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원전 르네상스'…한국도 다시 뛴다

입력 2024-09-30 10:01   수정 2024-09-30 15:57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거세게 불던 전 세계적 탈원전 바람이 급격히 잦아들고 있습니다. 원전 사고의 상처를 딛고 안전한 원자력발전 기술 개발과 이용에 주목하는 ‘원전 르네상스’가 본격적으로 무르익고 있는 겁니다. 지난주엔 1979년 사고 이후 운영이 중단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스리마일 원전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력 구매 계약으로 재가동한다는 소식까지 전해졌습니다.

원전에 대한 기대와 수요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에너지 안보 위기가 심화되고 막대한 전력을 요구하는 인공지능(AI)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점차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한 저탄소 에너지원이란 공감이 확산되면서 원전에 우호적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어요.

원전 르네상스는 국민투표까지 시행하며 탈원전을 결정한 스웨덴, 이탈리아, 스위스가 새롭게 원전 건설을 추진하는 분위기에서 뚜렷이 감지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동안 공사가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최근 재개된 데다, 24조 원 규모에 달하는 체코 신규 원전의 최종 수주 건이 걸려 있어 많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원전의 안전성 문제는 여전히 중요하지만, 빠르게 발전하는 관련 기술이 이런 위험을 줄여나가고 있어 주목됩니다. 원전 르네상스 흐름을 어떻게 봐야 할지, 원전 수출이 가능한 세계 6개국 중 하나인 한국은 어떤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지 등을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신규 원전 투자로 선회하는 주요 국가들
AI 전력 수요가 '원전 르네상스' 불러

원자력발전소 사고는 간헐적으로 일어났어도 그 충격파는 컸습니다. 미국 스리마일섬(1979년), 러시아 체르노빌(1986년), 일본 후쿠시마(2011년)에서 원전 사고가 발생했는데요, 이후 스웨덴(1980년), 이탈리아(1987년), 스위스(2017년)는 각각 국민투표로 탈원전 내지 단계적 원전 폐기를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2021년 프랑스가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발표한 뒤로 원전을 새로 짓거나 수명 연장, 용량 확충 등을 밝히는 나라들이 잇따랐습니다. 원전 기술의 발달로 안전성이 강화된 데다 2022년 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로 유럽 전역에 에너지 안보 위기감이 확산된 영향이 컸습니다.

탈원전 속속 폐기하는 국제사회

이젠 대표적 탈원전 국가들까지 신규 원전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나섭니다. 1990년 원전을 완전히 멈춘 ‘탈원전 1호국’ 이탈리아 정부는 10년 내 가동을 목표로 차세대 원전이라 불리는 소형모듈원전(SMR) 투자 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어요. 스위스 정부도 신규 원전 건설을 가능하게 하는 법 개정안을 마련 중이고, 스웨덴은 작년 SMR 건설 방침을 밝히며 탈원전 정책을 43년 만에 포기했습니다. 그동안 탈원전을 표방해온 벨기에와 일본은 원전 가동 연장 또는 재가동으로, 원전을 축소해가던 프랑스·영국·네덜란드 등은 신규 원전 건설로 선회하고 있어요. 원전이 없었던 튀르키예와 폴란드도 원전을 도입하려 합니다.

국제사회도 저탄소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원전에 기대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2022년 그린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원전이 탄소중립에 맞는 친환경 산업이란 인증을 한 거죠. 작년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한·미·일 등 22개국이 원전 발전량을 2050년까지 3배로 늘리기로 결의했습니다.

