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ML 푸케 CEO "자유무역으로 커온 반도체 생태계, 보호무역이 발목 잡을 것"

입력 2024-10-06 18:30   수정 2024-10-06 23:07

네덜란드 펠트호번에 있는 ASML 캠퍼스 19층에 가려면 두 가지 조건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 대당 수천억원에 이르는 극자외선(EUV) 장비를 구매할 수 있는 글로벌 반도체기업이거나 국가 정상급 VIP만 이곳에 올라갈 수 있다. 취임한 지 약 4개월 된 신임 ASML 최고경영자(CEO)가 한국 언론에 취재를 허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본사 역할을 하는 ‘빌딩8’ 로비에 들어서자 피터르 베닝크 전 ASML CEO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소개한 ASML 팹 모형이 눈에 들어왔다. VIP 접견실이 있는 19층으로 자리를 옮기자 윤석열 대통령과 이 회장이 팹 전경을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은 공간이 나타났다.

한·네덜란드 동맹의 상징과도 같은 곳에서 기자를 맞이한 크리스토퍼 푸케 CEO는 “한국을 100번도 넘게 방문했다”며 친근감을 나타냈다. 그는 한국경제신문 단독 인터뷰에서 차세대 EUV 장비 ‘High-NA EUV’의 신기술을 설명하며 ‘테크통’다운 모습을 보였다. 보호주의 무역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 대목에선 지략가의 면모도 드러났다. 푸케 CEO가 한국 언론과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다.


▷CEO에 취임한 지 4개월이 지났습니다.

“ASML의 CEO가 된 것은 특권입니다. 지구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과 일하는 사치를 누리고 있죠. ASML 엔지니어는 장비가 최고의 퍼포먼스를 내도록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고객사 현장에서 땀 흘리고 있습니다. ASML에 근무하는 임직원 4만4000명 중 CEO는 가장 덜 중요한 인물입니다. ASML CEO로서 어떤 불만도 없습니다.”

▷취임 후 달라진 점은 무엇입니까.

“저는 CEO가 새로 취임해서 회사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포뮬러1을 압니까? 머신은 레이싱 중 피트스톱에서 타이어를 2초 만에 갈아 끼우고 다시 경기를 합니다. 저는 그 타이어와 같은 존재지요. 자동차는 항상 움직입니다. 이런 식으로 누가 CEO가 되더라도 방해 없이 흘러가는 게 중요합니다. 고객도 ASML의 운영 방식을 좋아하는 것 같고요.”

▷한국에 자주 오는 것으로 압니다.

“반도체업계에 몸담은 지난 25년 동안 한국을 100회 이상 방문했습니다. 고객사의 요구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서죠. 저는 기술에 대해 고객과 항상 논의합니다. 대화로 반도체 생태계가 나아갈 올바른 경로를 찾는 것이죠.”

▷한국 반도체의 발전사를 봤겠군요.

“발전 과정을 두 눈으로 직접 봤습니다. 40년 전만 하더라도 반도체 생태계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미약했지만 이젠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기업이 반도체 시장을 이끌고 있습니다. 훌륭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반도체 관련 지정학적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싶군요. 보호주의는 반도체 생태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요. 모두가 각자의 생태계를 구축한다면 반도체 발전은 지체되고 반도체 가격만 상승할 겁니다.”

▷중국과 관련한 외신 보도가 많습니다.

“이에 대해선 답변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반도체 발전 배경에는 오픈이노베이션이 있었다는 점은 분명히 하고 싶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 시행 중인 보호주의 성향의 반도체 관련법은 추가 비용을 결코 충당할 수 없을 겁니다. 반도체가 전략적 도구로 바뀌는 상황도 이해하지만 산업을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기 위해 조심해야 합니다.”

▷작년 12월 윤 대통령에게 클린룸을 오픈했는데요.

“윤 대통령이 ASML 장비를 보고 싶어 한다는 보고를 받고 매우 기뻤습니다. 빌럼 알렉산더르 네덜란드 국왕과 함께 클린룸에 들어간 윤 대통령은 ASML의 기술을 보고 놀라워했습니다. 마치 신기한 것을 본 어린아이 같았죠.”

