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증시…'갈곳 잃은 돈' 6조 급증

입력 2024-10-04 19:44   수정 2024-10-07 10:20


지난달 5대 시중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이 6조원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구불예금은 금리가 낮지만 언제든 빼내 쓸 수 있어 ‘투자 대기성 자금’으로 불린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하와 중동 정세 불안으로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국내 주식시장 침체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이 은행으로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수시입출식예금 포함) 잔액은 지난 9월 말 기준 623조3173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 말 대비 6조851억원(1%) 늘어난 규모다. 8월 이후 2개월 연속 증가세가 이어졌다.

요구불예금은 금리가 연 0.1%에 불과하지만 언제든 입·출금이 가능한 보통예금을 뜻한다. 보통예금은 아니지만 ‘파킹통장’으로 불리는 수시입출식예금(MMDA)도 입·출금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넓은 의미의 요구불예금에 포함된다.
5대銀 예·적금도 6兆 넘게 급증…돈 굴릴 곳 못찾은 투자자 몰려
정기예금 잔액 5개월째 증가…적금 증가폭도 1년 새 최대
은행의 요구불예금은 계좌 주인의 결정에 따라 즉각 부동산이나 주식시장에 투입될 수 있기 때문에 시장을 관망하는 투자자가 늘어나는 시기에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수시입출식예금(MMDA)을 포함한 요구불예금이 ‘투자 대기성 자금’으로 불리는 이유다.

지난달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이 6조원 넘게 증가한 이유로는 미국 중앙은행(Fed)이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포인트 인하하는 ‘빅컷’을 단행한 점이 꼽힌다. 기준금리 인하는 보통 자산 가격 상승을 이끌지만, 미국의 긴축적 통화정책이 완화적 기조로 전환해야 할 만큼 미국 경기가 좋지 않다는 우려가 제기돼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여기에 중동 정세가 확전 양상을 보이자 국내외 투자자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 국내 주가지수가 주요 선진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익률을 기록할 정도로 투자자 신뢰를 잃은 점이 대기성 자금 증가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경제신문이 22개국의 올해 1~9월 23개 주가지수 수익률을 비교한 결과 한국 코스닥지수는 -13.08%로 꼴찌였다. 코스피지수는 -2.84%로 20위에 머물렀다. 미국 나스닥(12.28%), 중국 상하이종합(16.63%), 일본 닛케이225지수(22.87%) 등은 두 자릿수 상승률을 나타냈다.

주식시장이 침체한 가운데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자 수신 금리 하락을 앞두고 예·적금에 미리 가입하려는 ‘막차’ 수요도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 9월 말 기준 930조4713억원으로 전월 말(925조6659억원) 대비 4조8054억원(0.5%) 증가했다. 올해 5월 이후 5개월 연속 이어진 증가세다.

적금 잔액은 정기예금보다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5대 은행의 적금 잔액은 지난달 1조2157억원(3.3%) 증가하며 작년 9월(1조2474억원) 이후 1년 만에 가장 큰 증가폭을 기록했다.

주요 시중은행이 출시한 고금리 특판적금 판매가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최고 연 7.7%의 금리를 제공하는 신한은행의 ‘언제든 적금’은 9월 11일 완판됐고, 국민은행은 지난달 신규 가입자를 대상으로 최고 연 8% 금리를 주는 ‘KB스타적금’을 출시했다.

적금 납입액에 따라 정부가 기여금을 매칭해주는 정책금융 상품 ‘청년도약계좌’ 혜택이 지난달부터 일부 강화된 것도 적금 잔액 증가에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부터 청년도약계좌의 월 최대 기여금 지급액을 2만4000원에서 3만3000원으로 늘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청년도약계좌 잔액만 한 달 사이 1500억원 증가했다”며 “투자처를 찾지 못한 청년들이 주로 은행의 고금리 적금 상품을 찾고 있다”고 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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