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반도체 후퇴는 불황때 투자 줄인 탓…삼성·SK와 협력 강화할 것"

입력 2024-09-08 17:49   수정 2024-09-09 00:23


1980년대 세계를 주름잡던 일본 반도체산업은 이제 존재감마저 희미하다. NEC, 도시바, 후지쓰, 미쓰비시전기 등 일본 반도체업체들은 1980년대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점유율 10% 수준으로 추락했다. 1990년대 PC용 메모리 수요 확대 흐름에 대처하지 못한 것이 결정적 이유다. 그러나 일본에는 반도체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세계 최고 수준의 장비를 생산하는 기업이 있다. 세계 4대 반도체 장비업체 도쿄일렉트론(TEL)이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도쿄일렉트론의 ‘VIP’ 고객이다. 도쿄일렉트론의 시가총액은 10조3800억엔(약 97조7000억원)으로, 10년 만에 10배가량 불어났다. 일본에선 도쿄일렉트론을 두고 “애니멀 스피릿(야성적 도전정신)을 잃지 않는 거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최근 도쿄 아카사카 본사에서 가와이 도시키 사장을 만나 반도체산업 전망에 관해 들었다.

▷일본 반도체산업이 후퇴한 이유는 뭔가요.

“반도체산업의 특징은 기술 혁신이 빠르고, 변화도 활발하다는 점입니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선 대규모 미래 투자가 필요한데, 일본 반도체업체들은 경기가 나빠졌을 때 미래 투자를 축소했습니다. 그때 (한국 대만 등) 해외 반도체업체들은 적극적으로 투자했죠. 그런 차이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도쿄일렉트론은 계속 미래 투자를 합니까.

“향후 5년간 연구개발(R&D)에 1조5000억엔 이상 투자할 계획입니다. 설비투자에는 7000억엔 정도를 투입할 방침입니다. 글로벌 인재 채용도 대규모로 할 생각입니다. 매년 일본과 해외에서 1000명씩, 5년간 총 1만 명을 신규 채용할 예정입니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은 어떻게 전망합니까.

“챗GPT로 대표되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디지털 트윈을 포함한 가상현실 등 대량의 데이터를 즉각 처리하는 애플리케이션이 반도체산업을 계속 발전시킬 것입니다.”

▷시장이 얼마나 커질 것으로 보십니까.

“반도체 시장은 지난해 약 5300억달러였는데, 2030년에는 1조달러가 넘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1947년 트랜지스터에서 시작해 70여 년에 걸쳐 형성된 시장 규모와 같은 크기의 시장이 앞으로 7년 만에 하나 더 생기는 셈입니다. 그만큼 성장 잠재력이 크죠.”

▷반도체업계 과제는 무엇입니까.

“전력 소비 문제입니다. 이대로 가면 20~30년 후 에너지가 부족한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세계의 공통된 목표는 디지털과 탈탄소, 이 둘을 양립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반도체 기술 혁신이 점점 중요해질 것입니다.”

▷기술 혁신 포인트는 무엇인가요.

“크게 네 가지입니다. 우선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속과 대용량이죠. 높은 신뢰성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차는 고장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죠. 마지막으로 저소비 전력입니다.”

▷고성능 반도체가 더 많이 필요하겠습니다.

“현재 AI 가속기에는 4㎚(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에서 제작된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사용됩니다. 이 반도체의 트랜지스터는 800억 개 수준입니다. 여기에 141기가바이트(GB)의 고대역폭메모리(HBM) 6개가 붙습니다. 차세대 AI 가속기에는 2㎚ 공정에서 제조한 GPU가 3개 들어갑니다. 트랜지스터는 4800억 개로 예상됩니다. 현재 D램 8개를 쌓아 만드는 HBM도 5년 내 두 배인 16개를 적용하는 방식으로 고도화할 것입니다.”

▷도쿄일렉트론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습니까.

“고성능 HBM을 개발하기 위해선 패터닝(회로를 웨이퍼에 새기는 기술)이 매우 중요합니다. 도쿄일렉트론은 미세한 패터닝에 필요한 성막, 도포·현상, 에칭, 세정까지 네 가지 연속적인 핵심 공정에 필요한 장비를 보유한 세계 유일의 회사입니다. 특히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용 도포·현상 장비 세계 점유율은 100%입니다. 이 세상에 있는 반도체 중 도쿄일렉트론의 장비를 거치지 않은 반도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현재 제품을 더욱 응용해 차세대 제품을 생산할 계획입니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갈등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계속 상황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도쿄일렉트론의 장비는 대부분 일본에서 수출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 방침에 따라 적절히 대응할 계획입니다. 중요한 것은 세계 어딘가에선 반드시 반도체 투자가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한국 기업과의 협력 방안은 무엇입니까.

“한국에는 세계를 리드하는 고객사가 많습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죠. 도쿄일렉트론만으로는 세상에 가치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한국 고객사와의 파트너십을 강화해 세계 발전에 필수인 디지털화와 탈탄소의 양립을 실현하고자 합니다.”