전기 수요 폭증 … 2050년 2배로

‘원전 르네상스’를 촉발시킨 계기는 우크라이나 전쟁이었지만, 근본적으로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의 막대한 전력 수요 영향이 큽니다. AI 시스템은 복잡한 연산을 빠르게 처리해야 하고 긴 추론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일반 검색에 비해 5~10배 더 많은 전력을 소모합니다. 또 서버를 돌리느라 과열되는 데이터 센터는 냉각 팬으로 식혀야 해 AI 시스템은 ‘전기 먹는 하마’나 다름없습니다. 앞으로 3년 뒤엔 AI가 네덜란드, 스웨덴 같은 나라가 한 해 소비하는 전력량과 비슷한 85~134TW(테라와트)를 사용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화석연료 발전이나 재생에너지에만 목매고 있을 수 없죠.

이른바 ‘가성비’에서도 원전을 따라올 에너지원은 없습니다. 에너지원별 발전원가(㎾h당, 국회 예산정책처)를 보면 제일 비싼 게 신재생으로 264원, 액화천연가스(LNG) 126원, 원자력은 54원입니다. 원전에서 나오는 방사성폐기물처리 비용까지 감안하더라도 이보다 비용 면에서 효율적인 에너지는 없습니다. 이 밖에 전기차·전기 선박 등 교통 및 수송 수단의 전기화가 봇물을 이루는 것도 한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유엔은 전기차 등의 보편화로 글로벌 전기 소비량이 2050년 지금의 2배로 증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동남아도 원전 수출 시장 부상

원전 수요 증대로 인해 현재 전 세계 439기인 원자력발전소는 2050년 두 배가량 늘어나 최대 1000기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전 산업이 고성장한다는 가정 아래 세계 원전 발전 용량이 작년 말 372기가와트(GW)에서 2050년 950GW로 증가할 것으로 봤습니다. 저성장 시나리오에서도 2050년 세계 원전 발전 용량은 514GW로 커집니다. 향후 27년간 지금보다 1.4~2.5배 늘어난다는 얘기죠.

중요한 점은 IAEA가 2050년 원전 발전 용량 전망치를 매년 높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020년엔 715GW로 내다봤다가 33% 더 늘렸습니다. 특히 아시아 지역의 원전 발전 용량이 작년 106GW에서 2050년 428GW로 가장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태국이 국가에너지계획에 SMR 도입을 추진하고, 필리핀은 2030년대 초 원전 가동을 목표로 할 정도여서 동남아에도 원전 수출시장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원전 시장이 1000조원을 넘는다고 합니다.
NIE 포인트
1. 원전 사고의 위험성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적 노력이 어떠한지 알아보자.

2. 저탄소 지구촌을 만들려면 원전은 불가피한 선택입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3. 원전을 많이 짓더라도 막대한 전기수요를 감당하기 쉽지 않습니다. 슬기로운 해결책이 없을지 친구들과 토론해봅시다.
원전 확대에 현실적 난관 많지만
GDP 0.7% 더 늘리는 산업 역할 중요

많은 이가 ‘원전 르네상스’를 얘기하지만, 긍정적 시각만 있는 건 아닙니다. 원전 사업을 추진하는 나라들이 발전 용량 확대 등을 호언하면서도 실제 사업 추진에선 난항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국 경제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는 2010~2020년 착수한 세계 원전 프로젝트가 평균 3년 이상 일정이 지연되고 있다고 지난 2월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차세대 원전 기술 상용화 더뎌

가장 큰 요인은 원전 건설 공사비 급증, 기술적 애로에 따른 공기 지연 등으로 원전 사업의 경제성이 기대만 못하다는 점입니다. 일본 히타치제작소는 영국 중부 앵글시섬에 원전 2기를 건설하다 공사비 급증으로 2019년 포기했습니다. 프랑스 국영 전력 회사 EDF는 영국 힝클리 포인트 C 원전의 완공 시기를 2025년에서 2030년으로 미뤘는데요, 이 역시 공사비 급증과 전기·기계 시스템 설치 및 파이프 연결 복잡성 등에서 어려움이 컸기 때문입니다. 원전 원료인 우라늄 공급이 특정 국가에 집중된 문제도 있습니다. 우라늄 세계 최대 채굴국인 카자흐스탄의 정치 불안정이 우라늄 국제 시세를 비싸게 만들고 있어요. 세계 우라늄 상업 농축 용량의 50%를 러시아가 점유하고 있는 것도 역시 원료 수급의 애로가 되고 있습니다.

