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가 변화하는 과정에 있지만 영화가 없어지는 일을 없을 겁니다.” (김상만 영화 ‘전, 란’ 감독)
아시아 최대 영화 축제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2일 스물아홉 번째 막을 올렸다. 이날 부산 해운대 영화의전당 야외 극장에서 개막식을 연 BIFF는 오는 11일까지 열흘간 부산 시내 7개 극장, 28개 스크린에서 63개국 영화 224편을 상영하며 전 세계 시네필(Cinephile·영화 애호가)을 맞이한다.
올해 BIFF 포문은 개막작으로 선정된 영화 ‘전, 란’이 열었다. ‘극장의 위기’를 넘어 ‘영화의 위기’까지 거론되는 시점에서 넷플릭스에 공개될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영화를 영화제 얼굴로 내세운 파격이다.
영화는 어지러운 전란에서 양반의 아들 종려(박정민 분)와 몸종 천영(강동원 분)이 빚는 오해와 갈등을 그린다. 배부른 양반과 굶주린 노비, 백성을 버리고 도망치는 왕의 측근과 맞서 싸우는 의병 등 영화 내내 이분적 대비가 드러나는 대결 국면이 영화의 전체 얼개다.
‘군도’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등 비슷한 시대를 다룬 영화에서 흔히 봤던 구도지만 전개가 좀 더 박력 있다. 전쟁통에 가족을 잃은 양반 종려와 신분 상승을 위해 의병 활동에 몰두하는 천영, ‘코 베는 귀신’으로 불리는 공포의 대상이었다가 살기 위해 항복한 왜장 겐신(정성일 분)이 적과 아군 구분 없이 뒤엉켜 칼을 섞는 모습은 그간 비슷한 소재의 영화에서 볼 수 없던 입체적 장면이다.
박찬욱표 영화답게 디테일도 살아 있다. 숨기지 않고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유머 코드가 몰입을 해치지 않는 점이 그렇다. 천영이 ‘장원 급제’를 말할 때 ‘장’자를 장음으로 길게 늘어뜨리는 모습도 재밌는데, 직접 박찬욱 감독이 강동원에게 정확한 발음을 조언해 나온 결과다.
‘전, 란’을 연출한 김상만 감독은 “스크린 사이즈로만 영화를 얘기하는 대신 높은 퀄리티와 기술, 새로운 형식의 표현 등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했다. 배우 김신록은 “영화가 190개국에서 넷플릭스로 공개된다”며 “여러 나라에서 영화를 사랑해준다면 그 힘이 스크린으로도 이어지고 극장용 영화까지 힘을 얻지 않을까”라고 덧붙였다.
김영덕 BIFF 아시아콘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은 “관객과 대중의 관심이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방식을 생각했다”고 했다. 영화 ‘고독한 미식가 더 무비’의 일본 배우 마쓰시게 유타카, 일본 거장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등 국내 영화 애호가에게 익숙한 인기 영화인도 대거 부산을 찾는다.
‘관객 친화형 영화제’를 표방한 효과는 일찌감치 드러나고 있다. 전날 부산 남포동 BIFF 광장에서 전야제 행사부터 크게 흥행했다. 엄숙한 분위기 대신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밈(meme·온라인 유행 콘텐츠)을 한껏 선보여 좋은 반응을 얻었다.개그맨 윤성호가 승복을 입은 뉴진스님으로 DJ를 했다.
부산=유승목/최다은 기자 m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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