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기술유출 범죄로 연구 의욕이 꺾인다”며 검찰에 직접 관심과 엄벌을 요청해 방문이 성사됐다는 후문이다. 현대차는 보안유지 방법 등을 수사 검사들에게 설명했고, 검찰은 반도체·배터리·석유화학·조선업 현장 방문 구상도 내비쳤다. 경제안보를 무너뜨리는 핵심 첨단기술 탈취 저지의 계기로 작용하길 기대한다.
대검은 기술유출 수사를 반부패수사부에서 과학수사부로 넘긴 2022년 무렵부터 기업과의 소통을 늘려왔다. 기술유출 전담 검사(65명)·수사관(91명)을 임명했고 교육 프로그램도 신설했다. 하지만 행정부 노력만으로는 경제안보 시대의 기술전쟁을 감당하기 어렵다. 현행 사법시스템 아래에서는 처벌 수위가 낮아 ‘걸려도 남는 장사’여서다. 산업기술보호법 위반으로 기소된 33건(2021년 1심 기준) 중 무죄(61%)와 집행유예(27%)를 합하면 90%에 육박한다.
대법원은 올 들어 최대 18년형을 권고하는 등 양형기준을 강화해 7월부터(기소 기준) 적용 중이다. 그러나 첨단기술 유출을 간첩죄에 준하는 범죄로 규정하고 단죄하는 주요국에 비하면 갈 길이 멀다. 기술유출 관련 범죄의 최대 형량은 미국이 33년9개월, 영국은 종신형, 대만은 사형이다. 국내에서도 처벌 강화에 대한 공감대가 크지만 입법부 문턱을 넘지 못하는 실정이다. 처벌 수위를 대폭 높인 정부의 산업기술보호법 개정안도 21대 국회 종료와 함께 지난 5월 자동폐기됐다.
전문인력을 지정·관리하는 국가첨단전략산업특별법과 간첩죄 적용을 확대하는 형법 등을 개정하는 데 국회는 급할 것 없다는 태도다. 그러는 사이 반도체, 디스플레이 같은 정보기술(IT) 분야에 집중된 기술유출은 조선, 잠수함, 전투기, 전차 등 전방위로 확산일로다. 늑장·솜방망이 판결을 남발하는 사법부, 숭숭 뚫린 관련법 개정을 외면하는 입법부의 각성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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