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필 협연 미도리 "소리가 이미지로 느껴질 만큼 강렬한 음악 들려줄 것"

입력 2024-10-15 10:11   수정 2024-10-16 09:22

한국에 신동 연주자 사라 장(44)이 있었다면, 이웃 나라 일본에는 그보다 일찍 미도리(53)가 있었다. 6세 때 활을 잡은 미도리는 일찍부터 천재성을 보였다. 11세에 거장 주빈 메타의 눈에 들어 뉴욕필하모닉 데뷔 무대를 가졌고, 14세에는 레너드 번스타인과 미국 탱글우드 페스티벌 무대에 섰다. 당시 열정적인 연주로 현(絃)이 끊어졌음에도 악기를 두 차례 바꿔가며 혼신의 힘을 다하는 이 천재 소녀에게 전 세계 신문과 TV는 연일 주목했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신동들이 등장하며 스포트라이트를 넘겨줬지만, 미도리는 연주자이자 교육자, 음악을 나누는 선행가로 더욱 값진 평가를 받으며 미국과 일본에서 존경받는 연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오는 23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내한 공연(지휘 안드리스 넬손스)에서 협연자로 나서는 미도리는 "넬손스와 빈 필은 따로 호흡해 본 경험이 있지만, 두 조합으로 연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옛 친구와 제자가 많은 한국에서 새로운 조합으로 연주하게 돼 매우 기쁘다"는 소감을 전했다.



겸손한 천재…"감사함 잊지 않아"

그는 인터뷰 내내 여러 차례 '감사함'을 언급했다. 다른 음악가들과 작업하고, 혼자 음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매일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고. "매일 감사할 줄 아는 능력이 음악에 큰 영감을 주고, 제 성격을 만들었어요. 부지런히 준비하고 작곡가의 의도를 살리는 것이 동료 연주자와 작곡가에 대한 감사의 표시이자 존중이라 생각해요."

다른 음악가들과의 호흡에서 그는 "배우지 않은 적이 없다"라고도 했다. "어릴 때부터 경험이 많고 존경받는 분들과 함께 일할 기회가 많아서 운이 좋았어요. 이들을 통해서 음악을 만드는 과정과 음악을 보는 관점을 배웠죠. 음악을 통해 어떤 세계를 보는지, 이토록 변화하는 세상에서 음악가들의 역할은 무엇인지 같은 것들이요."



빈 필하모닉과는 1990년대에 처음 인연을 맺었다. 최근에는 2020년에 함께 연주했다. "빈 필과 처음 연주하고 (빈 필하모닉) 단원들과 실내악으로 투어 연주를 하면서 유대를 쌓기도 했어요. 지휘자 넬손스와도 협연을 여러 차례 했었고, 그가 지휘하는 오페라를 자주 보러 다녔죠. 모두가 제게 도움을 준 감사한 동료들이에요."

이번 공연에서는 프로코피예프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을 연주한다. 그는 이 작품을 두고 "소리가 이미지로 생생히 느껴질 만큼 강렬한 곡"이라고 표현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곡이에요. 손가락 유연성을 요구하는 프레이즈들과 속도감, 그리고 곡에 담긴 유머는 흥미로워요. 특히, 2악장은 때로 신랄하고 유머러스하게, 예상치 못한 다양한 표현이 담겨있어 예술적으로나 지적으로도 매력적입니다."

매 순간 변화하는, 음악의 시간예술적 속성에서도 그는 감사함을 찾아냈다. "연주를 잘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주할 때 저만의 경험을 만들어 내는 걸 항상 생각해요. 매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함께하는 연주자도 다르기 때문에 저도 매번 다르게 반응하게 돼요. 유연하게, 순간에 맞게, 그 자리에 살아 숨 쉬는 것이죠. 매 순간 새로운 무언가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인도주의적 예술가

미도리는 오랜 시간 교육자이자 선행가로도 활동했다. 현재 미국 커티스 음악원에서 개인 학생 7여 명을 가르치고 있을 뿐 아니라 여러 프로그램과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배경, 연령, 수준을 가진 젊은 연주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그는 티칭을 "학생들과의 파트너십"이라고 말하며 "음악에서 그들의 역할을 발견하는 게 내 일"이라고 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가르치는 건 제게 활력을 줘요. 학생들이 음악에서 무엇을 듣고 싶어 하는지 진정으로 들으려고 노력해요. 학생들의 방식과 자신들의 길을 발견할 수 있도록요."



미도리는 30년 넘도록 뉴욕 기반의 비영리단체 '미도리 앤 프렌즈'를 만들어 음악을 나누고 있다. 이를 시작으로 일본의 '뮤직 쉐어링',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지원하는 오케스트라 레지던시 프로그램(ORP) 등을 통해 지역사회 곳곳에서 음악 교육 봉사를 하고 있다. 그가 이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건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음악을 통해 사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미도리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자신을 배우고 협력할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피가 솟구치는 경험이라고 표현하겠습니다. 흥분이죠. 무대에 첫발을 내디딜 때 느끼는 게 있어요. 그런데 어린아이들을 마주할 때도, 병원에서 환자 곁에서 연주할 때도 같은 감정이 들어요. 제 안에서 무엇인가가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삶의 흔적, 음악에도 반영

한국 음악가 중에서는 윤이상과 진은숙, 신동훈의 음악에 매료돼 있다고 했다. 특히 윤이상의 음악을 듣고는 한국 전통 음악에 입문하게 됐다고 털어놨다. 특히 그는 판소리 공연을 자주 듣는다고. "저는 한국어를 전혀 모르지만, 리듬, 발음, 드라마, 표현 등을 통해 작곡가가 전하려는 게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음악은 언어를 뛰어넘죠."



음악을 통해 언어를 뛰어넘은 소통을 지속해온 미도리, 그는 10대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음악의 여정을 이어가고 있다. 빛나는 재능에 성숙한 영혼이 깃들어 가는 그에게 시간이 흐르면서 음악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물었다.

"음악을 해석하는 과정은 삶을 바라보는 시각과 깊이 연결돼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인생의 단순함과 복잡함 모두를 소중히 여기게 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모순적이게도 삶은 복잡하면서도 동시에 단순해질 수 있고, 그런 인생의 여러 층위를 점점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삶이 흘러감에 따라 음악도 발전하게 되는 듯해요."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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