▷얘깃거리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ASML 장비는 상당히 복잡한 기계예요. 보는 것과 머릿속에 그리는 것은 아주 다릅니다. 실제로 보면 아름답고 경이롭습니다. 윤 대통령은 ASML의 최신 노광장비인 ‘High-NA EUV’ 위를 직접 걸었습니다. 대통령이 만족해하는 것을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직접 안내한 것 역시 큰 영광이었고요.”

▷반도체업계의 인력난이 심각합니다.

“오래전부터 ASML은 더 많은 인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대학과의 연계를 강화했습니다. 저희는 한국에서도 좋은 인재를 찾기 위해 몇몇 대학과 협업 중입니다. 많은 학생이 반도체 세계에 입문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죠.”

▷다국적 인재가 모이는군요.

“인재를 모으려면 그들이 회사 시스템 내에서 잘 적응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구든 ASML이 좋은 직장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네덜란드 내 여러 지역은 물론 다른 나라와도 연계를 강화하고 있어요. ASML 직원의 출신 국가가 140개국에 달하는 것은 이런 노력 덕분일 겁니다.”

▷얼마 전 대학에서 연설했습니다.

“최근 에인트호번공대를 방문해 발표한 적이 있지요. ASML은 에인트호번공대 델프트공대 등 다양한 공학대학과 긴밀하게 협업하고 있습니다. 연설을 한 건 학생들에게 ASML이 어떤 일을 하는지 ‘기술적 영감’을 주기 위해서였지요.”

▷연설 내용을 좀 더 설명해주십시오.

“대학생들을 보니 저의 20대가 생각나더군요. 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선택할 때 저는 반도체가 무엇인지, ASML이 어떤 회사인지조차 몰랐습니다. 학생들에게 ASML이 어떤 일을 하는지, 반도체가 무엇인지 알리고 싶었습니다. ASML과 반도체산업에 대한 열망을 불어넣는 겁니다. ASML은 고교도 방문해 반도체, 인공지능(AI), 리소그래피를 설명합니다. 이 같은 활동이 인재 영입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유럽도 반도체 자체 생산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유럽은 2030년까지 전 세계 반도체 생산량의 20%를 유럽에서 생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원합니다. 지금보다 두 배 이상인 거죠. 지난 8월 독일에서 있었던 TSMC 착공식을 보셨을 겁니다. 많은 유럽인이 한국 반도체 공장도 유럽에 설립되기를 바라고 있을 겁니다.”

▷반도체 생태계 강화를 위해 정부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합니까.

“생태계가 발전할 수 있는 환경을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합니다. 중요한 점은 빠르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인재를 확보하는 일이 가장 중요하지만 자원, 에너지, 물, 더 많은 재생에너지에 대한 접근도 필요합니다. 기업이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합니다.”

▷ASML은 생태계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ASML은 혼자 하지 않습니다. 제1 경영 철학은 ‘협력’을 기반으로 한 트렌드 예측과 시스템 디자인입니다. 고객사 요구에 맞춰 로드맵을 마련하는 데 전사적 역량을 쏟아붓습니다. 로드맵을 제대로 짜려면 파트너와의 협력과 신뢰 구축이 필수입니다.”

▷EUV 3세대 장비인 ‘Hyper-NA EUV’의 로드맵도 마련돼 있습니까.

“그 장비는 ASML이 자랑하는 DUV, EUV, High-NA EUV 이후입니다. 아직 개발 단계는 아니지만 기술적으로 가능한 상태입니다.”

▷필요한 핵심 역량은 무엇인가요.

“수율 향상을 위한 다이(die·금형) 최적화가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계측이나 제어용 소프트웨어 작업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ASML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이 장비가 실질적으로 고객에게 언제 필요한가’입니다.”

▷구체적으로 언제로 예상하십니까.

“내년이라도 착수할 수 있지만 Hyper-NA EUV 수요는 2030년 상반기에나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고객의 미래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합니다.”

▷한국과의 미래를 어떻게 봅니까.

“한국은 ASML에 매우 중요한 국가입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임직원을 존경합니다. 한국경제신문과 만난 것도 한국과 ASML의 관계 발전에 일조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펠트호번=강경주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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