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발표되기 하루 전인 지난 10일 일본 도쿄에서는 니혼히단쿄의 대표자 회의가 열렸다. 이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 80년이 되는) 2025년은 피폭자에게도 인류에게도 중요한 해”라며 “다시는 피폭자를 만들지 않기 위해 일본 그리고 세계의 시민 여러분과 손잡고 호소를 계속한다”는 호소문을 채택했다.
니혼히단쿄(일본 피단협·원수폭피해자단체협의회)가 원폭 피해를 막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은 그들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의 원자폭탄을 맞은 일본인 피해자 지원단체이기 때문이다. 대표자 회의가 열린 바로 다음 날 니혼히단쿄는 설립 68년 만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됐다. 전 세계적으로 지정학적 위기가 높아지며 핵무기 사용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자 ‘반핵’ 운동을 벌여온 단체가 조명을 받았다는 분석이 나왔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10일(현지시간) “핵무기 없는 세계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피폭자들의 증언을 통해 핵무기가 다시는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입증한 공로”로 피단협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핵무기 사용에 대한 ‘금기’가 압박에 직면했다”며 “피단협은 핵무기 사용이 가져오는 인도적 참사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덧붙였다.
피단협은 일본 최대 반핵 풀뿌리 시민운동 단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된 지 11년이 지난 1956년 결성된 이후 70년 가까이 ‘반핵’ 활동을 벌였다. 냉전 시기 열렸던 유엔 군축 특별총회에 3회에 걸쳐 대표단 파견, 유엔 및 세계 각지에서 원폭 사진전을 개최했다.
미마키 도시유키 피단협 대표위원은 이번 노벨평화상 수상 발표 이후 “정말 거짓말 같다”며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고 일본 NHK 공영방송이 보도했다. 이 단체의 임원과 회원은 모두 원폭 피해 생존자로, 일본 47개 현에 걸쳐 전국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까지 일본에 살고 있는 원폭 피해 생존자 수는 약 1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일본 언론은 일본의 노벨평화상 수상은 1974년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 이후 50년 만이라고 자축했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올해 총 286명의 개인·단체 후보 중 수상자를 선정했다. 이 중 개인은 197명, 기관은 87개로 알려졌다. 지난해 후보인 351명보다는 줄어든 수치다. 올해 노벨평화상 후보로는 유엔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 국제사법재판소(ICJ), 프란치스코 교황 등이 거론됐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지난 2월 옥중 의문사한 러시아 민주화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이끌던 인권 운동 단체 ‘반부패 재단’, 중동 지역 평화 단체 ‘에코피스’ ‘위민 웨이지 피스’ 등도 후보였다.
노벨평화상 시상식은 오슬로에 있는 국회에서 수여되는 유일한 노벨상이다. 다른 분야의 노벨상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수여식이 열린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노벨상 창시자인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 오슬로에서 개최되는 시상식에서 금메달과 상금 1100만스웨덴크로나(약 14억5000만원)를 받는다. 이전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 2009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1989년 달라이 라마 텐진 갸초, 1979년 테레사 수녀 등이 있다.
김세민 기자 unija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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