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화가의 그림도 제작 연대와 스타일에 따라 천차만별의 평가를 받는다. 한국 현대미술 대표 화가 김환기의 대표적인 연작 ‘전면점화’(全面點畵) 중 최상급으로 꼽히는 것은 말년인 1970년대 초반 작품이다. 그중에서도 색이 푸른색이면 더 좋다. 2019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약 132억원(수수료 포함 153억원)에 낙찰된 1971년작 ‘우주’(원제 05-IV-71 #200)가 단적인 예다. 한국 미술품 최고 낙찰가 기록이었다.
그 기록이 깨질 수 있을까. 11일 크리스티에 따르면 ‘우주’와 같은 해 제작된 작품 ‘9-XII-71 #216’(사진)이 오는 26일 홍콩에서 열리는 ‘20세기/21세기 미술 이브닝 경매’에 나온다. 추정가는 77억5000만원에서 112억원으로 설정됐다. 2019년 ‘우주’의 경매 시작 전 추정가(73억~95억원)보다 높다.
작품성은 김환기의 전면점화 중에서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다. 반원형 소용돌이 패턴의 깊이감, 물감의 농담과 번짐 등이 절정에 오른 기량을 보여준다는 이유다. 희소성도 높다. 이때까지 경매 시장에서 거래된 1970년대 초 푸른색 전면점화는 총 20점도 되지 않는다. 이학준 크리스티코리아 대표는 “약 20년 동안 개인이 소장했던 작품으로, 경매에는 처음 나온다”며 “5년 만에 푸른색 전면점화 걸작을 선보이게 돼 영광”이라고 말했다.
크기는 두폭화 ‘우주’(254x254㎝)의 절반 수준(127x251㎝)이지만 소장자에겐 이 정도가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우주’는 크기가 너무 커서 역대 소장자 중 대부분이 원래 모습대로 작품을 전시하지 못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김환기의 대표작이라는 상징성을 감안하면 국내 ‘큰손’들이 입찰에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 “미술시장 호황기에 이 작품이 나왔다면 100억원은 가볍게 넘겼을 것이다”는 말이 미술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다만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게 변수다. 현실적인 낙찰가는 100억원 안팎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경매는 크리스티 홍콩의 새 본사인 ‘더 헨더슨’에서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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