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 칼럼] 광화문 국가상징공간 건립에 부쳐

입력 2024-10-10 17:37   수정 2024-10-11 00:30

미국 워싱턴DC 도심 한복판에는 백악관, 의회의사당 등과 연결된 ‘내셔널 몰’ 국립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을 기리는 오벨리스크 ‘워싱턴 모뉴먼트’를 중심으로 링컨기념관,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국립미술관 등 역사·문화시설이 약 125만㎡ 부지에 들어서 있다. 세계 각국에서 매년 2400만 명이 다녀가는 손꼽히는 관광 명소다. 워싱턴 모뉴먼트와 링컨기념관 사이 한쪽에는 한국전쟁 참전용사를 기리는 기념 공원이 마련돼 있다. 판초 우의를 걸친 채 총을 들고 묵묵히 작전을 수행 중인 용사 19인의 모습은 철제 조각상임에도 마치 살아있는 듯 생생하고 늠름하다. 이들과 마주한 대형 성조기 앞 석판엔 ‘우리는 자신들이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나라,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국가의 부름에 응해 준 아들딸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美 심장부의 한국전쟁 기념관
이 기념 공간을 조성하기 위한 프로젝트는 1986년 공화당 소속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의회 승인으로 추진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시작됐다. 1950년 6월 발발해 약 3년간 연인원 180만여 명의 미군이 참전했고 이 가운데 3만6000여 명이 전사한 참화였지만 정작 미국에선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에 밀려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으로 불리는 한국전쟁을 제대로 기억해보자는 취지였다. 비용 마련을 위한 민간 모금과 함께 현상 설계 공모가 이뤄졌고 540건의 응모작 중 건축가 존 폴 루카스팀의 현 설계안이 최종 선정됐다. 착공 3년 만인 1995년 6월 완성된 기념 공원을 민주당 소속 빌 클린턴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이 직접 순국선열 앞에 헌정했다.

2016년엔 역시 민주당 소속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곳에 전사자 이름이 새겨진 ‘추모의 벽’을 추가 건립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미군뿐 아니라 7200여 명의 한국군 카투사 전사자 명단까지 포함하기로 했다. 한때 기부금 모금에 난항을 겪었지만 이를 알게 된 문재인 대통령이 공사비 명목으로 약 2400만달러를 지원하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2021년 열린 착공식에도 문 대통령이 몸소 참석했다.
국가 보훈엔 보수·진보 따로 없어
이처럼 호국 영령을 기리는 국가 보훈에는 한국과 미국, 보수·진보가 따로 없었다. 지금은 어떤가.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 6월 광화문광장에 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포함한 ‘국가 상징공간’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하자 곧 거센 반발이 일었다. 진보 진영에선 예산 낭비이고, 국가주의적 발상이라고 몰아세웠다.

오 시장은 태극기를 고집하지 않겠다며 한발 물러섰고 시는 지난달 27일 6·25 참전용사를 추모하는 조형물에 대한 통합설계 공모를 시작했다. 이후 두 차례 심사를 거쳐 내년 1월 최종 당선작을 발표하고 같은 해 5월 착공한 뒤 2027년 5월 준공한다는 계획이다. 조형물의 디자인, 크기 등은 전혀 결정된 게 없다는 설명이다. 예산 낭비 논란도 문재인 정부 시절 국비까지 투입된 미국 추모의 벽 앞에서 다소 옹색해진다. 다만 이름조차 몰랐던 동방의 작은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 앞에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 탄생하기만을 간절히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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