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추 기억나는 것만도 최근 석 달 새 네 건이 된다. 지난 6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는 ‘한국 브랜드의 성공 이면’이란 논문이 실렸다. 필자는 명문 비즈니스 스쿨 인시아드의 다비드 뒤부아 교수로 데이터 마케팅의 세계적 권위자다. 삼성, 아모레퍼시픽, 젠틀몬스터 등 K브랜드의 성공 요인을 한류 열풍과 관련지어 분석한 글에서 그는 한국의 경제·문화 발전을 얘기할 때 도외시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소환했다. 1994년 대통령 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영화 ‘쥐라기 공원’ 수익이 자동차 150만 대를 수출한 것과 맞먹는다는 내용의 첨단영상산업 진흥 방안을 보고한 것을 오늘날 문화 강국 한국의 시발점으로 지목했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는 요행이 아니라 수십 년간의 전략과 실행의 산물이라는 게 요지다.
지난달에는 세계적 브랜드 컨설팅회사인 울프올린스의 사이라 애시먼 CEO의 K예찬론이 미국 경제 주간지 포브스에 게재됐다. TED 고정 연사이기도 한 그는 ‘K의 모든 것(K-Everything)에 대한 전 세계적인 사랑이 엄청난 기회를 제공한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한국은 글로벌 확장을 위한 청사진을 찾고 있는 신흥 개발도상국에 매력적인 케이스 스터디”라고 표현했다.
압권은 세계은행의 연례 ‘세계 개발 보고서’다. 올해 주제인 ‘중진국 함정’보고서에선 276페이지 본문 중 한국을 100번 이상 언급하며 중진국 함정 극복의 대표 사례로 꼽았다. 한국은 ‘성장의 슈퍼스타’이자 한국의 발전사는 ‘모든 개도국의 필독서’로 제시됐다. 그리고 며칠 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수석칼럼니스트 마틴 울프는 세계은행 보고서를 토대로 칼럼을 썼다. 한국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경제 칼럼니스트답게 그는 핵심을 제대로 짚었다. 중진국 함정에 빠진 나라들의 공통점은 빈약한 자본 축적이 아니라 자본을 엉터리로 썼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을 모범 국가로 들었다. 교육과 해외 기술 역량 습득에 집중 투자하면서 수출 중심의 개방 경제를 지향한 것이 드라마틱한 성공의 토대가 됐다는 글이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최대 치적 중 하나는 교육혁명이다. 1959년 문교부 세출은 18.4%로 국방부에 이어 두 번째였다. 1943년 47%였던 초등학교 취학률은 1960년 99.8%로 완전 취학을 이뤄냈다. 극빈한 삶 속에서도 1950년대 5000명 이상이 유학을 갔다. 수출 1억달러를 달성한 1964년은 박정희 시절 경제수석인 오원철의 표현대로 한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난 해다. 60년이 지난 지금 1억달러를 수출하는 데 드는 시간은 1시간15분 정도다. 박정희가 두 손 들고 무덤에서 뛰쳐나올 일이다. 위기는 창조적 파괴를 가속한 계기가 됐다. 외환위기는 부의 재편과 함께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점이었다. 국내에서 외화벌이에 일조하겠다며 국민적 금 모으기 운동이 일어난 반면 그리스 국민들은 복지 혜택이 줄어들 것이라며 운동장에서 세금 고지서를 태웠다.
이렇게 지켜온 우리 경제를 두고 ‘폭망’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적잖은 의원이 25만원 지원금의 명분을 내세울 때나 대정부 공세 시 거리낌 없이 ‘경제 폭망론’을 흔들어 댄다. 경제 폭망은 연간 성장률이 마이너스인 상황이다. 코로나19 시기를 빼고 한국 경제가 역성장한 때는 1980년 대혼란기와 1998년 외환위기 때 딱 두 번이다. 올 성장률 2.5%는 소득 2만달러 이상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최고 수준이다. 과거 경제 위기 때는 늘 극심한 수출 부진이 동반됐다. 올해 수출은 통계 작성 이후 최고이며, 일본의 99% 수준으로 사상 첫 한·일 역전까지 바라보고 있다.
경제 여건 어디를 둘러봐도 폭망의 근거는 찾기 어렵다. 가계대출, 부동산, 소상공인·자영업자 상황은 심각한 문제지만 장기 관리 과제이자 서비스업 구조 개선과 같은 큰 틀에서 해법을 모색할 사안이다. 경제 폭망론은 현실 비판이 아니라 저주이자 자해 행위다. 수권을 지향하는 정당이 갖춰야 할 책임감은 느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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