는 한국과 미국에서 투트랙으로 사업을 하다가 한국 사업이 규제로 주춤하자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미국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아이베브는 연 99달러 구독모델로 미국에서 비대면진료와 약 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룰루메딕은 베트남에서 재외국민 비대면진료 서비스를 선보인 뒤 서비스를 고도화하고 있다. 베트남은 비대면진료와 약 처방, 배송 등 관련 규제가 거의 없다.
글로벌 특구인데 약 배송은 ‘불가’
한국에서도 배달의민족 운영사인 우아한형제들이 편의점 상비약 배송을 위해 규제 샌드박스(의약품 배송 허용)를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신청했다. 하지만 약사회 등의 반발 때문에 사업이 멈춰선 상태다. 우아한형제들 관계자는 “상비약 배송이 처방약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며 “사회적 합의가 있을 때까지 편의점 상비약 배송은 보류 중”이라고 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최근 강원도를 인공지능(AI) 헬스케어 글로벌 혁신특구로 지정하고 분산형 임상(병원 등 지정기관 외 환자 자택 등 제3의 장소에서 일부 임상)을 할 땐 약 배송을 허용한다는 표현이 담긴 자료를 냈다가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에 뒤늦게 내용을 수정했다. 의료진이 직접 의약품을 들고 환자 집에 방문해 약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표현을 바꿨다. 헬스케어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규제로 끙끙대는 사이 해외로 기술력이 빠져나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고은이 기자 kok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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