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육아와 가사노동 대부분이 여성에게 집중돼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과 네덜란드의 출산율을 가르는 가장 큰 원인입니다.”
페이터 반 더 플리트 주한네덜란드대사는 지난 6일 서울 정동 주한네덜란드대사관에서 “한국에서는 양육자로서 책임이 주로 여성에게 있다”며 “자유로운 육아휴직과 유연근무제도가 한국의 저출생 문제를 해결할 열쇠”라고 주장했다.
반 더 플리트 대사는 로테르담 에라스뮈스대에서 정치학과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1990년 네덜란드 외무부에 입부했다.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주일네덜란드 대사를 지낸 뒤 작년 8월 주한네덜란드 대사로 부임해 최근 취임 1주년을 맞았다.
지난 5년간 동아시아권에서 지내며 그는 저출생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밝혔다. 반 더 플리트 대사는 “한국과 일본처럼 저출생·초고령사회 등의 문제를 마주한 국가에서 생활하면서 정책 결정자들과 해당 주제를 두고 논의하다 보니 관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와 한국의 출산율은 큰 격차를 보인다. 지난해 기준 네덜란드의 합계출산율은 1.64명으로 한국(0.72명)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이런 차이는 부부의 양육참여도에서 기인했다고 반 더 플리트 대사는 진단했다. 그는 “유치원이 끝나고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보호자를 보면 한국은 대부분 여성(어머니)인 반면 네덜란드에서는 아버지와 어머니 비율이 비슷하다”며 “네덜란드의 유연한 근무환경 덕분에 맞벌이 가정에서도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수월하다”고 언급했다.
네덜란드에서는 원격근무, 유연근무가 정착돼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가 쉽다. 2022년 기준 네덜란드 전체 취업자 중 주당 35시간 이하 근무자 비율은 3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다. 여성의 시간제 노동 비율은 절반 이상(52.3%)에 달한다. 한국은 시간제 노동자 비율이 16.4%에 불과하다.
저출생이 심화하는 현상을 ‘느리게 진행되는 재앙’이라고 비유한 반 더 플리트 대사는 “한국이 출산율을 높이려면 육아휴직 제도가 확대돼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그는 “네덜란드의 육아휴직은 남성과 여성 모두를 위한 제도”라며 “여성의 육아휴직 기간이 길어지면 남성에 비해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지기에 오히려 여성의 빠른 근무 복귀를 장려하는 편”이라고 했다.
한국과 네덜란드에서 사회적 규범과 가족에 대한 정의가 다른 점도 짚었다. 반 더 플리트 대사는 “네덜란드에서는 전체 아이의 60%가 미혼 여성에게서 태어나지만 한국에서는 그 비율이 4%에 불과하다”며 “네덜란드에선 싱글 부모 가족, 동성 커플, 동거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는 게 차이점”이라고 덧붙였다.
한경제 기자 hanky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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