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행위와 불공정거래행위 [Lawyer's View]

입력 2024-09-25 09:37   수정 2024-10-30 10:28

이 기사는 09월 25일 09:37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독점금지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제5조에서는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그 지위를 이용하여 상품의 가격이나 용역의 대가를 부당하게 결정·유지 또는 변경하는 행위를 비롯하여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한편 공정거래법은 제45조에서 불공정거래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위 두가지 규정에서 금지하고 있는 행위 중 일부는 서로 중복되는 것이 아닌지 하는 의문을 품게 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인 공정거래법 제5조 제1항 제3호의 ‘다른 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부당하게 방해하는 행위’는 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제45조 제1항 1호의 ‘부당하게 거래를 거절하는 행위’, 제2호의 ‘부당하게 거래의 상대방을 차별하여 취급하는 행위, 제6호의 ‘자기의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 제7호의 ‘거래의 상대방의 사업활동을 부당하게 구속하는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 제8호의 ‘부당하게 다른 사업자의 사업활동을 방해하는 행위’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법 제5조 제1항 제5호 전단의 ‘부당하게 경쟁사업자를 배제하기 위하여 거래하는 행위’(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행위)는 법 제45조 제1항 제3호의 ‘부당하게 경쟁자를 배제하는 행위’(불공정거래행위)와 그 구별이 매우 어렵다.

공정거래법에서는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행위에 대해서는 모두 형사처벌 규정(제124조 제1항 제1호)을 두고 있는데 반하여,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서는 그 중 일부에 대해서만 형사처벌 규정(제125조 제4호)을 두고 있고, 법정형도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행위에 대하여 더 무겁게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법정형의 차이 외에도 전자는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는 사업자만이 해당하고, 후자(불공정거래행위)는 모든 사업자가 해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자는 구별된다고 이해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구별은 여전히 혼란을 남기고 있다. 불공정거래행위의 하나로서 ‘자기의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하여 상대방과 거래하는 행위’(제45조 제1항 제6호)를 규정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굳이 양자를 구별해서 규정한 이유와 그 실익을 이해하기 곤란한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다소 혼란스러운 규정이 생기게 된 원인은 우리 공정거래법을 연혁적으로 고찰하면 이해할 수 있다. 먼저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행위 금지규정은 미국의 셔먼법, 독일의 졍쟁제한방지법 등 유럽 국가들의 경쟁법에서 유래해서 일본의 독점금지법에서 규정된 것이 우리 공정거래법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리고 불공정거래행위 금지규정은 미국의 FTC법(Federal Trade Commission Act)과 클레이튼법에서 유래해서 일본의 독점금지법을 거쳐 우리나라에 계수된 것이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셔먼법과 FTC법 제5조가 동일한 위법행위를 규제하더라도 각 법률의 집행기관이 원칙적으로는 다르기 때문에 규범의 중복이 크게 문제되는 않지만, 일본과 우리나라의 경우 위 두 규정의 집행기관이 같기 때문에 중복이 문제될 여지가 있다. 이와 같은 점 때문에 위 두 규정에 대해서는 일본이 미국의 이원적 집행구조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독점금지법에서 규정한 것을 우리도 그대로 이어받은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어쨌든 유사한 취지의 두 규정을 갖고 있는 우리 공정저래법 체계에서 위 두 규정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두 규정의 내용 중 가장 큰 차이는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는 사업자인지 아닌지에 달려 있다. ‘시장지배적 사업자’란 일정한 거래분야의 공급자나 수요자로서 단독으로 또는 다른 사업자와 함께 상품이나 용역의 가격, 수량, 품질, 그 밖의 거래조건을 결정·유지 또는 변경할 수 있는 시장지위를 가진 사업자를 말한다. 이를 판단할 때에는 시장점유율, 진입장벽의 존재 및 정도, 경쟁사업자의 상대적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디(공정거래법 제2조 제3호). 그렇다면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는 사업자가 그 남용행위를 하였을 때 그 행위가 동시에 불공정행위에도 해당한다면 이 때에는 어느 규정을 적용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우선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행위 금지규정은 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규정에 대한 특별법의 관계에 있다는 견해가 있다. 즉 시장지배적 지위를 가진 사업자가 그 지위를 남용한 것이 동시에 불공정거래행위에도 해당하는 경우에는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행위 금지규정이 우선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행위 금지규정은 독점규제의 성격을 가지는데 반해, 불공정거래행위 금지규정은 기업이 경쟁관계에서 보이는 일반적 행태를 규제하는 기업행태법의 일종이라는 측면에서 양자는 중복해서 적용될 성질의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가 취하고 있는 태도이기도 하다. 그래서 공정거래위원회에서의 심결례 중에서는 양 규정을 중복하여 적용하고 있는 사례가 있기도 하다.

