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타인을 저주하고 자신을 파괴하는 증오

입력 2024-10-11 18:47   수정 2024-10-12 00:49


‘살아 있는 시한폭탄.’

증오라는 감정에 가득 찬 사람들을 이렇게 표현한다. 아무 일 없이 하루를 시작해 회사에 들어서자마자 상사에게 총을 쏜 남자, 증오가 삶을 짓눌러 다른 어떤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 등 증오는 한 명의 인간을 무감정한 악인으로 만든다. SNS가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증오는 더욱 쉽게 확산한다.

타인의 증오가 인터넷을 통해 전염되는 사례도 발생한다. 인간을 조종하는 ‘증오’라는 감정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피하거나 벗어나는 방법은 정녕 없는 것일까.

감정이 개인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오래 탐구해온 저명한 법정신의학자이자 독일 슈피겔 베스트셀러 작가 라인하르트 할러가 증오를 다룬 신간 <증오의 역습>을 펴냈다. 오늘날 사회에서 증오가 가장 시급하게 논의해야 하는 문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뇌과학, 심리학, 사회학 등의 연구부터 신화와 문학, 철학까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증오가 형성되는 과정을 추적하고 증오의 늪에서 벗어나는 법을 안내한다.

작가는 유럽 최고의 범죄심리전문가답게 40년간 쌓은 임상 경험, 500건이 넘는 프로파일링, 인터뷰를 토대로 생생한 사례들을 펼쳐놓는다. 사이버 증오범죄, 묻지 마 폭행, 증오 메시지 등 우리 사회에서 자주 나타나는 감정 문제를 실제 겪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증오의 가장 큰 특징으로 작가가 꼽은 것은 파괴적인 공격성이다. 즉, 증오라는 감정은 타인을 통제하고 지배하려 하며, 인간이 가진 섬세한 감정과 생각을 왜곡해 공감을 차단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그렇기에 증오에 사로잡힌 인간은 인지적으로, 또 감정적으로 단순해진다고 말한다. 복잡한 생각이나 대안을 허용하지 않으며, 파괴적인 감정에만 집중한다고 전한다.

분노와 증오의 차이점도 설명한다. 분노는 맹목적이고, 증오는 계산적이라는 것. 분노는 불특정 다수에게 공격성을 분출하도록 만드는 반면 증오는 특정 대상을 목표로 정하고 공격하게 만든다. 증오가 분노보다 한층 더 치밀하고 계산적이며 지속적이다.

증오가 화나 경멸, 혐오 등과 달리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것도 이 감정이 가진 치밀한 특성 때문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이를 두고 작가는 “분노는 해방감을 선사하기도 하고, 복수는 정당할 수도 있지만 증오에서는 티끌만큼의 긍정적인 면도 찾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증오는 특정 타인을 저주하며 스스로를 파괴하는 감정인 셈이다.

책의 하이라이트는 오늘날 인간들이 얼마나 증오에 빠지기 쉬운 세상에 살고 있는지 분석하는 부분이다. 인터넷을 통해 ‘일상적 비교’에 시달리며 자기혐오와 자존감 붕괴, 굴욕을 매일 경험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파괴의 네트워크’를 벗어나야 한다고 한다. 인터넷에서 스스로를 드러내고자 하는 과한 욕구가 혐오를 부추기고, 공감 능력을 잃게 한다고 말한다.

책은 증오를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자기 성찰’을 소개한다. 내가 가진 증오의 뿌리를 찾아내고, 그것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인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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