▷5년 전만 해도 일본과 한국은 사이가 나빴습니다.

“정치적인 부분은 얘기하기 어렵습니다만, 도쿄일렉트론과 한국의 고객사는 서로 존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 좋은 관계를 소중히 유지할 것입니다. 한국 고객사와의 신뢰 관계를 통해 세계 발전에 공헌하고 싶습니다.”

▷디지털과 탈탄소를 양립하는 방안은 뭔가요.

“디지털에 ‘그린’을 입힌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동하지 않고 웹에서 미팅하는 것은 ‘디지털에 의한 그린’입니다. 데이터센터의 저소비 전력화는 ‘디지털 자체의 그린’이죠. 이 두 가지가 모두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반도체 기술 발전이 필수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반도체업계의 인재 쟁탈전이 치열합니다.

“중요한 것은 동기 부여입니다. 그래서 압도적인 퍼포먼스를 목표로 세웠죠. 2027년까지 매출 3조엔 이상, 영업이익률 35% 이상, 자기자본이익률(ROE) 30%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도쿄증시 프라임 시장에는 약 1600개 기업이 있는데, 3년 뒤 도쿄증시에서 이 목표를 달성한 유일한 기업이 될 것입니다.”

▷10년간 주가가 10배 뛰었습니다.

“우선 실적이 크게 상승했습니다. 글로벌 반도체 전공정 제조장비(WFE) 시장은 2014년 대비 올해 3.1배로 성장했습니다. 이 기간 도쿄일렉트론은 매출 3.6배, 영업이익은 6.6배 증가해 시장 성장률을 크게 웃돌 전망입니다. 여기에 미래 투자 계획과 성장 잠재력이 자본시장에서 평가받아 현재 시가총액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변동성이 커진 엔·달러 환율 영향은 없습니까.

“도쿄일렉트론의 장비 판매는 엔화로 거래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환율 변동의 영향은 한정적입니다.”

▷일본 반도체산업은 부활할 수 있을까요.

“반도체 관련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은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만큼 반도체 기술 혁신의 중요성이 인식된 것으로 판단됩니다. 일본에는 수많은 뛰어난 대학이 있고, 장비·소재업체 등 서플라이 체인은 강합니다.”

▷일본의 거시경제는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일본 경제는 완만하게 회복하고 있습니다. 엔저 영향으로 인바운드(외국인 관광객 방문)가 활발한 것이 이유 중 하나입니다. 반도체업계 성장도 일본의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쿄일렉트론은 10년 만에 주가 10배…'일학개미' 최다 매수
도쿄일렉트론은 1963년 설립된 일본 반도체 장비 회사다. 2023회계연도 매출 1조8305억엔(약 17조2000억원), 영업이익은 4563억엔(약 4조3000억원)으로 세계 4대 반도체 장비업체로 꼽힌다. 국내에서 일본 증시에 투자하는 ‘일학개미’가 최근 1년간 가장 많이 매수한 종목(상장지수펀드 제외)이기도 하다.

‘반도체 기술 혁신에 공헌하는 꿈과 활력이 있는 회사’를 비전으로, 60여 년간 기술 혁신에 매진했다. 코터·디벨로퍼, 식각, 세정, 성막, 테스트, 본더·디본더 등 여러 반도체 공정에서 세계 1, 2위 점유율을 지닌 장비를 생산한다. 보유한 특허는 약 2만3000건으로, 글로벌 반도체 장비 업체 중 1위다.

2만여 명의 임직원이 세계 19개 국가와 지역에서 근무하고 있다. 작년 이직률은 일본 사업장 기준 1.2%, 세계 사업장에서도 2.5%에 그쳤다. 이직률이 낮다는 것은 정보 보안 관점에서 고객사에 신뢰를 주는 포인트다.

올해는 매출 2조3000억엔, 영업이익 6270억엔을 목표로 하고 있다. 10년간 주가는 10배가량 올랐지만, 최근 1년 상승률은 약 4%에 그쳤다. 지난 2월 도쿄증시에서 사상 처음으로 소니를 제치고 시가총액 3위에 올랐지만, 이후 미국 기술주 하락 여파 등으로 현재는 10위권이다.

도쿄일렉트론코리아는 1993년 설립됐다. 경기 화성·평택·이천, 충북 청주 등 8곳에 사무소와 공장을 뒀다. 지난 6월엔 용인시가 조성 중인 ‘원삼 일반산업단지’에 입주하기로 했다. 도쿄일렉트론코리아는 지난해 매출 1조1965억원, 영업이익 711억원을 기록했다. 임직원은 약 2000명이다.

■ 가와이 도시키 사장 프로필

△1963년 출생
△메이지대 경영학부 졸업
△1986년 도쿄일렉트론 입사
△2007년 TPS(열 공정) 사업기획부 부장
△2010년 집행임원 겸 TPS BU장, SD(싱글 웨이퍼 증착) BU장
△2012년 집행임원 겸 SPS(표면 처리) BU장
△2015년 부사장 겸 COO
△2016년~ 사장 겸 CEO


도쿄=김일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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