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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서류의 내용을 파악해야 하는 부분은 지루하다. 꽤나 단순 노동인데, 그렇다고 생략할 수는 없다. 누군가 대신해줘야 한다면, 그런 걸 해주는 기술이 존재한다면 어떨까. 올거나이즈의 이창수 대표가 제시하는 인공지능 솔루션은 단순검색의 수준을 넘어 내용 분석 및 초기 보고서 정리까지 해결해준다. 그런데 이와 같은 문서작업은 올거나이즈가 하는 수많은 서비스 중 하나일 뿐이다. 올거나이즈는 이름 그대로 기업이 하는 모든 업무의 효율성 향상에 적용이 가능하다. 그래서 All+organize 즉, Allganize이다. 물론 이미 존재하는 업무용 소프트웨어는 많다. 올거나이즈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통해 이 서비스를 한단계 끌어 올렸다고 하면 되겠다.
경쟁사를 보면 이해가 쉽다. 국내 경쟁사로는 자연어처리 분야의 솔트룩스가 있겠으며, 미국에는 코파일럿(MS), 오픈에이아이(챗지피티 엔터프라이즈), GLEAN이 있다면 일본에는 역시 MS의 코파일럿, 파크샤 PKSHA(상장회사)등이 있겠다. 올거나이즈는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스타트업이다. 이창수 대표는 올거나이즈의 고객이 대부분 금융과 정부기관이라 한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정책과 규제가 중요한 분야로서 복잡한 문건을 분석하고 조회해야 하는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페인 포인트 (pain point) - 즉 고객이 해결하기 힘든 문제일수록 솔루션의 가치가 커지는 법이다.
이창수 대표의 꿈은 본디 공학자가 되어 세상에 유의미한 임팩트를 만드는 것이었다. 연구활동에 흥미를 느꼈던 것은 카이스트 학부 시절 동경공업대학교 교환학생 시절 처음으로 인공지능을 접하면서였다. 이후 카이스트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자연어 연구를 중심으로 학제적인 연구를 수행하며 논문을 통해 다양한 분야에 임팩트를 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체험하게 되었다. 그런데, 구글과 야후가 등장하며 전 세계적인 임팩트를 만들 수 있는 인생에 눈을 뜨기 시작하면서 조금 달라졌다. 세계적인 검색엔진의 프론트페이지를 장식 할 수 있다면, 범위와 강도 그리고 의미가 다른 임팩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말한 것처럼 전 우주에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는 것 까지는 못되더라도, 지구적인 임팩트를 남기는 꿈을 꾸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창업에 눈을 뜨기 시작했구나, 라고 예상하셨겠지만, 이창수 대표의 선택은 대기업에 취업하는 것이었다. 중요 프로젝트의 결정과정에 참여하려면 중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SK텔레콤이 이창수 대표에게 딱 맞는 선택지였던 것이다. 대기업은 직무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 안정적인 환경을 제공했다. 그러나 이창수 대표가 원했던 '결정과정에의 참여'는 다소 요원했다. 초거대 기업인 SK텔레콤에서 중요 프로젝트의 일원으로서 신입사원 이창수는 참여자로서의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결정과정'의 거리는 생각보다 멀었던 것이다. 창업과는 반대의 길인 대기업에서의 체험이 오히려 이창수 대표를 창업으로 이끌게 된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인생은 참으로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학계가 성에 차지 않았고, 대기업도 생각과 달랐다. 이때 선배들로부터 창업이라는 선택지를 접하게 되었다. 이창수 대표의 성에 차려면 그것도 세계적인 창업이 되어야 했다. 일본 교환학생 때 경험을 살려 일단 일본의 게임회사에 취업하였다. 낮에는 일을 하며 신분과 소득 문제를 해결하였고, 밤에는 검색엔진개발을 통한 창업 활동을 병행하였다. 이와 같은 '주경야창업' 생활을 통해 만들어진 검색엔진은 일본 VC들에게 호응을 끌어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창업팀을 꾸리는 일이 쉽지 않았다. 일본친구들은 대기업 재직 중인 관계로 위험부담이 큰 창업에 관심이 없었고, 재일 한국 친구들은 신분문제 해결이 안 되는 관계로 창업에 거리를 두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일본에서 준비한 창업은 한국에서 결실을 거두게 된다.
