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탁물 새벽배송하다 사망한 지입기사…법원 "산재 인정"

입력 2024-10-16 11:03   수정 2024-10-16 14:02



세탁서비스업체로부터 위탁받은 세탁물 새벽배송 업무를 하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지입기사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서 산업재해보상보험 적용 대상이라는 1심 법원 판결이 나왔다. 도급·위탁계약이더라도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상당한 지휘·감독 등이 인정되면 근로자로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다.

16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는 사망한 A씨의 배우자 B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B씨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므로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해 취소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A씨는 2022년 1월 C 운수업체와 운송계약을 맺고, 1톤 트럭을 분양받았다. 그는 이 트럭을 운행해 모바일 세탁서비스업체 D사의 세탁물을 운송하는 업무를 맡았다. 운수회사에서 물류회사와 화물운송 계약을 체결하고 운임 수수료 조건으로 지입차량을 제공해 운송하는 이른바 '지입제' 기사였다.

A씨는 2022년 6월 어느 날 새벽 트럭을 운전하다 경기 파주의 한 미개통도로에 주차된 중장비를 추돌했다. 이 사고로 그는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사망했다. 이후 B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등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은 "고인은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이 사건 회사에 근로를 제공하는 근로자라고 보기 어렵다"며 지급을 거부했다.

이에 B씨는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대리인으로는 법무법인 마중(담당변호사 김경진, 김용준, 신세린, 양지연, 윤다솜)을 선임했다.

재판 과정에서 원고 측은 "고인은 C사와 D사에 전속돼 세탁물 운송 업무를 수행했고, D사가 정한 운송물량과 운송지에 따라 업무에 대한 상당한 지시·감독을 받았다"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대법원 판례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계약의 실질을 따져서 근로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본다.

구체적으로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규칙 또는 복무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상당한 지휘·감독을 하는지, 사용자가 근무 시간 및 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 받는지, 노무 제공자가 독립해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노무 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 등 경제적·사회적 여러 조건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정한다.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에 비춰 A씨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맞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고인은 운송 품목인 세탁물을 이 사건 회사가 사전에 통보한 도착지와 도착시간에 맞춰 안전하게 운송해 수취인에게 인도할 의무가 있었다"며 "회사는 고인의 운송물량, 운송일정, 운송지역 등을 지정하는 등 구체적인 업무 내용을 결정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 차량은 실질적으로 이 사건 회사의 배송업무에 전속된 차량에 해당하고, 고인이 이 사건 차량을 분양받으면서 이 사건 회사에 대금을 지급했다고 하더라도 그 대금은 이 사건 차량의 매매대금이라기보다는 계약 종료 이후 반환받을 보증금 내지 권리금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통상적인 차량 위·수탁 계약과 달리 고인이 자신 소유의 차량을 현물 출자하고 언제든지 자유롭게 그 소유권을 회복해 다른 운송사업을 할 수 있는 경우로 보기는 어렵고, 오히려 이 사건 회사에 전속돼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고인은 이 사건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았고, 사업자등록을 해 운송료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납부하는 등 사업주로서의 외관을 갖추기는 했으나, 이러한 사정들은 실질적인 노무 제공 실태와 부합하지 않거나 사용자인 이 사건 회사가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임의로 정할 수 있는 사항"이라며 "고인의 근로자성을 뒤집는 사정이라고 보기에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1심 판결 후 근로복지공단 측은 항소했다. 이 사건은 현재 서울고법에 계류 중이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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