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30평대 아파트가 60억원에 거래됐습니다. 아무리 물가가 많이 오르는 인플레이션 시대라지만 국민평형 규모의 아파트 가격이 60억원이라고 하니 과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60억원에 거래된 이 아파트는 한강 조망이 뛰어나고 강남에서도 가장 신축인 상품성이 좋은 아파트입니다. 같은 단지에서도 더 저렴한 가격에 거래되는 아파트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60억원이라는 금액은 기존 부동산 상품과 비교하면 꼬마빌딩과 유사한 가격이라 더 많은 이목을 끌었습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플래닛이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올해 7월 서울시 상업·업무용빌딩 매매거래 중 60.7%(136건)는 50억원 미만인 꼬마빌딩이었습니다. 꼬마빌딩은 빌딩 거래시장의 대표 상품입니다. 꼬마빌딩보다 전용면적 84㎡에 불과한 아파트가 더 가격이 높다니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봅니다.
30평대 아파트가 꼬마빌딩 가격을 추월하는 이런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대체제와 보완재라는 개념이 필요합니다. 한 재화의 가격이 상승할 때 다른 재화의 수요량이 증가하면 이들 재화는 대체재라고 하며 반대의 경우 보완재라 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대체재는 경쟁관계에 있는 상품이며, 보완재는 두 제품이 합쳐져야 하나의 효용이 완성되는 상품들 간의 관계를 말합니다.
예전에는 소주와 맥주가 대체재였습니다. 경기가 호황이면 맥주가 많이 팔렸고, 경기가 불황이면 소주가 많이 팔렸습니다. 하지만 애주가들이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보완의 관계로 바뀌었습니다. 소주가 많이 팔리면 맥주 판매량도 늘어나며, 맥주가 많이 팔리면 덩달아 소주도 많이 팔립니다.
이를 빌딩과 초고가 아파트라는 부동산 상품에 적용하면 왜 아파트가 빌딩의 가격을 넘어섰는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과거 빌딩과 아파트는 보완 관계였습니다. 아파트를 가지고 추가적으로 빌딩을 매입했습니다. 50억원짜리 빌딩을 가진 건물주는 수십억원 정도의 고가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금리가 올라가고 불황이 찾아오면서 빌딩 거래시장이 침체하기 시작했습니다.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성향이 강한 자산가들은 임차인을 구해야 하는 빌딩에 부담을 느끼게 됐습니다. 특히나 시중의 유동성은 넘쳐나는데 반해 주식, 코인 등 부동산을 제외한 투자자산들의 수익률이 하락하면서 자연스럽게 빌딩을 대체할 수 있는 초고가 아파트에 대한 관심이 늘어났습니다.
결국 기존 꼬마빌딩을 정리하면서 생긴 여유자금으로 '똘똘한 한 채'인 초고가 아파트를 구입하는 자산가들이 증가하게 됩니다. 여기에 맞춰 기존의 아파트와 차원이 다른 4세대 아파트가 대거 등장하면서 초고가 아파트는 자산가들의 플렉스(Flex) 문화의 대상으로 부상합니다.
4세대 아파트들은 커뮤니티 시설을 호텔급으로 만들면서 외부로 나가지 않더라도 단지내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한 '게이티드 하우스'를 만들어냅니다. 과거의 아파트들은 아무리 좋은 입지에 위치하더라도 콘크리트 덩어리라는 물리적 특성은 같았지만, 요즘 신축 아파트들은 이런 물리적 특성도 다르고 커뮤니티 시설을 보강하면서 케이터링(catering) 등 다양한 콘텐츠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정부 규제와 다양한 복합요인으로 인해 아파트는 이제 빌딩의 대체재로서 부각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빌딩과 경쟁관계에 놓이면서 반포동과 같이 특정지역에 수요가 집중되는 현상은 개선이 필요합니다.
과도한 수요 집중은 반드시 해당 지역의 특정 상품이 너무 많이 오르는 시장 왜곡을 수반합니다. 금융위기와 같은 경제적 충격(shock)이 발생하면 이런 상품은 더 많이 하락할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특정지역에 초고가 아파트가 집중되는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규제완화를 통해 강남권 여타지역으로 수요를 분산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심형석 우대빵연구소 소장·美IAU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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