이창수 대표는 일본의 경험을 토대로 창업의 본고향인 미국 진출도 시도하였다. 글로벌 임팩트를 꿈꾸던 창업가에게는 어쩌면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창수 대표의 회사는 미국에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받게 되었으며 결과 미국 대기업에 인수되는 쾌거를 이뤄낸다. 미국기업에의 인수라니, 어찌 보면 꿈같은 엑시트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은 뭐라고 했던가, 아이러니 투성이다 - full of irony! 창업을 추구하며 달려 왔으나, 그 엔딩이 다시 대기업 직원이 된 것이다. SK텔레콤 때와는 달리 어엿한 VP가 되었지만, 업무 범위는 한정적이었으며 임팩트는 부분적이었다. 창업과정에서 일궈낸 조직과 문화 그리고 노하우가 인수된 이후에는 다시 리셋되는 것과 같은 경험은 그다지 즐겁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인수합병은 꿈같은 엑시트 전략이다. 다만, 이창수 대표의 비전과는 맞지 않았던 것이다. 창업, 성장 그리고 엑시트 등 성장 단계마다의 전략은 모두에게 맞는 한 가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며, 창업가의 비전과 얼마나 어울리는 지가 중요하다.
타고난 창업가, 그러나 당시에는 VP였던 이창수 대표가 다시 세상의 변화에 눈이 가기 시작하던 그 즈음, 때 마침 시장에는 알파고를 위시한 딥러닝이라는 기술이 소개되기 시작했으니 이창수 대표가 창업에 뛰어든 것은 필연적이었다. 첫 번째 창업 회사에서 함께 일했던 사토 야스오씨가 공동 창업자로서 일본 대표를 맡았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상장을 결정하게 된다. 아무래도 공동창업자가 일본에 있는 점, 이창수 대표가 일본에 대한 이해가 높았던 점이 전략적 장점으로 작용했다. 남은 선택지는 그렇다면 상장하여 연속성을 유지하며 사업을 성장시키는 선형적 전략이다. 그렇다면 시장접근이 유리한 쪽, 시장에 대한 이해가 높은 국가에서 상장하는 것이 유리할 것이다. 그게 일본이었던 것이다. 창업의 천국이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장과정, 이게 미국에 대한 판단이었다. 일본시장 개척을 1차 목표로 상품개발센터는 한국에 두고, 그리고 창업의 천국 미국시장을 겨냥한 다국적 스타트업 올거나이즈(Allganize)는 이렇게 탄생하였다. 창업은 늘 이렇다. 창업자의 인생여정, 경험, 그리고 출신지역 등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전략'이 되고, 그 회사의 아이덴티티가 된다.
일본과 미국 시장을 동시에 겨냥하지만, 개발센터는 '제3국' 한국에서 운영한다. 미국이민 창업자가 한국에 개발센터를 두는 것은 일종의 업계표준 같은 일이다. 놀라울 것도 없다. 비즈니스는 비즈니스. 다들 그렇게 하는 데에는 한국에서 개발센터를 운용하는 것이 생산성 면에서 월등하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 엔지니어들이 그렇게 뛰어나다. 물론 인도와 나이지리아 같은 지역에도 개발센터를 운영했었다. 그런데 시차 문화차이 등등의 문제가 비용의 장점을 삭감 시켰다. 요컨대 한국에서 개발하고 일본 시장을 근거로 미국시장에 진출하는 진짜 글로벌 다국적 기업 올거나이즈가 이렇게 올거나이즈 된 것이었다.
이제 시장 이야기로 넘어가자. 올거나이즈가 외국의 기업을 상대로 조직 정보화 사업을 한다는 것은 두 가지 장벽을 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째로 외국시장의 폐쇄성이다. 올거나이즈 재팬의 경우 공동창업자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직원이 일본인이라는 점이 이 문제를 해결한다. 고객사는 올거나이즈를 외국 기업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이창수 대표 외에 나머지 직원들은 100퍼센트 미국인이다. 미국 고객사에게 올거나이즈는 미국 회사인 것이다.
