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이 2일 MBK파트너스와 영풍 연합에 맞서 회사 내부 자금을 활용해 고려아연 자사주를 80만원대에 공개매수하는 방안을 내놓는다. MBK 연합이 공개매수 기간에 고려아연이 자사주를 취득하지 못하도록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내자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공개매수 기간이 끝난 직후 자사주를 더 비싸게 사겠다고 미리 공표해 MBK 연합의 공개매수 계획을 흔들기로 한 것이다. 최 회장 측은 이와 함께 고려아연 지분 1.85%를 보유한 영풍정밀에 대한 대항 공개매수에도 나섰다. MBK 연합의 공개매수 가격 2만5000원보다 20% 높은 3만원으로 책정했다. 최 회장 측이 가능한 모든 승부수를 던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 측은 2일 오전 9시 고려아연 이사회를 열고 MBK 연합의 공개매수 마감일(4일) 이후 자사주를 특정 가격에 매수하는 계획을 의결한다. 구체적인 이사회 결정은 장중 공시를 통해 발표할 계획이다. 공개매수 가격은 주당 80만~85만원으로, MBK 연합의 공개매수 가격(주당 75만원)보다 높게 책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MBK 연합의 공개매수를 무산시키기 위해서다. 경영권 분쟁 중에 자사주 공개매수를 발표하는 것은 한국 자본시장 역사에서 고려아연이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발표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MBK 연합의 공개매수 마감을 이틀 앞둔 상황인 만큼 지난달 30일 68만8000원이던 주가가 75만원 이상으로 뛸 가능성이 커서다. 법원이 2일 공개매수 기간에 고려아연 자사주 매입을 허용하지 않는 가처분 결정을 내리더라도 일반 주주는 공개매수 기간 이후 고려아연의 자사주 매입 시기에 더 비싼 값에 팔면 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이 자사주 매입 방식의 대항 공개매수에 나선 것”이라며 “다만 시세보다 높은 가격에 회삿돈을 자사주 매입에 쓴다는 점에서 배임과 시세조종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초유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공개매수를 방해하려는 목적이 있다는 점에서 시세 조종 소지가, 주가 하락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공개매수를 하는 건 배임 소지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는 “정상적인 자사주 매입이라면 굳이 2일에 발표하지 않고 다음주에 발표해도 된다”며 “최 회장 측이 승리하더라도 다시 법정 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만약 최 회장의 의도대로 주가가 80만원 이상을 유지할 경우 MBK 연합의 공개매수는 1차적으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최 회장 입장에선 기회비용이 큰 베인캐피탈 등의 도움을 받지 않고 일단 경영권 방어에 성공하는 것이다. 고려아연은 MBK 연합이 재차 공개매수에 나서면 한화그룹 등 고려아연 지분을 보유한 투자자와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다시 자본 조달에 나설 계획이다.
MBK는 반발하고 있다. 우선 2일 법원에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에 대한 추가 가처분 신청을 할 예정이다. 배임과 시세조종 혐의 등으로 고소·고발전이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 MBK 관계자는 “고려아연 주주 입장에서 소각 목적의 자사주 매입은 주가가 원래 수준(지난달 12일 종가 55만6000원)으로 돌아간 뒤 발표해도 된다”며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수조원의 회삿돈을 쓰는 건 명백한 배임”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에선 경영권 분쟁 중에 자사주 공개매수가 이뤄진 사례가 없다. 미국에선 적대적 인수합병(M&A)에 한해 회사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합법으로 인정받은 사례가 있다. MBK 연합의 공개매수가 적대적 M&A인지를 두고 공방전이 재개될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영풍·MBK 측에 영풍정밀 경영권을 빼앗기면 최 회장 입장에선 고려아연 의결권을 사실상 3.7% 넘겨주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최 회장 측의 영풍정밀 지분은 35.45%에서 60.45%로 늘어난다. 공개매수에 성공하면 영풍정밀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다. 고려아연 측의 최창근 명예회장, 최창규 회장, 유미개발 등은 영풍정밀 지분을 담보로 대출받지 않은 만큼 주식담보대출 여력도 있다.
김우섭/하지은 기자 du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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