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9월 19일 17:10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지난 며칠간 밤낮으로 많은 고마운 분들의 도움을 받아 계획을 짜낸 저는 싸움에서 우리가 이길 것으로 확신합니다. 연휴에도 외국 회사들과 소통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의 기습 공개매수에도 침묵을 지켜오던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19일 임직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경영권 방어를 확신했다. 구체적인 방안은 함구하면서도 '고마운 분들의 도움'과 '외국 회사' 등의 단서를 던지기도 했다.
최 회장이 승기를 자신한 데는 자기 자본 8조원 규모의 대형 증권사인 한국투자증권을 우군으로 확보한 점이 배경이 됐다. 이날 창사 이후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최 회장에 대한 공세에 불을 붙인 MBK파트너스도 방어 측이 동원할 자금 규모 등을 추산하며 응전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고려아연 분쟁이 국내 최대 PEF와 초대형 증권사 간 '쩐의 전쟁'으로 확전되고 있다.
한투, 컨소시엄 구성 위해 PEF 접촉...최대 2조원대 투입
한국투자증권이 최 회장의 우군에 서기로 나서면서 고려아연을 둘러싼 경영권 분쟁도 새 국면을 맞게됐다. 한국투자증권 실무진들은 연휴 첫날부터 복수의 PEF를 만나 자신들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대항공개매수에 참여해줄 것을 요청했다. 투입 자금으론 총 2조원을 예상했다. 한국투자증권 측은 자기자본으로 단일 구성원 중 가장 큰 금액을 투입하겠지만, 리스크 분산을 위해 외부 자금 수혈이 필요하며 PEF 설득에 나섰다. 추후 최 회장 측과 협상을 통해 안정적인 투자회수 방안을 확정짓겠다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한국투자증권이 최 회장의 손을 잡은 건 양 측간 우호관계가 영향을 미쳤다.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회장과 최 회장이 가까운 사이로 알려져있다. 한국투자증권은 2022년 최 회장 주도로 진행한 고려아연 유상증자에 1045억원을 투입해 지분 0.8%를 확보하기도 했다. 당시 유상증자가 영풍 및 장형진 고문과 지분율 경쟁 속에서 벌어진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최 회장 편에 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후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 등을 전담하는 수탁사 업무도 맡고 있다.
지난해 자기자본 8조원을 넘어선 한국투자증권은 발행어음 사업 등으로 실탄을 확보해 여의도에서 가장 공격적인 투자 DNA를 보이고 있다. 인수가 불발됐지만 동원의 HMM 인수전에서도 사실상 단독 재무적투자자(FI)로 3조원을 외부 조력없이 그룹의 자체 동원을 통해 조달했다. 2018년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코웨이 인수전에선 인수대금 1조7000억원 중 1조3000억원을 지원하며 전무후무한 수수료 수익을 거두기도 했다. 이번 고려아연 분쟁으로 PEF의 공세에 위협을 느낀 재계의 지지를 얻으면 향후 네트워크 확보에도 힘이 실릴 수 있다는 전략적인 판단을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NH투자증권이 전담해온 공개매수 주관 등에도 균열을 내겠다는 전략이다.
대항 공개매수 움직임에 시장 촉각
대항 공개매수는 크게 두가지 방식으로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MBK파트너스가 제시한 가격보다 높은 프리미엄을 붙여 대항공개매수를 진행하면서 적극적으로 지분확보 경쟁을 펴는 방식이다. 대신 최 회장 측이 투자자들에 일정 수익률을 보장하고 개인 자산 등을 담보로 최우선으로 투자금을 갚겠다는 주주간계약을 맺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항 공개매수가 실행되면 MBK파트너스도 최 회장측의 조건을 확인하고 공개매수 조건을 바꿀 수 있어 본격적인 자금력 싸움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내달 4일까지 진행 중인 공개매수를 막고 시간을 벌기 위한 작은 규모의 공개매수 가능성도 점쳐진다. 공개매수 가격은 높이되 매입 지분은 낮추는 식이다. MBK와 영풍의 공개매수를 저지하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 한투증권 측이 장내에서 지분 매집에 나서는 방안은 시세조종 혐의가 적용될 수 있어 가능성은 희박하다.
고려아연은 분쟁 직전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IB에서 이력을 쌓은 이승호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영입해 글로벌 협력사 및 범아시아권 기업들과 접촉에도 나서고 있다. 현재 가장 밀접한 곳은 글로벌PEF인 베인캐피탈이다. 이 CFO는 특히 베인캐피탈의 대표적인 대박 거래인 카버코리아 거래를 자문하면서 베인캐피탈과 친분이 두터운 인사로 꼽힌다. 베인은 지난해 벌어진 MBK파트너스와 한국앤컴퍼니간 경영권 분쟁에서도 MBK파트너스보다 앞서 주주행동주의를 검토했던 글로벌 PEF다. 이 CFO는 연휴 기간이었던 17일 최 회장의 일본 출장에도 동행해 해외투자자 미팅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회장이 '외국 회사'를 언급한만큼 고려아연 지분 1.49%를 보유한 트라피구라 등 기존 우군이 지분을 늘려 최 회장을 도울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KCGI와 펼쳐진 한진칼 경영권 분쟁에서 장내 지분 매집을 통해 조원태 대한항공 회장을 도운 델타항공과 유사한 사례다.
고려아연은 백기사 확보와 별개로 김앤장법률사무소를 통해 자사주 매입의 적법성 여부도 검토하고 있다. MBK파트너스측은 이같은 움직임을 주가 상승을 위한 행위로 간주해 자사주매입 금지 가처분신청으로 이를 막기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최씨 일가 담보여력 등 변수도 적지 않아
MBK파트너스와 영풍 측이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를 위한 공개매수를 발표한지 2영업일째인 19일 고려아연 주가는 주당 70만7000원으로 마감했다.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의 공개매수가인 주당 66만원을 뛰어넘었다. 시장참여자들은 양측의 공개매수 경쟁이 현실화할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다.변수도 만만치 않다. 한국투자증권은 컨소시엄 구성을 백기사 참여의 전제조건으로 고수하고 있지만 PEF들은 투자를 검토할 시한이 촉박한 점을 호소하고 있다. 향후 회수방안이 불투명한 점도 문제다. 최 회장과 일가가 보유 중인 고려아연 지분 15.65%를 담보로 인수 구조를 고안해야 하는데 대부분 지분이 이미 담보대출 등으로 잡혀 있어 조달 가능한 금액이 많지 않다. 시장에선 고려아연 최 씨 일가의 담보 가능한 지분가치가 3000억~4000억원 수준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광일 MBK 부회장도 추후 대항공개매수 가능성을 묻는 질의응답에 "주가가 다시 원상복귀하면 수천억원의 손실을 볼 수도 있는데 이를 감당하고 이사회 차원에서 고려아연을 돕는 곳은 없을 것"이라고 가능성을 일축하기도 했다.
차준호 기자 cha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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