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쪽이·나혼산 방송 금지해라"…푸틴 결단에 한국도 '들썩' [이슈+]

입력 2024-09-28 12:38   수정 2024-09-28 13:10


러시아에서 '자녀 없는 삶'장려 미디어 처벌법이 발의됐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한국이 들썩였다. '푸틴식 저출산 대책'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처럼 "과격한 대책"이라는 지적이 쏟아지는 가운데, 일부 시민들 사이에서 "한국에도 필요한 법"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른바 '비혼 장려 프로그램'이라는 오명이 붙은 일부 한국의 방송 프로그램들을 겨냥한 비판이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은 '자녀 없이 살기 운동' 선전을 금지하는 법안이 국가두마(하원)에 제출됐다고 보도했다. 이 법안은 미디어 등에서 가족과 자녀 없는 삶을 장려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혼자 삶'이 더 매력적인 삶인 것처럼 선전하는 행위를 법으로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해당 법안은 '출산율 제고를 위한 계획이 필요하다'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공감대 속에 발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의 올해 상반기 출산율은 여성 1인당 약 1.5명으로, 안정적인 인구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2.1명보다 훨씬 낮은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크라이나와 3년째 전쟁을 벌이고 있어, 사망자 수 증가로 인구가 감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우리가 러시아에서 한 민족으로서 살아남으려면 가족당 최소 2명의 아이가 있어야 한다"며 "가정에 자녀가 1명만 있다면 인구가 감소할 것이며, 확장·발전을 위해선 최소 3명의 아이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 소식은 인구소멸 위기에 직면한 한국에서도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소식을 접한 대부분의 네티즌은 "아이를 낳아 키우고 싶은 환경부터 만들어 놓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 "과격한 대책", "출산율 높이려면 전쟁이나 중단하라", "인간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독재자" 등 비판을 쏟아냈다. 반면 이와 동시에 "한국에도 필요한 법"이라며 한국의 방송 미디어 환경을 지적하는 여론이 상당수 공감을 받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한국에서 '비혼 장려 프로그램'이라는 오명을 쓴 몇몇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평소 부정적인 인식이 분출한 것으로 풀이된다. "TV 틀면 나 혼자 산다고 자랑하고, 그런 프로그램부터 없애야 한다", "우리나라도 금쪽이, 결혼지옥 금지시켜야 한다" 등의 반응이었다. 독신 연예인들의 생활을 보여주는 MBC '나 혼자 산다', 부부 갈등을 해결하는 MBC '오은영 리포트 - 결혼지옥', 육아법 코칭 프로그램 채널A '요즘 육아 - 금쪽같은 내새끼' 등이 비판 대상이다.

이런 부정 여론이 일부 공감대를 이룬 가운데, 때마침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 혼자 산다'를 저격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25일 '제4차 인구비상대책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박민 KBS 사장에게 "나 홀로 사는 게 마치 굉장히 편하고 복 받은 것처럼 하는데,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살기 좋은 사회의 출발점이라는 걸 모든 미디어 매체에서 다뤄줘야 한다"며 "방송의 역할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해당 발언 기사에는 "가족이 즐겁게 사는 모습을 미디어에서 앞장서 보여줘야 하는데, 나혼산은 저출산의 요인"이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이처럼 시민들이 비판한 프로그램들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비단 오늘내일 일이 아니다.

유재은 국무조정실 청년정책조정위원은 지난해 '금쪽같은 내새끼' 프로그램을 언급하며 "미디어에 결혼·출산에 대한 부정적 메시지가 많다"고 했다. 2022년에는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나 혼자 산다'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었는데, 혼자 사는 게 더 행복한 걸로 인식이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같은 해 서정숙 국민의힘 전 의원은 "나 혼자 산다', 불륜, 사생아, 가정파괴 드라마가 저출산의 원인"이라며 "훈훈한 사회 분위기 조성에 기여해 주시길 방송사에 부탁드린다"고 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도 올해 초 발간한 보고서에서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결혼과 출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의견이 있었다"고 조사 참여자들로부터 수렴한 의견을 공개했다. 한 참여자는 "방송에서 연예인 집 보여주는 거랑 결혼하고 싸우는 프로그램도 (미치는 영향이) 안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다른 참여자는 "TV에서 시댁을 하나의 적 같이, 너무 안 좋은 점만 부각해서 그게 많이 알려지는 것도 있는 것 같아, 결혼 안 한 사람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미디어가 대중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개인의 행동 양식은 스스로의 취사선택에 의해 정해진다고 짚었다. 즉, '나 혼자 산다'를 시청하는 대중이 1인 가구로 살아갈 확률이 높다고 예상하는 것은 그들의 주체적 판단 능력을 간과한 비약이라는 취지다. 아울러 저출산의 원인은 미디어가 아닌 구조적 성차별 문제에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수아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미디어의 영향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수용자들은 자신의 삶과 현실에 관련해 미디어를 해석하고 수용하지, 미디어가 A라고 한다고 해서 바로 A라고 믿거나 행동한다고 보는 것은 과도하게 수용자를 수동적인 존재로 보는 인식일 것"이라며 "1인 가구가 미디어에 나온다고 사람들이 따라서 1인 가구가 된다고 보는 것은 사람들의 현실에서의 어려움을 무시하고 또 사람들이 자신에게 좋은 것을 판단하는 주체적 역량이 있다는 것을 무시하는 말로 보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이어 "오히려 미디어에 정상 가족이 많이 나오고, 여전히 드라마들은 아이를 낳고 결혼해 사는 것을 행복한 미래로 그리고 있기에 숫자로 따져 본다면 다양한 삶을 보여주기보다는 이미 가족의 행복한 삶을 더 많이 그리고 있기도 하다"며 "저출생의 문제 원인은 여러 연구자가 공통으로 지적한 대로 한국 사회의 구조적 성차별 문제가 삶과 일의 균형을 이루기 어렵게 하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쉽지 않기 때문에 생기고 있다. 미디어는 이러한 성차별 문제를 해소하는 정책을 추진하도록 촉구하고 우리 삶이 어떤 모습으로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는지를 드러내 주면서 장기적으로 성차별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출산 대책을 논의하는 국회의원 연구 단체 '순풍포럼'을 이끄는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미디어가 당연히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미디어를 보고 옳고 그름에 대해 스스로 판단할 역량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다만 어린 딸을 키우는 김 의원은 일부 육아 방송 프로그램이 저출산을 부추기고 있다는 점은 지적했다. 그는 "요즘 아기 키우는 방송들이 오히려 아기를 못 낳게 하는 것 같다"며 "서민 가구 부모 입장에서는 연예인들이 사용하는 고가의 아기용품, 좋은 집을 보다 보면 '저 정도는 돼야 아기 키우는구나' 하는 박탈감이 들 것"이라고 했다.

홍민성 한경닷컴 기자 m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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