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좋은 기후 찾아 떠도는 '유목 시대' 올 것"

입력 2024-09-13 17:15   수정 2024-09-14 01:05


살기 좋은 기후를 찾아 떠도는 유목 생활이 시작된다. 유목민들 손에 들린 건 기존 국가 여권이 아닌 ‘기후 여권’. 집은 마치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듯 돌아다닐 때마다 새로 짓는다. 3차원(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하면 어려울 게 없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79·사진)이 내다본 불과 수십 년 뒤의 미래 모습이다.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 <엔트로피> 등을 통해 경제·사회적 패러다임의 전환과 인류 문명이 맞닥뜨린 미래를 예리하게 포착해 왔다. 최근 세계 8개국에서 동시 출간된 <플래닛 아쿠아>에서 그는 ‘물’에 집중한다. 지난 9일 국내 언론과의 줌 인터뷰에서 리프킨은 “수권(水圈)의 재배치에 따라 신유목 시대와 임시 사회가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리프킨은 인류 문명의 발전이 수자원 인프라와 깊이 있게 연관돼 있다고 분석했다. 약 6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인도의 인더스 계곡, 중국 황허 등에서 인간은 물을 활용해 문명을 탄생시켰다. 댐과 인공 저수지를 건설하고 제방과 둑을 쌓는 등 인간의 필요에 따라 물을 길들였다. 잉여 식량이 증가하고 논밭에 필요한 일손이 줄어들면서 상대적으로 밀집한 지역으로 인구가 이동한 결과 대도시가 등장했다. 오늘날 수력 발전뿐 아니라 화력, 원자력 등 에너지 발전 역시 큰 부분을 물에 의존하고 있다.

리프킨은 “물과 인류의 관계를 다시 설정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화석연료의 남용으로 지구온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물이 인류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기 시작해서다. 북극과 남극의 해빙, 잦아지는 대홍수, 가뭄과 폭염의 장기화, 강력한 허리케인과 태풍 등 이상 기후가 그 증거다. 리프킨은 “지난 50년 동안 1인당 사용 가능한 담수량이 반토막 났고, 2050년까지 세계 수력발전 댐의 61%가 가뭄이나 홍수에 취약한 강 유역에 위치하게 될 것”이라며 “이제 물을 가두고 길들일 수 있다는 ‘오만함’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기후 변화와 함께 물의 길을 따라 대규모 인구 이동이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엔난민기구에 따르면 지난 14년 동안 기후·기상 이변으로 연평균 2100만 명이 강제 이주했다. 2050년엔 기후 난민이 12억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인 12명 중 1명은 향후 45년 동안 가뭄과 폭염, 화재에 취약한 미국 남부를 벗어나 서부 산간지대와 북서부로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리프킨은 “이미 세계 인구의 상당수가 기후 위험 지역에서 벗어나 살기 좋은 온화한 기후를 찾아 움직이면서 새로운 유목 시대의 도래를 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유목 시대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을 것이란 분석이다. 모든 사람이 주권국가의 보호 아래 하나의 고정된 지리적 공간에 소속되는 세상은 점차 과거의 이야기가 된다. 일종의 ‘팝업 도시’가 생겨나고 사라지길 반복할 것이란 전망이다. 리프킨은 “군대의 역할도 국가 안보에서 자연재해 대응과 생태지역 복구로 전환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프킨은 “인류는 빙하기와 간빙기를 오가는 급격한 기후 변화 속에서도 살아남은 적응력이 뛰어난 종”이라며 “야생으로 돌아가는 수권에 적응해 동료 생물과 함께 번영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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