둘째, 내부의 중요 데이터 및 문서를 기반으로 하는 지식 시스템을 구축하는 경우 외부기업에 아웃소싱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하다. 보안이나 데이터 관리 문제에 대해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올거나이즈의 경우 이 문제를 네트워킹으로 해결했다. 한국 일본 모두 투자자가 소개하는 식으로 고객사와 매칭이 된 것이다. 이창수 대표의 경험에 따르면 고객사와 연결 되는 것이 오히려 미국보다 수월했다고 한다. 심지어 일본의 경우 한번 고객사가 되기로 하면 산하계열사 모두에게 연결해 준다고 한다. 고객사가 민감한 정보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는 문제는 민감 데이터와 무관한 서비스부터 제공하는 것으로 해결했다. 이를테면 금융기관의 경우 고객 정보와 같은 데이터를 사용하는 서비스 보다는 금융규제 문건을 분석하는 서비스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고객사는 올거나이즈 서비스를 구매하는데 심리적 불안을 겪지 않게 되며, 서비스 체험을 통해 올거나이즈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게 되기 때문이다.
삼국체제가 생산성에서 장점인 것은 분명하지만, 리스크 분산에도 유용하다. 영업성과의 차이가 분산되어 일국에서의 손해가 타국에서 성장으로 만회되기 때문이다. 한-미-일 삼국 기업 올거나이즈는 그러면 모든 것이 이상적일까. 그렇지 않다. 대규모는 아니더라도 조직내 소통의 문제는 있다. 언어 시차 문화의 장벽을 완화 시킬 인력도 따로 채용해야 하는데 흔하지 않은 인력이다. 삼국의 고객의 만족도도 각기 다르다. 한국에서 사랑받는 서비스가 일본에서는 미지근한 반응인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SaaS(서비스형 소프트웨어)와 온프레미스(사내 구축형) 서비스에 대한 선호도도 각국마다 다르다. 정부기관은 온프레미스를 선호한다. 고객이 원하는 서비스 피쳐(service feature)도 다르니 고객의 국가에 따라 커스터마이징을 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올거나이즈의 성공은 고객별로 다른 서비스 피처링을 맞춤 제공을 해야 하면서 동시에 커스터마이징으로 인한 비용증가를 억제해야 하는 균형 잡기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 문제에 삼국의 문화적 차이까지 고려해야 한다. 다국적 기업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대표에게는 장거리 출장의 부담이, 직원에게는 다국적 조직문화라는 장벽을 극복해야 하는 숙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글의 서문에 제시한 경쟁사들이 올거나이즈의 현재라면 올거나이즈의 미래는 궁극적인 커스터 마이징을 구현하는 미국의 팔란티어다. 인공지능이라는 코어를 변형시키지 않으면서 구체적인 분야에 적용을 가능케 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경우 대기업이 자회사로 삼으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 이창수 대표는 이에 대해 컨소시엄과 같은 형태로 대응하려는 최초의 사례를 만들기를 원한다. 잠재적 위험에 대한 대응전략이기도 하지만 '최초의 사례'를 만들겠다는 비전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이 또한 세상에 임팩트를 만들려는 이대표의 비전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올거나이즈에 대한 취재는 창업가 이창수에 대한 취재로 마무리 되었다. 안정적인 대기업 직원에서 염증을 느끼고 창업을 하게 됐다 - 사실 미국 창업가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역량이 한 평도 안 되는 큐비클에서 반복적인 노동으로 부품화 되는 게 싫다고들 한다. 대기업에 인수 되는 것은 창업가의 꿈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창수 대표는 VP가 된 후에도, 창업이 너무도 그리웠다. 도대체 왜? 미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공원에서 '아이스티'를 팔아 보라고 가르친다. 작은 장사부터 시작하여 창업가를 만들려는 것이다. 그런데 뒤집어 보면 그런 '어린 창업가'는 부모가 시키지 않아도 한다. 이창수 대표도 대학 진학 이전부터 코딩에 관심이 있었고, 대학시절엔 코딩으로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재료가 코딩이었을 뿐 그도 '어린 창업가'였던 것이다. 학자도 아니고 대기업 직원도 아니고 심지어 미국 대기업의 VP도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 이대표를 창업가의 길로 끌어당기는 걸까. 업무와 방향에 대한 오너십이 중요하다고 답을 했다. 단순히 회사지분을 얼마나 보유했느냐 하는 의미가 아니다. 임팩트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사업을 포착하고 추구하는 이니셔티브에 대한 주도권, 그런 오너십을 의미하는 것이다. 의미 있는 이니셔티브를 선정하고 주도적으로 해내는 것, 그것이 이창수대표의 비전이다. 그것이 혁신 창업가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장용석 캘리포니아주립대 경영대 교수 <hr style="display:block !important; border:1px solid #c3c3c3" />[한경 공동기획 글로벌 AI스타트업 사례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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