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갈고 나왔다" 김병주 회장의 '쩐의 전쟁'...'최윤범 백기사'가 성패 가른다

입력 2024-09-13 14:53  

이 기사는 09월 13일 14:53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MBK파트너스는 한국 자본시장에서 주주행동주의 두번째 대상으로 고려아연을 점찍고 경영권 장악을 위한 실행에 나섰다. 지난해 말 한국타이어그룹의 한국앤컴퍼니를 대상으로 했던 첫번째 공격과는 차원이 다르다. 한국앤컴퍼니 공개매수에 실패하며 자존심을 구겼던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반년 이상 칼을 갈면서 공격을 준비했다. 한국 자본시장에선 당분간 행동주의 전략에 거리를 둘 것이란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김병주 회장은 MBK가 가진 자본력의 힘을 과시했다. NH투자증권으로부터 1조5000억원을 단기 차입해 역대 최대 규모인 2조원 공개매수를 발표했다. 세부 전략도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고려아연 공격 지휘봉을 잡은 김광일 부회장은 평소 "100% 승리를 확신하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한국앤컴퍼니 때와는 다른 자신감이 묻어난다.

시장에서 주목하는 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방어 전략이다. 직접 동원할 수 있는 자금력엔 한계가 있는 만큼 우군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따라 경영권 방어 성공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공방은 단 10일"...MBK 집중 포격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MBK파트너스는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과 영풍정밀을 공개매수하는 데 최대 2조1332억원을 투입한다. 국내 공개매수 역사상 역대 최대 규모다. MBK파트너스가 지난해 한국앤컴퍼니를 대상으로 공개매수를 할 땐 공개매수 단가를 한 차례 높여 최대 6220억원의 자금을 투입할 계획을 세운바 있다. 이번 공개매수 규모는 지난번 보다 세 배 이상 크다. MBK파트너스가 공개매수 단가를 상향한다면 투입 자금은 더 늘어난다.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 전략을 세세히 뜯어보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는지가 엿보인다. 우선 공개매수 시기와 기간도 전략적으로 택했다. 자본시장법 시행령에 따라 공개매수는 최소 20일 이상 60일 이내의 기간 동안 진행해야 한다. 이 기간은 영업일 기준이 아닌 공휴일 포함이다. MBK파트너스는 22일 간 공개매수를 진행하지만 이중 추석 연휴와 공휴일을 제외한 영업일은 총 10일뿐이다. 자본시장 관계자들은 MBK파트너스가 최 회장 측에 방어할 시간을 최소한으로 주기 위해 추석연휴와 국군의 날 임시공휴일, 한글날이 낀 시점을 택했다고 보고 있다.

공개매수 단가와 공개매수 예정 수량에도 전략이 담겨 있다. MBK파트너스는 고려아연 발행주식을 최소 7%, 최대 14.6%만 사겠다고 했다. 최소치에 미달되면 공개매수 계획 자체를 접겠다는 단서도 달았다. IB업계 관계자는 "유동주식의 일부만 사들이겠다는 건 소액주주들에게 '내 주식을 공개매수 단가에 모두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심어준다"며 "심리전을 걸었다고 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공개매수 단가도 추후 한 차례 더 상향할 가능성을 감안해 보수적으로 설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반면 동시에 진행하는 영풍정밀 공개매수는 공개매수 가격이 2만원으로 발표 직전 주가보다 두배 이상 높았고, 공개매수 대상으로 유통주식 전량이다.

MBK파트너스는 공개매수에 나서기 전 영풍 및 장형진 영풍 고문 일가와 공동 의결권 행사 약정을 맺고 경영협력계약을 체결해 사실상 고려아연의 경영권도 확보했다. 공개매수와 지분 거래를 통해 MBK파트너스가 장씨 일가보다 고려아연 주식 1주를 더 확보해 최대주주에 오르면 고려아연의 경영권은 MBK파트너스로 넘어간다. MBK파트너스는 장씨 일가보다 이사회 구성원을 한 명 더 추천할 수 있고,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 선임권을 갖는다. 장씨 일가의 지분을 MBK파트너스가 사올 수 있는 콜옵션(주식매도청구권)도 받았다.
최윤범 우호세력 '장내매수 or 맞불 공매' 기대
최 회장은 MBK파트너스의 기습 공격에 맞서 대응책을 찾고 있다. MBK파트너스가 2조원 규모의 공개매수에 선언한만큼 개인 자금만으로는 방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재계 오너들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최 회장은 친분이 있는 대기업과 고려아연 협력사 등에게 백기사를 요청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 회장 및 특수 관계인이 보유한 15.9%와 현대차와 LG화학 등 백기사로 분류되는 지분 18.3%를 더하면 최씨 일가의 우호 지분은 34.28%에 달한다. 고려아연 자사주(2.39%)와 국민연금 지분(7.57%)을 제외하면 소액주주 지분 22.92% 중 6.05%만 취득하면 영풍 측 지분율이 과반을 넘는 걸 막을 수 있다. 시가로 따지면 약 7000억원 규모다. 최 회장이 직접 매수하긴 쉽지 않은 규모지만 우군들이 대거 나선다면 불가능한 규모는 아니다.

굳이 과반을 확보하지 않더라도, 시장의 기대감을 부추겨 공개매수를 불발시키는 방향으로 전략을 짤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최씨 일가의 우군 혹은 글로벌 사모펀드(PEF)가 공개매수가보다 더 높은 가격에 장내에서 유의미한 지분을 매집해 주요주주로 올라서게 되더라도 MBK의 전략에 금이 갈 수 있다. 아니면 5% 미만의 지분만 공개매수하는 맞불 작전으로 MBK 공개매수를 저지할 수도 있다. MBK가 공개매수를 파격적으로 올리지 않는 이상 불붙은 주주들의 기대감을 단번에 사로잡기 어려워질 수 있다.

다만 대기업 오너들이 공개적으로 최 회장의 백기사를 자처하며 고려아연 지분 매입에 나서줄지는 미지수다. 영풍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최 회장이 PEF인 원아시아파트너스에 불투명한 자금을 집행해 회사에 손실을 끼친 점들을 들여다보겠다며 회계장부 등의 열람 및 등사 가처분을 법원에 신청했다. 사법 리스크를 부각시켜 대기업의 백기사 참전을 사전에 차단하겠다는 조치다. MBK파트너스가 고려아연 주요 주주인 현대차 LG 한화 주요 경영진들과 접촉해 설득에 나선 것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차준호 / 박종관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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