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명가’ SM엔터테인먼트에서 신인 아이돌이 지난 9월 데뷔했다. 엔터 산업의 수익력과 가치는 사람에 기초하는 만큼 신인 아이돌은 곧 기업의 미래 자산이다.
SM의 미래가 될 신인은 가상(버추얼) 인물 ‘나이비스’. 걸그룹 에스파 세계관에서 4명의 멤버를 돕는 ‘조력자’로 등장했던 캐릭터다. SM은 AI 음성 기술과 생성형 AI를 통해 나이비스를 웹툰과 게임, 브랜드 협업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나이비스의 신곡 ‘던(Done)’ 뮤직비디오는 공개 하루 만에 80만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댓글에는 호평이 잇달았다. 3D 아바타의 표현력과 자연스러운 움직임, 현실에 가까운 배경까지 기술력이 돋보였기 때문이다.
증권가에서는 이번 나이비스의 기술력이 너무 뛰어나다는 이유로 돈 걱정을 할 정도다.
나이비스가 데뷔하자 NH투자증권은 SM엔터테인먼트 목표주가를 기존보다 9% 하향했다. 제작 퀄리티가 예상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이화정 애널리스트는 “나이비스의 첫 프로모션 콘텐츠로 4분 길이의 영상이 공개됐는데 해당 영상의 높은 퀄리티를 감안할 때 편당 제작비가 결코 낮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훨씬 퀄리티가 낮았던 과거 버추얼 휴먼 ‘한유아’의 3분 길이 뮤직비디오 제작비가 5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시각효과 기술(VFX) 및 보이스AI 등 제작비용을 감안하면 나이비스 관련 데뷔 비용이 기존 추정치보다 높아졌을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비용이 늘어 수익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 목표주가를 낮췄다는 얘기다.
메타버스에 대한 관심과 인기는 신기루처럼 사라졌지만 AI 아바타를 활용한 버추얼 아티스트의 인기는 뜨거워지고 있다. 대중에게는 생소할지라도 수익과 직결되는 ‘팬덤’의 인기는 이미 정상을 찍었다.
올해 음악 스트리밍 플랫폼 멜론에서 차트 1위를 기록한 남자아이돌은 단 한 그룹뿐이다. 버추얼 아이돌 그룹 ‘플레이브’다. 역대 멜론 톱100 1위에 오른 K팝 남자 아이돌 그룹은 방탄소년단(BTS), 빅뱅, 엔시티 드림, 세븐틴, 엑소, 플레이브까지 여섯 그룹에 불과하다. 플레이브 인기가 K팝 간판 남자 아이돌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인 것이다.
플레이브의 인기는 이미 주류 아이돌 수준이다. 음악 방송에서도 지난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쳐 1위를 차지했다. 특히 8월에는 르세라핌(하이브), 엔믹스(JYP) 등 대형 엔터사의 여자 아이돌을 제치고 이룬 성과였다. 지난 4월에는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단독 콘서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공연은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팬덤의 화력이 숫자로 나타나는 앨범 판매량에서도 의미 있는 성적을 냈다. 플레이브의 데뷔 앨범의 초동(발매 첫 일주일간 음반 판매량)은 2만7000장을 기록했고, 미니 1집의 초동은 20만 장, 미니 2집의 초동은 50만 장을 넘어서며 판매량이 무섭게 뛰었다.
인기는 굿즈 판매량에서도 확인된다. 지난 3월 더현대에서 진행한 팝업스토어에서 굿즈 판매 수익은 30억원을 넘어섰다. 함께 진행된 버추얼 아이돌 이세계 아이돌·스텔라이브·플레이브 등의 팝업스토어에는 10만 명이 다녀갔고 70억원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한국을 접수한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는 일본까지 무대를 넓힌다. 플레이브 제작사인 블래스트는 하이브 재팬과 손잡고 플레이브의 일본 진출을 본격화했다.
버추얼 아이돌의 인기 요인은 K팝 아이돌의 인기 요인과 유사하다. 무대 연습부터 라이브 방송 등 일상생활을 공개하며 팬들에게 가깝게 다가가고 가수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서사와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일종의 ‘성취감’을 부여한다.
기술력의 발달로 버추얼 아이돌과의 ‘쌍방 소통’이 가능해진 덕이다. 모션 그래픽, 생성형 AI, 음성 기반 AI 등 기술이 발달하면서 2D 혹은 3D 캐릭터의 외형만 빌렸을 뿐 이들의 본체는 진짜 사람이다. 이들의 탄생 과정과 세계관이 탄탄함은 물론이고 인기 아이돌처럼 일상에서의 매력과 예능감을 뽐내며 팬들에게 다가갈 수 있다. 노래 실력이나 춤 실력 역시 ‘본체’의 실력을 그대로 따라간다.
플레이브 소속사 블래스트는 특히 캐릭터와 가수의 신체 비율 차이로 인한 간섭 문제, 실시간 모션캡처의 동기화 문제는 버추얼 관련 산업에서 공통적으로 겪는 기술적 한계를 극복했다. 블래스트는 MBC 사내벤처 1기로 출발해 영상 전문가와 게임전문가를 영입하며 기술적 한계를 해결했다.
이들은 특히 게임 개발에 사용하는 언리얼 엔진을 기반으로 시네마틱 배경의 실시간 영상과 버추얼 라이브 영상을 동시에 제작할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었다. 또 모션캡처의 고질적인 문제점과 실시간 라이브 환경에서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캐릭터가 움직일 때 신체의 충돌회피 솔루션을 자체 개발했다.
이 외에도 가수가 버추얼 환경에서 오브젝트와 상호작용을 하는 경우에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한 실시간 렌더링 보정 기술 개발, 다리와 발 부분의 동기화 오류, 간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정 기술 개발을 진행했다.
이 같은 기술력 덕분에 캐릭터들은 어떤 제약 없이도 노래와 퍼포먼스에 집중해 실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캐릭터가 가끔씩 뒤틀리거나 다른 캐릭터와 겹쳐지는 ‘오류’가 나기도 하지만 팬들은 이 또한 하나의 ‘재미 요소’로 인식하고 오류만 모은 영상을 제작해 콘텐츠를 재생산하고 있다. 이 영상이 오히려 ‘입덕 계기’가 되기도 한다.
플레이브 팬들 중 상당수는 릴스나 쇼츠 등 플랫폼에서 플레이브의 일상 영상이나 ‘오류’ 영상을 접하고 입문하게 됐다고 얘기한다.
플레이브 소속사 블래스트 이성구 대표 역시 성공 요인으로 현실에 기반한 ‘본캐’를 꼽았다. 그는 지난 4월 기자간담회에서 “플레이브는 기술은 버추얼 기술을 사용하지만 안에 내용물은 ‘사람 냄새’가 진하게 풍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준비할 때부터 멤버들이 직접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드리려 노력했다”고 말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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