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일·추석에도 출근시키는 회사 [정영효의 산업경제 딱10분]

입력 2024-09-19 07:06   수정 2024-09-19 09:01



2023년 추석은 9월 28일부터 10월 3일까지 6일간 이어지는 황금연휴였다. 그런데 전 국민이 느긋하게 연휴를 즐기기 시작하는 9월29일 출근해서 연휴 한 복판인 10월1일까지 일을 시키는 회사가 있었다.

대한민국의 산업정책과 자원·에너지, 그리고 통상 정책을 담당하는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다.월급 봉투의 두께보다 워라밸을 중시하는 시대에 산업부는 왜 민족 최대 명절의 한가운데에 직원들을 출근시킨 걸까.

여기서 또다른 질문. 경제지표는 경제 상황을 진단·분석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게 도와주는 중요한 통계자료다. 세계 모든 나라가 국내총생산(GDP), 물가, 생산, 소비 등 다양한 항목의 경제지표를 정기적으로 만드는 이유다.



숱하게 많은 경제지표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빠른 통계, 놀랍게도 우리나라가 만든다. 우리나라가 한 달 동안 얼마나 많은 '메이드 인 코리아' 제품을 외국에 팔고, 반대로 외국산 제품을 사왔는지 나타내는 수출입 통계가 주인공이다. 정식 명칭은 '산업통상자원부 수출입동향'이다.

얼마나 빠를까. 말 그대로 주문과 동시에 '땡'하고 나온다. 우리나라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져도 한 달이 끝난 바로 다음날인 매월 1일 오전 8시 수출입통계를 내놓는다. 다른 통계들이 평일 오전에 발표되는 것과 달리 수출입 통계는 무조건 매월 1일이다. 예외는 없다.



작년 추석 연휴 한복판에 산업부 무역정책국 수출입과 직원들이 출근한 것도 하필 2023년 9월 수출입 통계를 발표하는 10월1일과 겹쳤기 때문이다. 매월 1일 아침 8시 수출입 통계를 30페이지가 넘는 분석자료와 함께 내놓으려면 이틀 전부터 준비가 필요하다.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매월 1일 아침 '땡'하고 수출입 통계를 내놓는게 얼마나 빠른 지 실감하기 어렵다면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자.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출주도형 제조업 국가인 일본의 수출입 통계는 다음달 중순 후반에 나온다. 독일은 한 달이 넘게 걸린다. 다다음달 초반에야 나온다. 땅이 크고 주마다 분권 체제인 미국도 다다음달 초반에 발표된다.

한국 수출입 통계가 세계에서 제일 빠른 통계가 될 수 있었던 건 전산화가 가장 잘 이뤄진 나라 이기 때문이다. 수출입 기업들이 상품을 해외로 내보내거나, 국내로 들여오려면 통관 절차를 거쳐야 한다. 모든 상품의 수량과 액수를 관세청에 전산으로 입력한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매일 수출과 수입이 얼마씩 이뤄졌는지까지 파악할 수 있다.

통계가 빠른 대신 날림 아니냐는 오해가 있을 수 있다. 반대다. 세계 180여개 국가는 수출입 품목을 6자리 통일된 숫자(HS코드)로 관리한다.

HS코드가 '87 03 70'이라면 87은 자동차, 03은 자동차 중에서도 사람을 실어나르는 승용차, 70은 승용차 가운데 전기차 임을 나타낸다. 6자리 이후는 나라마다 사정에 맞게 자체적으로 코드를 추가해서 관리한다. 중국은 8단위, 일본은 9단위를 쓴다.



우리나라는 세계 공통 6자리에 네 자리를 더 붙여서 10자리를 쓴다. 이를 HSK코드라고 한다. 핸드폰 번호 국번이 세 자리에서 네 자리로 늘면서 사용할 수 있는 번호가 크게 늘어난 것처럼 6자리보다 10자리 코드가 수출입 품목을 훨씬 세부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

6자리 코드는 5609개의 상품을 분류할 수 있다. 중국처럼 8자리를 쓰는 나라는 분류할 수 있는 상품이 8957가지로 늘어난다. 10자리를 쓰는 우리나라는 1만1293개 상품을 분류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수출입 통계 관리가 얼마나 정교한지 9자리 코드를 쓰는 일본과 비교해 보자. 전기차 시대를 맞아 세계적으로 수요가 급증하는 리튬의 세계 공통 코드는 '28 41 90'다. 우리는 여기에 '9020'이라는 네 자리 코드를 통해 리튬염의 수출입 상황까지 매일 파악할 수 있다.



반면 일본은 '28 41 90' 다음에 '000'이란 세자리 코드로 '기타'로 분류한다. 똑같은 자원 빈국이지만 우리나라는 희토류의 하나인 리튬염의 수출입 상황을 일 단위로 파악할 수 있는 반면 일본은 불가능하다.

통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자료를 분석해서 부족한 부분을 파악해, 보완할 부분을 제시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정교한 통계를 가장 빨리 내놓는 덕분에 우리나라는 어떤 상품이 덜 팔려서 수출이 예상을 밑돌았는지, 어떤 상품이 잘 팔리고 있어서 올해 수출이 얼마나 늘어날 지까지 예측할 수 있다.

속도와 정교함을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수출입 통계는 발표 즉시 블룸버그통신 같은 글로벌 경제 매체들이 속보로 전 세계에 타전하고, 글로벌 투자은행(IB)이 참고하는 10대 지표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는다.



전세계가 주목하는 통계·분석을 위해 산업부는 직원을 말 그대로 갈아넣어야 한다. 수출통계는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정책국 수출입과에서 만든다. 사무관 2명과 주무관 2명이 조익노 무역정책국장과 이창훈 수출입과장의 지휘를 받는다.

12월 수출입 통계를 내놓기 위해 이들은 연말연시에 들뜬 12월30일부터 자료를 만들고, 매년 새 해 첫날 출근한다.



그런 점에서 2025년은 수출입과 직원들에게 악몽의 해다. 수출입 통계가 발표되는 매월 1일이 대부분 토·일·월요일이어서다. 4, 7, 8,10월 넉 달을 제외하곤 모두 휴일에 나와서 통계를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2028년 9월 30~10월 5일, 2031년 9월 30~10월 5일까지 역사적인 6연휴의 한 가운데가 수출입 통계를 발표하는 1일이다.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 수출에 진심인 걸까. 그건 우리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35%에 달한다. 어려서부터 못이 박히게 들었던 '수출 만이 살 길'이라는 구호는 올해도 반복되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는 생산과 소비, 투자가 모두 부진한 ‘트리플 감소’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은 한국 경제를 이끄는 유일한 엔진이다. 정부가 올해 수출 목표를 처음으로 7000억달러까지 늘려잡은 이유다.

11월30일은 '수출의 날'이다.(지금은 '무역의 날'로 이름을 바꾸고 날짜도 12월5일로 변경) 1964년 수출 1억달러를 처음 돌파한 날이다. 그로부터 60년 만에 우리나라의 수출은 7000배 늘었다. 수출에 진심이었던 덕분에 쓸 수 있었던 기적이다.



거의 항상 늘어만 왔기 때문에 수출입 관련 뉴스는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 쉽다. 하지만 출근길 아침 뉴스에서 무심히 흘려들었던 수출입 통계가 사실은 산업부 수출입과의 여수항 홍승범 사무관, 강유라 김지운 주무관의 눈물과 땀의 결실임을 알고 듣는다면 차갑고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수치 하나하나에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을까 싶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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