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업무가 몰려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산재를 입었다며 회사와 상급자를 상대로 2억6000만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직원이 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해당 직원은 근로복지공단에서 같은 사유로 업무상 재해 판단을 받은 것을 근거로 소송까지 냈지만 법원은 공단 판단과 달리 과도한 업무 부담은 없었다고 일축했다.
최근 공단이나 고용노동부에서 괴롭힘이나 산재를 인정 받으면 곧바로 회사를 상대로 거액의 민사 소송을 이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인사담당자들은 가해자 외에 회사도 '사용자 책임'을 물게 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2015년부터 B자동차보험사에 입사해 대구에서 근무해오던 A씨는 외제차 보상 업무를 담당하던 전임자가 2015년 말 퇴사하면서 대구 지역 사고조사·손해사정 업무를 이어 받게 됐다.
일을 맡은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이듬해 9월, A는 장기근속자가 쓸 수 있는 5일짜리 '장기근속 보상휴가'를 쓰겠다면서 휴가 신청을 냈다. 그런데 센터장 C는 "센터 실적이 떨어지고 있으니 (내년인) 2017년에 쓰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지만 A는 "업무가 과중하다"며 휴가 연기를 거절하고 9월 말경 제주도로 휴가를 갔다.
이후 10월 A는 복귀했지만 업무 처리 지침이 변경되면서 업무 내용이 다소 바뀌었다. 바뀐 업무에 부담을 느낀 A는 복귀한지 두 달이 채 안돼 "휴가 신청을 미루라는 팀장의 요청을 거절해서 일방적으로 관할 구역과 업무 지역이 달라졌고, 일도 늘어나 업무의 70%를 부담하게 됐다"며 우울증 등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2개월 간 의원 휴직을 냈다. 의원 휴직이 끝나는 시점에 맞춰서 9개월간 육아휴직도 신청했다.
이후 2018년 초 복귀한 A는 2020년 초 "C가 회식자리에서 욕설 및 술권유를 하고 인격비하 및 심한 욕설을 해 며칠 동안 힘들었다"는 이유를 추가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요양신청)을 내고 또다시 의원 휴직과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산재 신청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은 "직장 내 갈등관계, 폭언 및 업무적 상황의 급격한 변화 등으로 병이 발생했다"는 대구업무상질병판정위의 판단에 따라 산재를 승인했다. 그러자 A는 C와 회사를 상대로 위자료 2억6000만원과 치료비 등 총 2억6400만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A가 하루 평균 1시간의 연장근무를 한 사실 등은 인정된다"면서도 "센터 내 다른 직원들도 보험 회사 업무특성상 야근을 자주했으며 A의 업무량은 평균치의 80%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A의 주장을 일축했다. 실제로 A가 업무 과중을 주장한 2개월간 A의 업무처리량은 센터의 대물담당직원 8명 중 최하위 수준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A의 '상병'에 개인적 사정이 많이 반영됐다고도 봤다. 실제로 A는 휴직 이후 아내가 운영하는 사업의 실질적 대표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업무 변경 역시 회사 조직개편에 따른 것일 뿐, C가 괴롭히려 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바뀐 업무처리기준은 A에만 적용되지 않고 회사의 직원 모두에 적용됐다"며 "A도 해당 업무에 8년 이상 근무해 숙련도를 가진 점에 비춰 보면 업무량이 증가했거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주장은 납득이 어렵다"고 꼬집었다.
함께 근무했던 직원들이 "C가 회식자리에서 술을 강요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한 점 등을 근거로 C의 폭언 등도 없다고 판단했다. 이를 바탕으로 "보복성 업무지시와 폭언이 우울증 등의 원인이 됐다"는 신체 감정의의 소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당 소송은 A측의 항소 포기로 1심에서 그대로 확정됐다(2021가단259360).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근로자 보호 차원에서 산재를 폭넓게 인정하는 근로복지공단과 달리, 법원은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서는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따져 과다한 청구에 선을 그은 것으로 보인다"며 "업무량을 계량할 수 있는 업종의 특성이 회사에 유리한 증거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회사도 법적 책임을 묻게 될 수 있다. 피해를 주장하는 직원은 가해자에 대해서는 불법행위, 회사에 대해서는 민법상 '사용자책임(민법 756조)'을 물을 수 있기 때문이다.
괴롭힘이 발생한 경우 괴롭힘이 '업무와 관련돼' 발생했고 이를 회사가 인지했는데도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면 회사가 근로자를 보호할 '사용자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 돼 배상 책임을 물게 된다. 앞서 언급된 사건에서 A는 사용자 책임을 주장했지만 법원은 "A가 회사에 질환에 대해 알리지 않았다"며 "회사는 A의 건강상태를 미리 알고 적극적으로 스트레스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도 어려웠다"라고 판단한 것과 결을 같이 한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사용자책임은 사용자의 관리상 잘못이 인정돼야 하므로 회사에 책임을 묻는 것은 쉽지 않다"며 "다만 인사담당자가 사법 리스크를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괴롭힘이나 사내 성희롱 적발 시 징계위나 외부 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당사자들에 대한 충분한 조치를 해놓는 게 좋다"라고 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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