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끼워팔기가 소비자에게 '독'이라고?

입력 2024-09-25 17:42   수정 2024-09-26 00:47

여러 물품을 한꺼번에 묶어 판매하는 ‘끼워팔기’는 인류가 상거래를 시작한 뒤 수천 년 동안 활용해 온 전통적인 세일즈 기법이다. 시금치와 콩나물을 같이 가져가면 1000원을 깎아주는 식으로 소비자의 마음을 움직인다.

끼워팔기가 문제가 되는 것은 특정 상품을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사업자가 나쁜 마음을 먹었을 때다. 잘 팔리는 상품과 안 팔리는 상품을 묶음으로만 팔고, 개별적으로는 팔지 않으면 소비자들이 골탕을 먹는다.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를 포함한 주요국 경쟁당국이 법령을 통해 끼워팔기를 단속하는 이유다.

하지만 끼워팔기가 처벌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흔치 않다. 판매사의 시장 지배력이 얼마나 큰지, 끼워팔기 행위로 경쟁사업자가 배제되고 있는지 등 여러 요인을 두루 따지기 때문이다. ‘인질 마케팅’이란 신조어를 낳은 허니버터칩이나 포켓몬빵도 이렇다 할 제재를 받지 않았다.
소비자 부담 되레 늘어
끼워팔기가 논란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은 공정위가 제정을 추진 중인 온라인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 때문이다. 소수 독과점 플랫폼의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하고 끼워팔기와 자사 우대 등의 반칙 행위를 하면 강하게 처벌한다는 것이 이 법안의 핵심이다. 지난해 공정위는 논란의 소지가 있는 거대 플랫폼을 사전 지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달 들어 매출, 점유율 등을 기준으로 독점 사업자를 사후 확정하는 것으로 방침을 바꿨지만 나머지 내용은 그대로다.

플랫폼법의 타깃으로 거론되는 네이버, 카카오 등의 끼워팔기 상품을 보면 추가 입법까지 해서 단속해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예컨대 네이버는 월 4900원짜리 유료 멤버십을 밀고 있다. 끼워팔기 구독 상품으로 클라우드 저장 공간과 디지털 콘텐츠 등을 묶어서 제공한다. 여기에 네이버페이로 결제할 때 적립금 비율을 높여주는 혜택이 따라붙는다. 공정위의 용어로는 ‘자사 우대’에 해당한다.

플랫폼 기업이 내놓는 상품은 개별적으로도 구매 가능하다. 다만 묶어서 살 때 가격이 좀 더 저렴하다. 자사 결제 수단을 우대하긴 하지만 신용카드 등 다른 결제 수단도 얼마든지 활용할 수 있다. 이런 묶음 할인 상품이 사라지면 소비자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업계에선 벌써 플랫폼발(發)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럽 닮아가는 한국의 규제
공정위 규제는 유럽의 빅테크 반독점 규제법인 디지털시장법(DMA)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일부 거대 기업에만 규제의 허들을 높인다는 점이 똑같다. 유럽은 플랫폼 기업이 거의 없는 나라로 대부분의 디지털 서비스를 미국 빅테크에 의존하고 있다. 빅테크를 견제하지 않으면 자국이 설 자리가 사라지는 절박한 상황에서 규제 외엔 쓸 수 있는 카드가 마땅치 않다. 반면 한국은 토종 플랫폼 기업이 건재하다. 규제를 마련하면 우리 기업까지 골탕을 먹는 구조다.

겹겹이 쌓여가는 규제는 기업의 새로운 도전을 가로막기 마련이다. 플랫폼법 적용 대상이 아닌 스타트업까지 플랫폼법 제정에 반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2008년 미국과 유럽의 경제 규모는 거의 비슷했지만 2024년 미국과 유럽의 국내총생산(GDP) 격차는 1.7배까지 벌어졌다. 한국이 과도한 규제로 활력을 잃어가는 유럽을 닮아가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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