대법원은 2007. 11. 22. 선고 2002두8626 전원합의체 판결(일명 포스코 판결)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개별 거래의 상대방인 특정 사업자에 대한 부당한 의도나 목적을 가지고 거래거절을 한 모든 경우 또는 그 거래거절로 인하여 특정 사업자가 사업활동에 곤란을 겪게 되었다거나 곤란을 겪게 될 우려가 발생하였다는 것과 같이 특정 사업자가 불이익을 입게 되었다는 사정만으로는 그 부당성을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시장에서의 독점을 유지·강화할 의도나 목적, 즉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을 제한함으로써 인위적으로 시장질서에 영향을 가하려는 의도나 목적을 갖고, 객관적으로도 그러한 경쟁제한의 효과가 생길 만한 우려가 있는 행위로 평가될 수 있는 행위로서의 성질을 갖는 거래거절행위를 하였을 때에 그 부당성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시하였다.

대법원의 위 판결의 취지는 불공정거래행위(거래거절행위)의 부당성은 ‘거래거절행위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고 거래상대방이 그 거래거절행위로 불이익을 입었는지 여부’에 따라 평가되어야 하지만,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거래거절행위의 부당성은 이에서 더 나아가서 ‘시장에서의 독점을 유지·강화할 의도나 목적, 즉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을 제한함으로써 인위적으로 시장질서에 영향을 가하려는 의도나 목적을 갖고, 객관적으로도 그러한 경쟁제한의 효과가 생길 만한 우려가 있는 행위로 평가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되어야 하기 때문에 양자는 규제목적과 범위를 달리한다는 것이다.

위 판결에 대해서는 불공정거래행위의 부당성도 경쟁제한성을 무시하고 판단되어서는 안된다는 관점에서 비판을 하는 견해도 있는데, 실제로 대법원은 다른 사건의 판결에서 거래거절행위를 비롯한 불공정거래행위에 관한 부당성의 판단기준으로 경쟁제한성을 들고 있는 것들도 있기 때문에, 위 판결의 취지가 일관되게 적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행위 금지규정과 불공정거래행위의 금지규정은 서로 일부 중복되는 것 같이 보이는 조문의 해석과 적용, 각자의 독자성을 가진 규정에서 고려되는 부당성의 판단기준 등의 문제에서 다소 복잡한 쟁점이 숨어있을 수도 있다. 더 넓게는 위 조항들은 모두 쌍방 당사자의 계약관계에 대하여 그 내용이 불공정하다는 이유로 국가가 개입하여 변형을 가하는 것으로서 사적 자치의 한계와 관련하여 그 경계가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고찰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서 대법원은 2000. 6. 9. 선고 97누19427 판결에서 정상적인 거래관행을 벗어났는지 여부를 그 기준으로 제시한 바도 있는데, ‘정상적인 거래관행’이라는 개념 또한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어떠한 행위가 이에 해당하는지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른 사업자와 거래를 하는 사업자로서는 우선 자신이 시장에서 상품이나 용역의 가격, 공급량 또는 거래조건 등에 관하여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업자, 즉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는지 여부를 따져볼 필요가 있고,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행위와 불공정거래행위의 각각의 요건의 핵심을 이해해서 자신의 행위가 이에 해당하지는 않을지 미리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행위가 문제가 된 경우에는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는지의 여부, 사적 자치 또는 정상적인 거래관행과 관련하여 문제되는 행위가 과연 이 범위에서 벗어난 것인지의 여부 등을 설명하고 그러한 행위가 당해 시장에서 경쟁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의 여부 등에 관한 설명과 함께 반증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i>*변호사, 전 서울고등법원 고법판사. 본고는 필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필자가 속한 법률사무소의 공식적인 입장과는 관련이 없습니다.</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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