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제 치킨을 만드는 훈연 오븐기. 치킨이 제대로 구워지지 않을 때가 많다. 덮개부와 히터부, 흡입부, 배수구 등 구성 요소를 모두 조사해보니 배수구로 인한 밀폐력 저하가 문제였다. 이는 ‘에어커튼’ 기술을 배수구에 적용해 해결했다. 공기를 아래쪽으로 분사해 내외부 공기 순환을 차단하고 냉방과 난방 효율을 높이는 역학 기술이다.
이렇게 서로 다른 분야 특허를 참고해 신기술을 개발하는 방법을 ‘이종분야 특허 검색 방법론(OPIS)’이라고 한다. 예를 들면 전자업계에서 생각하지 못한 기술적 아이디어를 건설업계에서 얻었다면 이종분야 특허 검색이 성공했다고 본다. 이 경우는 특허, 디자인 등 지식재산(IP) 침해가 성립하지 않는다. ‘콜럼버스의 달걀’을 떠올리면 된다.
과학기술 IP 주관 부처인 특허청은 최근 OPIS를 새로운 차원으로 확장했다. 이종 기업과 산업 IP에서 착안해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IP-C&D(Connect & Development) 사업을 새로 만들었다. IP 관련 빅데이터를 검색해 선행 IP를 회피하고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는 IP-R&D(연구개발)보다 한발 더 나아간 개념이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 중인 고비용 저효율 R&D 선진화 작업의 일환이기도 하다.
IP-C&D에 참여한 중소기업의 성과는 눈부시다. 어썸레이는 공기 중 미세먼지와 바이러스 등을 필터 없이 제거하는 X선 공기살균정화장치를 개발했다. 번거롭게 필터를 교체하지 않아도 되는 신기술이다. 이온 블로워(송풍) 기술에서 쓰는 X선 차폐 구조와 발광다이오드(LED) 광원 기술, 식기세척기에서 쓰는 기술을 벤치마킹해 이런 성과를 냈다.
X선 공기살균정화장치는 삼성전자, 인도네시아 병원 등 국내외 30여 곳에 공급됐다. IP-C&D 이후 어썸레이 직원 수는 세 배로 늘었고 26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 업체는 나아가 반도체 공정에 쓰는 극자외선(EUV) 포토마스크 보호용 초박막 필름을 탄소나노튜브(CNT)로 제조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카메라 스타트업 딥인사이트는 IP-C&D 사업으로 개발한 기술을 현대자동차에 납품했다. 운전자의 안면과 동공 등을 3차원(3D)으로 인식해 운전자 상태를 실시간 파악하고, 이상이 감지되면 안전 조치를 취하는 운전자인식시스템(DMS)을 개발했다.
DMS는 카메라 부착 위치가 중요하다. 딥인사이트는 룸미러 바로 뒤에 붙이는 DMS를 개발했다. 폐쇄회로TV(CCTV) 지지대 연결 구조와 컴퓨터 모니터 힌지를 참고했다. 제품은 현대자동차의 전기자동차 GV60에 적용됐다. 업체는 지난달 기준 누적 151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산업용 로봇 업체 쉐코가 IP-C&D로 개발한 해양 방제로봇 ‘쉐코 아크’는 사우디아라비아로 수출을 앞두고 있다. 기름 유출 사고 등 다양한 오염 사고에 군집으로 투입해 수질을 정화할 수 있는 소형 로봇이다. 쉐코는 유조차 탱크 내 격벽 구조, 비행기 날개 등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이 로봇을 개발했다. 해양경찰청과 해군 등에 제품을 납품했고 SK이노베이션 등으로부터 투자받았다. 특허청 관계자는 “사우디 아람코, 사우디 환경청 등과 제품 수출 및 투자 방안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티알은 IP-C&D로 휴대용 호흡기질환 진단기와 치료용 네뷸라이저를 개발했다. 산업용 배관과 액상형 전자담배 특허를 벤치마킹했다. 진단기는 국내 의료기관 200여 곳에 납품했고 지난해엔 베트남에 수출했다. 천식과 비염, 만성 폐쇄성 폐질환 치료에 쓰는 휴대용 네뷸라이저는 올해 국내 한 대형 제약사와 16억원에 초도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김완기 특허청장은 지난달 말 경기 안양 어썸레이를 방문해 생산 현장을 둘러보고 기업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김 청장은 “더 많은 창업 기업이 IP를 활용해 성장하고 수출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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