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다가온다’(Winter Looms).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가 지난 15일 발간한 반도체 보고서 제목이다. 지난달 인공지능(AI) 거품을 경고한 보고서 ‘고점에 대비하라’의 후속 격인 이 보고서에서 모건스탠리는 한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에 대해 시종일관 비관론을 폈다. 핵심 근거로는 범용 D램의 수요 부진과 AI용 고대역폭메모리(HBM)의 공급 과잉을 들었다.
반도체업계에선 ‘갸우뚱’하는 전문가가 많다. 빅테크들의 AI 투자 증가율과 HBM 수요 등 업황 판단의 핵심 근거를 과소평가했고, ‘맞춤형 제품’으로 변하고 있는 메모리산업의 최신 트렌드에 눈을 감았다는 이유에서다.
모건스탠리가 목표주가를 끌어내린 근거 중 하나는 HBM 공급 과잉이다. HBM은 D램 여러 개를 쌓아 만든 고부가가치 메모리로, AI 서버의 핵심 부품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모건스탠리는 내년 메모리 기업들의 HBM 공급량이 250억기가비트(Gb)로, 수요(150억Gb)를 66.7% 초과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삼성전자의 본격적인 HBM 시장 진입이 공급 과잉의 주요 원인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업계에선 현실과 거리가 있다고 평가한다. 고객사의 승인을 받고 맞춤형으로 생산하는 HBM 시장의 특성을 무시했다는 점에서다. SK하이닉스, 삼성전자는 올 들어 두 차례 열린 실적설명회에서 ‘2025년 HBM 물량 완판’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모건스탠리가 HBM 수요의 근거가 되는 빅테크들의 AI 투자를 과소평가했다는 지적도 있다. 보고서는 10개 대형 테크 기업의 AI 투자 증가율(전년 대비)이 올해 52%에서 내년 8%로 크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블룸버그가 제시한 13개 대형 테크 기업의 투자 증가율(올해 33.7%, 내년 13.4%)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최근 반도체 보고서를 낸 미즈호증권도 “AI 서버 투자가 계속 늘면서 HBM 시장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실제 글로벌 PC·스마트폰 시장은 주춤한 상황이다. 애플의 ‘아이폰16’ 시리즈 출시 후 첫 주말 사전 주문량은 3700만 대로 전작 대비 13%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스마트폰과 PC용 메모리 수요는 줄지도 않지만 늘지도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모건스탠리의 범용 D램 업황 전망은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정도를 과도하게 비관적으로 잡았다는 평가가 많다. 모건스탠리는 공급 과잉의 근거 중 하나로 내년 메모리 자본 지출이 700억달러(약 93조원)에 달할 것이란 점을 들었다. 하지만 반도체 기업들이 고부가가치 제품인 HBM과 기업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투자에 집중하는 점을 감안하면 범용 D램 공급 과잉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분석이 많다.
“HBM 생산에 주력하면 범용 D램 공급량은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장에 모건스탠리가 “근거가 없다”고 일축한 것도 보고서 신뢰도를 낮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 밖에 범용 D램·낸드플래시 탑재량이 일반 제품의 두 배가 넘는 AI PC와 AI폰 시장이 커지는 점은 쏙 뺐다는 지적도 있다.
모건스탠리가 엔비디아, TSMC에 대해선 ‘AI 수혜주’로 평가하면서 이들 기업의 공급망에 속한 한국 기업을 평가절하했다는 점에서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모건스탠리의 주장이 틀렸다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너무 비관적으로 본 건 확실하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모건스탠리는 과거에도 업황이 하락할 때까지 부정적인 보고서를 계속 내는 ‘인디언식 기우제’ 행태를 자주 보였다”고 비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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