탈원전에서 선회하는 나라들도 보수 집권당이나 정부가 주도할 뿐, 결국은 국민투표로 탈원전 철회를 결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때 가서 원전 사고 가능성이나 방사성폐기물 처리의 어려움에 국민적 관심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스위스 등이 탈원전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시각이 그래서 나오는 거죠. 차세대 원전이라는 소형모듈원전(SMR)의 기술 상용화 전망이 아직 확실치 않은 점도 있습니다. SMR을 대량으로 생산·구축하는 데 적어도 10년은 걸린다고 합니다.

‘원전 생태계’는 미래의 일터

글로벌 원전 산업의 이런 환경이 우리나라에는 ‘기회의 창’이 되고 있습니다. 원자로 26기를 보유한 우리나라는 미국·프랑스·중국·러시아에 이은 세계 원전 5위국입니다. 현재 건설 중인 새울 3·4호기, 공사를 재개한 신한울 3·4호기까지 합하면 총 30기를 보유하게 됩니다. 더 중요하게는 원전의 설계·건설·운영·관리 등 전반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는 점입니다. 이런 기술력이 토대가 돼 2009년 186억 달러(약 22조원) 규모의 UAE 바라카 원전 사업을 수주하며 세계적 경쟁력을 확인할 수 있었죠.

우리나라의 강점은 정해진 공기(工期)와 사업 예산에 맞춰 시공해내는 ‘온 타임, 온 버짓(On time, On budget)’ 능력입니다. 건설 단가는 원전 강국 프랑스의 절반 수준이죠. 미국 등 원전 선진국들이 신규 원전 투자를 중단한 사이 국산 기술 확보와 원전 운영 성과를 높인 결과입니다. 실제로 UAE 바라카 원전 사업에서 급성장한 국내 원전 협력 업체가 많습니다. 이들은 신고리 3~6호기, 신한울 3·4호기 부품을 만들며 경쟁력을 키웠죠. 위기도 있었습니다. 바로 문재인 정부 때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26기 가운데 7기 가동을 중단하고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중지한 게 원전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큰 어려움을 만들었습니다. 이를 다시 정상화하려는 노력이 이번 정부 들어 집중되면서 체코 두코바니 원전 2기 사업의 우선협상자 선정으로 이어진 겁니다.

원전 건설과 운영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는 원전 산업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지난해 12월 발간된 <원자력전략·정책연구>(서울대 원자력미래기술정책연구소 출판)에 따르면 2005년 1년간 원전의 국내총생산(GDP) 기여 효과는 총 2.1%, 순기여도는 0.6~0.7%로 나타났습니다. 순기여도는 화력발전을 원전으로 대체했을 경우를 고려한 겁니다. 다시 말해, 원전을 도입·운영해 2005년 GDP가 0.6~0.7% 늘어났다는 얘기입니다.

세계 원전 수출 시장은 앞으로도 폴란드·영국·UAE 그리고 동남아 등지에서 계속 열릴 예정입니다. 중국 제조업의 추격과 수출 장벽이 높아지는 보호무역 시대에 원전 수출을 우리나라 경제의 버팀목으로 삼아야 하는 과제는 분명해 보입니다. 정부는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 일자리 10만 개 창출 목표를 내걸고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핵융합, 소형모듈원전(SMR) 등 새로운 원전 기술에 대해 알아보자.

2. 기존 원전의 가동 중단 또는 신규 건설 중지 여부를 놓고 공론화위원회가 구성된 적이 있다. 이런 의사결정 구조의 장단점을 파악해보자.

3. 원전 수출이 우리나라 수출에 어느 정도 중요한 부분인지 공부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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