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서울 송파구 송파동 '잠실더샵루벤' 현장. 가을을 앞두고 뚝 떨어진 기온에 가랑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막바지 공사가 한창이었다. 외벽 도장 작업이 진행되면서 옛 아파트의 모습은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페인트칠에 덮이기 일보직전인 '성지'(星志)란 글자만이 이 단지가 '송파성지아파트'였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잠실더샵루벤은 1992년 지어진 송파성지아파트(298가구)를 리모델링하는 단지다. 지하 3층~ 지상 18층, 2개 동, 전용면적 83~106㎡, 총 327가구로 구성된다. 전용 106㎡ 5개 타입 29가구를 일반에 분양했다. 내년 3월 입주를 목표로, 공정률은 80% 수준이다.
잠실더샵루벤은 수직·수평 증축으로 지어진다. 이 단지는 2020년 전국 최초로 수직 증축 리모델링 사업계획승인을 받았다. 수직 증축은 기존 아파트를 위(수직)로 올리는 방식이다. 15층 이상 되는 동에는 3개 층이 추가돼 18층으로 높아졌다. 층수가 많아지면서 가구 수도 30가구 가까이 늘었다.
수평 증축을 통해서는 집이 커졌다. 전용 85㎡ 미만 아파트는 40%의 면적이 증가했다. 25평형이 32평형으로 늘어난 셈이다. 전용 85㎡ 이상 아파트는 30%가 커졌다. 30평형대 아파트가 40평형이 된 것이다.
리모델링 사업 단지에 대해 일각에서는 '수직 증축 방식은 위험하다'는 인식이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게 시공사 측 설명이다. 수직 증축형 리모델링은 수평·별동 증축형 리모델링 대비 구조 안전에 대한 엄격한 잣대가 적용됐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이 사업을 진행하려면 전문기관의 1·2차 안전성 검토를 진행해야 한다.
포스코이앤씨 관계자는 "이 단지는 벽식 철근 콘크리트 구조였는데 리모델링을 통해 많은 보강이 들어갔다"며 "철거, 지하 공사 및 기초 공사, 가구별 보강 공사, 마감 공사 등 기본 공사와 함께 내진 설계까지 더해 내구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다만 리모델링 단지의 한계로 꼽히는 '동굴형 평면' 이미지를 지우기는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잠실루벤더샵은 다른 리모델링 단지들과 마찬가지로 기존 평면의 앞뒤를 넓혀 면적을 확보했다. 대신 기존 송파성지아파트의 평면 특성상 동굴형 평면 이미지를 많이 지웠다.
또다른 약점인 '낮은 천장고'도 극복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수직 증축을 통해 나온 일반 분양 물량 29가구는 천장고가 2.4m(우물천장 기준)다. 조합원들 가구 천장고는 2.3m다. 일반 분양 물량은 거실에 우물천장을 설치했고, 조합원들 가구엔 방마다 우물천장을 설치해 개방감을 주려고 노력했다.
노후 아파트에서 항상 빚는 주차 갈등도 줄어들 전망이다. 송파성지아파트일 때는 238대에 불과했던 주차대수가 리모델링 후에는 400대로 162대가 증가했다. 가구당 1.2대 수준이다. 또 요즘 아파트처럼 동에서 지하 주차장으로 바로 오갈 수 있도록 승강기를 설치했다. 이 밖에 필로티로 바뀐 1층과 지하에 커뮤니티 시설을 조성해 주민들의 편의성을 높였다.
포스코이앤씨 관계자는 "강남구 개포동에 있는 '개포 더샵 트리에'와 비교해도 적용 기술이 향상됐다고 볼 수 있다"며 "동굴형 평면을 줄이기 위해서 기존에 철거가 어려운 내력벽은 유지하면서 비내력벽은 철거해 공간을 확보하는 등 바꾸기 어려운 평면 내에서 최대한 새로운 모습을 만들기 위한 기술을 꾸준히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낮은 천장고도 극복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고 있다"며 "필수로 들어가야 하는 소방 시설, 전기 배관 등을 최대한 천장의 바깥 부분으로 바짝 붙이는 것이 포인트다. 천장뿐만 아니라 바닥에서도 최근 층간 소음과 관련한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는 만큼 차음재 두께가 얇아지고 있다. 이런 점들이 모여 천장고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부연했다.
부동산 정보제공 앱(응용 프로그램) 아파트실거래가에 따르면 서울 적정 수요는 4만6754가구다. 지난해 2만5127가구로 적정 수요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는데 올해는 1만9775가구로 2만 가구도 넘지 못했다. 내년 3만5582가구로 다시 늘어나지만 2026년과 2027년엔 2000가구대로 급감한다.
리모델링 단지들을 '만성 공급난'이 계속되는 서울 부동산 시장에 단비가 될 전망이다. 서리협에 따르면 서울시에서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 중인 아파트는 142곳(조합 80곳, 추진위원회 62곳)이다. 가구 수만 보면 12만 가구가 넘는다. 올해 초엔 모두 136곳이었는데 10개월여 만에 6곳이 늘었다. 이들 단지가 정상적으로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한다면 10년간 신규로 공급할 수 있는 주택 수는 14만가구(일반분양 약 2만 가구)에 달한다.
이원식 포스코이앤씨 리모델링영업실 실장(상무)은 "리모델링은 재건축보다 빠르게 노후주택을 정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재건축은 준공된 지 30년이 경과돼야 가능하지만 리모델링은 15년이 지나면 사업을 착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신속하게 노후주택의 물리적 노후화를 개선할 수 있고, 트렌드에 맞는 공간 재구성 등을 통해 사회적 노후화에도 대응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서정태 서울시리모델링협회 회장은 "정부가 최근 내놓은 8.8 부동산 공급대책에도 재건축과 재개발 활성화 대책 및 규제 완화 내용만 담겨 씁쓸한 게 사실이다"며 "주택의 장수명화를 도모하는 동시에 주거의 질을 조기에 개선할 수 있고 도심지에 신규주택공급 효과가 있는 리모델링 사업이 보다 안정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정부의 입법·제도적 지원을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 단지는 2022년 4월 29가구를 일반에 분양했다. 당시 7310명이 몰려 평균 경쟁률 252.1대 1의 경쟁률이 나왔다. 3.3㎡당 분양가는 6500만원으로, 전용 106㎡ 타입별 분양가는 25억7440만~26억4700만원에 달했다. 당시 대출이 나오지 않는 고가 아파트 기준인 '15억원'을 훌쩍 넘는 금액으로, 당첨자는 대출을 끼지 않고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했다.
청약 흥행에도 불구하고 대거 미계약 물량이 나왔고 지난 4월 23가구를 임의 공급에 나선 결과 630명이 신청해 평균 경쟁률 27.3대 1을 기록했다. 현재 모든 가구가 계약을 마쳤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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