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 그분은 음악에 열정을 가진 분이셨다. 매일 아침 피리를 함께 부는 시간을 가졌는데, 매일 연습하다 보니 어려운 곡도 곧잘 연주하게 됐다. 친구들과 떨리지만 자신 있게 피리를 연주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피리를 불며 즐거워했다.
또 즐거운 시간은 매일 오후 집에 돌아가기 전 몇 분씩 가진 퀴즈 타임이었다. 우리 스스로 퀴즈를 내 맞히도록 하셨는데, 다른 친구들이 못 맞힐 만한 고난도의 문제를 내는 게 관건이었다. 반 친구들이 못 풀 만한 퀴즈를 내기 위해 나는 많은 책을 읽었다. 역사와 추리 소설을 좋아하던 나는 많은 책을 읽어 친구들이 답하지 못하는 문제를 내며 통쾌해했다. 인생에서 나 스스로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해 본 것이 이때가 처음이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사춘기가 시작됐기 때문인지 선생님이 좀 더 아이돌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외모나 느낌이 나에게는 중요한 동기 부여가 됐다. 당시 국어 선생님은 오뚝한 코에 피부가 뽀얀 영화배우 같은 분이셨다. 그런데 그분이 더 영화배우 같았던 이유는 그분의 문학에 대한 사랑이었다. 국어 교과서에서 한 단원이 끝날 때마다 공부할 문제 안에 작문이 포함돼 있었다. 숙제를 싫어했지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선생님을 생각해 작문만큼은 거르지 않고 해갔다. 한 번은 이효석의 ‘나무를 태우면서’라는 수필을 읽고 쓴 내 감상문을 들으시고 “와, 수미야. 이 글은 지금 그냥 신문에 내도 될 만큼 멋진데”라고 해주셨다. 그 말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내 마음에 울림을 준다.
선생님과 제자 사이에 끈끈한 정이 많이 없어진 오늘이 너무 안타깝다. 사제 간에는 지식 전달 수준을 넘어 애정뿐 아니라 열정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칭찬과 격려는 힘든 일이 아닌데도 큰 힘을 준다. 선생님은 아이에게, 아이는 부모에게, 부모는 선생님에게 서로서로 칭찬과 응원을 준다면 세상은 아마 행복으로 가득할 것이다.
사람의 영혼이 깃든 심장을 만지는 일은 그 어떤 것보다 숭고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부모가 그 역할을 하는 것처럼, 우리의 세 번째 부모인 선생님도 어린이의 가슴에 사랑과 희망을 심어주는 일을 하고 계신다. 아무리 능률적인 인공지능(AI) 교사가 있더라도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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