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영국 런던에서는 매년 600여 명의 환자가 치아 문제로 사망했다. 실험 수술 선구자인 존 헌터 경(1728~1793)은 정상인의 첫 번째 어금니를 제거해 다른 사람에게 성공적으로 이식했다. 당대 치과의사들은 시술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런던 치과의사들은 적은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치아를 빼 치아 상태가 좋지 않은 부자들에게 이식하기 시작했다.
토머스 로런스 경(1769~1830)은 그의 그림에서 가난한 집안 어린이 이를 뽑아 부자 환자에게 이식하는 모습을 풍자적으로 그렸다. 심지어는 시체에서 발치한 치아를 사용하기까지 했다. 그 결과는 감염, 패혈증 그리고 사망이었다. 18세기 후반 치아 이식은 재앙과 같은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다. 치과의사나 환자에게 세균 감염과 소독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던 탓이다.
오늘날 장기 이식과 외과 수술 발전을 가능케 한 무균수술법은 영국 글래스고의 외과의사 조지프 리스터(1827~1912)가 확립했다. 리스터 당시, 수술에서 무사히 살아남은 환자는 거의 없었다. 수술과 수술 사이에 기구를 세척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외과의사들은 고름과 피가 묻은 프록코트를 입고 수술할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수술 부위는 패혈증을 일으키기 십상이었고 결국 죽음으로 이어졌다.
어느 날 리스터는 우연히 인접한 화학공장에서 폐수가 흘러드는 클라이드강의 한 지류는 맑고 나머지 부분은 흐리고 오염된 것을 발견했다. 그는 공장에서 나오는 페놀 폐기물이 물을 깨끗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집시들이 페놀이 섞인 물질을 가지고 개방 상처를 효과적으로 치료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깜짝 놀랄 만한 발견을 한 리스터는 페놀이 함유된 탄산을 지속해서 분사한 후 수술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혁신적인 시도로 수술 후 감염 발생률을 현저하게 낮출 수 있었다.
많은 역사적 일이 그랬던 것처럼 리스터를 향해 수년간 냉혹한 비난이 이어진 뒤 의학계는 비로소 페놀을 이용한 무균수술을 기본 개념으로 받아들였다. 오늘날 현대인이 구강 위생을 위해 사용하는 구강 청결제인 ‘리스테린’도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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