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부동산 불패신화 만드는 나라

입력 2024-09-19 17:44   수정 2024-09-20 00:27

“부동산 시장에선 머지않아 평(3.3㎡)당 3억원 아파트 시대가 온다고 합니다.”

최근 만난 부동산 전문가 A씨는 요즘 시장 상황에 대해 “노무현, 문재인 정부 당시와 같은 막연한 기대가 퍼지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실제 올해 들어 수도권 집값이 심상치 않다.

지난달 서울 반포동 래미안원베일리 단지에선 이른바 ‘국민 주택형’으로 불리는 전용면적 84㎡ 아파트가 60억원에 거래됐다. 공급면적 기준으로 3.3㎡당 1억8000만원인데, 시장에선 벌써 ‘3억원 시대’가 거론되는 것이다.
'아파트 영끌'은 개인 책임인가
국민 주택형 아파트값이 처음 1억원을 돌파한 건 2019년 10월. 문재인 정부 출범 직전인 2017년 3월 18억7000만원에 거래되던 아파트가 불과 2년6개월여 만에 34억원으로 치솟았다. A씨는 “당시 평당 5000만원 안팎이던 반포 아파트값이 1억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을 터무니없다고 판단했다가 후회한 ‘강남 부자’들이 수두룩하다”며 “평당 3억원 얘기가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강남 지역 부동산 시장 과열은 이미 다른 서울 지역과 수도권으로 확산하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 집값 안정을 위해 총력 대응에 나섰지만 ‘미스터 마켓(Mr. Market)’은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것 같다. 정부 정책과 규제가 시장을 막지 못한 선례가 많아서다. 2000년 이후 서울 지역 집값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2009~2010년)와 코로나19 사태 직후(2022~2023년) 정도를 제외하면 지속적으로 우상향 그래프를 그렸다. 기울기와 오른 시기만 다를 뿐 미국의 S&P500·나스닥지수와 비슷할 정도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이런 시장만 봐온 3040세대가 아파트를 ‘영끌’하고 나선 것을 개인 책임의 영역으로 놔두는 게 과연 맞는 걸까.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책 세워야
국가의 인적·물적 자산이 부동산에 쏠리는 국가의 미래는 밝지 않다. 특정 지역의 부동산 시장 과열은 원활한 계층 이동을 막고, 국가 전체의 출산율을 떨어뜨리며, 지방 균형발전을 해치는 등 많은 부작용을 가져온다. 이런 병폐를 해결할 부동산 종합정책을 장기적 관점으로 세워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건설 경기가 침체되면 부동산 경기를 살리는 정책이, 시장이 과열되면 수요를 억제하고 공급을 확대하는 대책이 마치 수도꼭지를 틀었다 잠갔다 하는 식으로 반복된다. 이런 단기 대책들로는 지금까지 장기간 부동산 시장에 쌓여온 거품을 걷어내기 어렵다. 국가 전체의 자원 배분 효율성 측면에서도 시중의 여유 자금이 부동산 대신 혁신산업에 흘러가야 한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금융 안정(가계 부채)과 경기(고용) 대응 관점에서만 다뤄진 게 아닌지 한 번쯤 반성해야 할 때다. 장기적으로 부동산 가격을 물가상승률 이내로 묶어두는 게 최선이라는 관료주의적 사고는 너무나 안일하다. 국가 비상사태라고 선언한 ‘저출생’에 버금가는 정책을 준비해야 한다. ‘국가 경쟁 우위’ 관점에서 국가의 인적·물적 자원이 부동산이 아니라 기업과 자본시장에 흘러갈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 임계점을 넘어선 부동산 시장의 종착역은 또 다른 ‘경제 충격’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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