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에 한 번, 오스칼에 두 번 반하네…'베르사유의 장미' [리뷰]

입력 2024-10-10 08:00  


세기의 걸작, 불멸의 고전 '베르사유의 장미'가 무대 위에서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웅장한 무대에 시선을 빼앗기고, 당당한 기개로 검을 휘두르는 오스칼의 자태에 반하는 매력적인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이케다 리요코의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는 오스칼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통해 진정한 자유와 사랑, 그리고 인간애를 프랑스 혁명이라는 장중한 역사의 흐름과 함께 담아낸 작품이다.

대대로 왕실 근위대를 지휘하는 자르제 가문의 막내딸로 태어난 오스칼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아들로 키워져 근위대장이 된다. 베르사유는 풍족하고 따뜻하다. 늘 화려한 불빛이 흘러나오는 그곳에는 달콤한 것들로 가득했다. 반면 거리의 민심은 차갑다 못해 얼어붙었다. 가족이 먹을 빵 한 조각을 구걸했고, 가난은 분노를 키웠다.

귀족만 노려 물건을 훔친다는 흑기사를 잡기 위해 오스칼은 하인 앙드레를 흑기사로 위장시키는 계획을 세우고 점차 귀족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다 엄마의 복수를 위해 마담 드 폴리냑에게 접근하는 로자리를 돕게 되고, 마침내 1789년 바스티유 앞에서 오스칼은 국민의 편에 서서 싸운다.

'레미제라블', '마리 앙투아네트' 등 프랑스 혁명을 다룬 뮤지컬은 이미 국내 관객들에게 친숙하다. 이는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러면 왜 또 굳이 베르사유의 장미를 택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갖게 할 수도 있다. 1막은 오스칼이 처한 환경, 프랑스 혁명이라는 배경적 요소에 초점을 맞춰 관객들을 설득한다. 오스칼을 비롯해 각 인물의 서사, 이들의 관계, 사회적 구조 등을 차곡차곡 쌓아간다.


시작부터 화려한 무대가 시선을 끈다. 춥고 가난한 거리의 삶과 대조되는 베르사유의 모습을 극도로 화려한 조명과 무대로 표현했다. 그 안에서 귀족의 물건을 훔쳐다가 뿌리는 흑기사의 존재, 오스칼의 곧고 정의로운 성격 등이 도드라지며 추후 전개를 납득할 근거를 마련한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시대적 배경이 주는 기시감을 완벽하게 씻기는 어렵지만, 이를 상쇄하는 건 오스칼이다. 마리앙투아네트와 페르젠의 서사를 지운 과감한 시도를 두고 호불호가 갈리기는 하나 오스칼 자체에만 집중하면서 뮤지컬 '베르사유의 장미'만의 차별점을 끌어냈다. 다각적인 서사를 전부 압축하기보다는 하나의 스토리 흐름을 완성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덕분에 오스칼의 매력은 굉장히 극적으로 살아났다. 원작 만화가 탄생시킨 '오스칼 신드롬'을 이어갈 압도적인 캐릭터성을 자랑한다. 1막 말미 드레스를 벗으며 "내 인생의 이야기는 내가 쓰니까"라고 외치는 장면은 놓쳐선 안 될 오스카 서사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개인의 변화와 주체성을 넘어 이 작품이 끌고 가는 역사의 결에도 강한 파동을 일으킨다.

2막에서는 오스칼을 향한 앙드레의 마음이 본격적으로 드러나는데,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집중적으로 전개되는 와중에도 민중 투쟁에 대한 본질은 흐려지지 않는다. 두 주제가 서로의 영역을 방해하지 않도록 구성적으로 섬세하게 놀라운 결합을 이뤄냈다.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프랑켄슈타인', '벤허'를 성공시킨 왕용범 연출, 이성준 음악감독의 조합이었던 만큼 넘버에 대한 기대치가 높았는데 1막 내내 임팩트 있는 곡이 나오질 않는다. 섬세하게 감성을 건들다가도 강렬한 한 방을 주는 이 음악감독의 작법을 기대했으나, 스토리의 흐름에 더 치중한 탓인지 넘버가 돋보이지 않는다.

다소 물음표가 뜨는 1막을 겪었더라도, 2막에서는 이들 조합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오스칼의 솔로에서 이 음악감독 특유의 세밀한 감성을 느낄 수 있고, 전투신에서는 상당히 웅장하고 단단한 음악이 전율을 일으킨다. '나를 감싼 바람은 내게만 불었나'는 확신의 명곡이다. 공연을 마지막까지 보고 나면 명작의 탄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화제가 된 건 김지우 오스칼이다. 정의를 말하면서도 어딘가 결핍이 있는 오스칼에서 강인하고 단단한 멋진 오스칼로 완벽한 성장사를 그려내며 '쥬스칼'이라는 애칭과 함께 호평을 얻었다.

김지우는 인터뷰에서 "만화를 본 입장으로서 나한테는 환상의 오스칼이다. 이걸 망가트리고 싶지 않았다"면서 "다듬어지지 않은 오스칼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제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불같던 오스칼이 점점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모습이 무서울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늘 불같았던 사람이 얼음처럼 식어갈 때의 냉정함이 있지 않냐. 나한테는 그게 더 맞을 것 같았다"고 설명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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