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소비에트 정권은 정치적 이념에 따라 발레를 선전용으로 바꿔놓았다. 누레예프는 이런 정부의 행동에 불만을 토로하다 정부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1961년 프랑스 파리에서 공연을 마친 그는 소비에트 연방의 눈을 피해 프랑스에 망명을 요청했다.
천신만고 끝에 서방 세계에 정착한 그는 전 세계 무대를 누비며 이름을 떨쳤다. 특히 영국 로열발레단에서 유명 발레리나 마고 폰테인과 20년 넘도록 파트너로 호흡을 맞췄다. 그의 전성기는 폰테인과 함께한 시절로 기록됐다. 안무가로서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 ‘백조의 호수’를 남성 무용수 중심으로 개작해 무용계의 주목을 받았다. 1983년부터 1989년까지 파리오페라발레단 예술감독을 지냈다. 1993년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다.
이해원 기자 um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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