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교육계에서 뜨거운 논란거리 중 하나는 학기제 개편이다. 3월에 신학기가 시작되고, 2월에 학년이 종료되는 이른바 ‘3월 신학기제’는 1961년 이후 60년 넘게 유지되고 있는 우리나라 특유의 제도다. 9월에 신학기가 시작되고, 8월에 학년이 종료돼 짧은 겨울방학과 긴 여름방학을 특징으로 하는 ‘9월 신학기제’를 선택하지 않는 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선 우리나라와 일본(4월), 남반구인 호주(2월) 정도뿐이다.
현행 학기제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새롭게 개편된 형태로 학기제를 바꿀 것인가를 둘러싼 논의는 학생, 교사, 학부모 등 교육 이해 당사자 사이에서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학기제 개편이 교육 발전을 위해 불가피한 길인지, 예고된 혼란으로 긁어 부스럼만 만들지 면밀히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국제적 통용성을 갖춰 유학생·교환학생·파견 연수생에게 이동과 선택의 편리함을 제공할 수 있다. 현재 해외 유학생은 국내 대학을 대체로 2월에 졸업하기 때문에 보통 8월 말, 9월 초에 있는 해외 학교 입학까지 한 학기에 이르는 시간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학기제를 개편하면 지금처럼 6개월 이상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될뿐더러, 국내에서도 국제 교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이 세계 교육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국내 학사 일정을 국제 기준과 맞추는 게 필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진입하면서 교육은 더 이상 전통적 교실 수업에만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진로 탐색, 직업교육, 프로젝트 기반 학습 등 다양한 학습 방식을 적용하기 위해서라도 유연한 학기제 도입이 필요하다.
이처럼 현행 학기제는 반세기 이상 이어오며 사회적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그만큼 안정성이 보장된 체제라는 얘기다. 학기제가 개편되면 학생들은 새로운 학사 일정에 적응해야 한다. 이는 학업 스트레스와 과중한 과제, 시험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무엇보다 당장 고등학교 3학년생에는 큰 혼란과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특정 연도에 졸업자가 배로 불어나 대입 경쟁률 상승 문제가 발생한다. 일부 유학생을 위해 학기제까지 변경하는 데에 대한 반발 등도 불 보듯 뻔하다. 자녀의 여름·겨울 방학에 맞춰 교육 및 여가 계획을 세워온 학부모, 특히 맞벌이 가정의 경우 방학 중 자녀 돌봄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이는 가정 내 부담과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사회적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초·중·고등학교에서 9월에 첫 학기를 시작하는 가을학기제를 도입할 경우 교원 증원과 학급 증설에 필요한 비용이 10조원을 훨씬 웃돈다는 분석도 있다. 수능을 비롯한 대입 일정이 조정되고, 이에 맞춰 각종 공무원 시험이나 교원 임용 시험과 사기업 채용 일정도 모두 영향받게 된다. 단기적 추가 비용뿐 아니라 장기적 취업 시장의 혼돈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비용과 혼란을 초래하게 된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다. 입시제도 등 교육 관련 정책을 정권 입맛에 따라 바꾸는 실험은 위험천만하다.
하지만 그에 따른 비용, 학생과 교사의 부담, 사회적 혼란 등의 부작용은 간과할 수 없다. 김영삼 정부 이래 ‘9월 신학기제 전환’이 지속적으로 검토됐지만, 정책 추진으로 이어지지 못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개편을 추진하려면 정책 집행 필요성을 국민에게 알리고, 이에 따르는 현실적 부담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충분한 준비도 수반돼야 한다.
새 학사 일정을 뒷받침할 수 있는 교육적 인프라와 제도적 지원 역시 필요하다. 충분한 논의와 협의를 거쳐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편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교육의 도약을 위한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유병연 논설위원 yoob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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