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우체국이 등장한 지 140년이다. 삼일천하라는 말을 남긴 갑신정변이 일어난 곳이 1884년 말 우정총국 개설 축하연이었다. 우체국 유통망은 일제 치하에서 식민 지배와 태평양 전쟁의 물자 조달 통로로 악용됐다. 해방 후 체신부와 정보통신부를 거쳐 2000년부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우정사업본부(우본)가 됐다.
우본은 특별회계로 6조원이 넘는 예산을 쓴다. 전국에 3300여 개 우체국과 물류센터에 해당하는 집중국 25곳이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합쳐 4만 명 이상을 거느린 정부 최대 조직 중 하나다. 올해 예산은 전년 5조7726억원보다 15%가량 늘어난 6조6208억원. 약 4조원을 우편에 쓰고 예금 사업에 2조2500억여원, 나머지 약 3000억원은 보험 사업에 쓴다. 우본이 판매하는 금융 상품은 5000만원 예금자 보호 한도가 없다. 금리는 낮지만 안전 자산으로 인기다.
그러나 주력인 우편 사업은 만년 적자의 늪에 빠져 있다. 우본은 택배와 등기를 뺀 일반우편 사업에서 지난해 1682억원 적자를 냈다. 일반우편 한 통당 수입은 지난해 기준 539원. 원가는 1조2376억원이었는데 수입은 1조원을 약간 넘는 데 그쳤다. 그나마 임대료 수입, 부동산 매각 등 1400억여원을 조달해 적자를 최대한 줄인 게 이 정도다. 서울 여의도와 명동 오피스 대부분을 임대하고 있는 배경이다. 최근 몇 년간은 적자가 3000억원 안팎으로 지속됐다. 주요 선거가 있는 해엔 선거 우편물 발송으로 수입이 늘어나 숨통이 조금 트인다는 후문이다.
우편 원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인건비다. 우본 공무원은 3만3000명에 달한다. 집배원 등 8000여 명 비공무원의 인건비는 2020년 1854억원에서 2022년 2110억원, 올해 2385억원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편지와 등기를 합한 우편 총량은 2020년 27억9900만 통에서 지난해 말 21억4200만 통으로 23% 줄었다. 우체국 택배는 같은 기간 3억2500만 통에서 2억6800만 통으로 18% 감소했다.
물량이 줄면 인건비도 줄이는 게 상식적이지만 현실은 반대다. 인건비가 늘어나는 사연 중 하나는 1인 가구 급증이다. 총량은 줄었지만 배송지가 오히려 증가했다고 한다. 병역 고지 등 종이로만 받아야 효력이 발생하는 일부 행정 절차도 여전하다.
우본은 매년 경영 합리화 계획을 내놓고 있다. 올해는 인공지능(AI)을 우편과 예금 등 전 사업에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비대면 우편·금융 통합 서비스, 우편 클라우드 등을 새로 구축하겠다는 내용이다. 네이버 등 국내 주요 정보기술(IT) 기업과 중고 거래 플랫폼, 3자 물류(3PL) 기업과 손을 잡겠다는 의사도 내비쳤다. 우본의 전국망은 사람으로 치면 모세혈관과 같다. 이런 망을 활용해 AI 신사업을 벌이겠다는 계획이다.
우표의 자리는 SNS라는 기술이 대체했다. SNS로 즉흥적이고 자극적인, 그리고 무책임한 소통이 넘쳐나면서 꽤 어지럽고 위험한 세상이 됐다. 때론 우편으로 차분히 소통하던 시절이 그립다. 그런데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것 같다. 이제는 기념 우표만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특별회계로 철 지난 우편 사업에 수조원 단위의 안정적 재정을 지원하는 ‘특별대우’를 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시장이 할 수 없는 필수 공적 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회계 역시 국민의 피땀인 세금이다. 특별회계는 국회에서도 거의 검증받지 않고 그대로 통과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한 우본의 나이 140년이 주는 무게감은 묵직하다. 현재 위상은 그러나 이에 못 미친다. 일각에선 ‘세금 먹는 하마’라는 지적도 나온다. 갑신정변이 우정총국에서 일어난 것은 당대엔 우편이 가장 혁신적이라는 상징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류산업은 첨단 기술이 가장 먼저 적용되는 곳 중 하나다. 미래 산업 게임체인저인 양자(퀀텀) 기술 상용화가 기대되는 곳도 교통 물류 최적화 분야다. 이제 우본도 이런 기술에 관심을 가질 때가 됐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