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분쟁 걱정 없어요"…해외로 가는 무료 '지자체 폰트'

입력 2024-10-13 18:12   수정 2024-10-14 00:49


경기도에 사는 직장인 박한별 씨(27)는 얼마 전 결혼하는 친구를 위해 직접 모바일 청첩장을 만들었다. 예식 안내 문구를 입력할 때 지방자치단체와 시·도 교육청에서 제작한 글꼴(폰트)인 제주명조체와 강원교육체를 활용했다. 박씨는 “무료에다 저작권 침해 걱정이 없는 게 장점”이라며 “단아하고 세련된 글씨체가 적지 않아 평소 즐겨 쓰고 있다”고 말했다.

한글 모양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면서도 지역 특성이 담긴 지자체 글꼴이 인기를 끌고 있다. 13일 국립한글박물관·글로벌문화콘텐츠학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55곳의 광역·기초단체가 자체 글꼴을 개발해 보급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전라북도에서 시작된 글꼴 개발은 2021년 31곳, 2022년 37곳, 지난해 55곳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이들 지자체 글꼴은 ‘지역 브랜딩’에 효과적이라는 평가다. 글꼴의 모양과 곡률 등을 디자인할 때 지형 특성을 담을 수 있고, 서체 이름에 지역 특산물을 담아 홍보할 수 있다. 경북 상주시는 특산물인 곶감의 둥그스름한 모양을 자음 ㅅ, ㅈ, ㅊ의 내리점으로 표현한 상주곶감체를 개발했다. 상주 경천섬의 형상을 일부 자음에 담아낸 상주경천섬체, 훈민정음해례본 상주본을 뼈대 삼아 제작한 상주해례본체 등도 무료 배포하고 있다. 상주시 관계자는 “지역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다.


드라마 등에 지자체 글꼴이 등장하는 등 상업적 목적으로 활용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해 인기를 끈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 대구 수성구 서체인 수성혜정체로 쓰인 장례식장 간판이 수차례 노출됐다. 수성혜정체는 대구 서예가인 혜정 류영희 선생의 판본체 작품을 기본 틀로 삼아 만들어진 글꼴이다. 영국 에든버러에 거주하고 한국에 연 1~2회 방문하는 제라드 로자노(29)씨는 해당 장면을 보고 “붓으로 쓴 것 같아 전통적이면서도 만화 말풍선에 쓸 법한 코믹한 느낌이 든다고 생각했다”며 “더욱 독특한 한글 서체가 있는지 궁금해졌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가게 간판과 지역 특산품, 관광 기념품 등에 주로 활용되던 지자체 글꼴은 K드라마 등의 소품 채택으로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오유림 기자 ou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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