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제주에서 열린 중소기업 리더스 포럼의 아젠다는 ‘글로벌화’였다. 아젠다란 말에는 ‘결핍’의 뉘앙스가 배어 있다. 몇 가지 지표를 보면 이런 절박감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804만 개 중소기업 중에서 수출기업은 9만5000개에 불과하다. 국내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수출 비중은 수년째 17~18%대에 갇혀 있다. 코로나19 특수로 꼽히는 2020년에만 19.7%로 반짝 증가했을 뿐이다.
이렇게 된 사정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1975년 대기업 위주의 경제 성장을 위해 제정된 ‘중소기업의 수직계열화 촉진법’에 따라 대기업 납품에 의존하는 하도급 관행이 굳어진 탓이다. 지난해 기준 중소 제조업체의 86.8%가 대기업과의 가치 사슬에 엮여 있다.
시장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반도체나 조선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곤 대기업의 수출 활력은 갈수록 떨어지는 추세다. 대기업 수출이 줄면 납품에 기댄 낙수효과도 덩달아 끊긴다.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
내수시장도 예전과 다르다. 저성장이 고착화하는 데다 저출생·고령화로 내수 침체가 이어지고 있다. 경쟁은 오히려 치열해지는 추세다. 올해 상반기만 해외직구가 55% 증가했다. 중국산 직구는 74% 늘었다. 국내에 있어도 외국 기업과의 경쟁은 불가피한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 중소기업의 글로벌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현실적으로 독자적인 글로벌화가 어려운 중소기업의 해법으로 거론되는 대안이 ‘이(異)업종 간 협업’이다. 연구개발(R&D)과 디자인, 조달, 제조, 유통 각 분야에 강점을 지닌 중소기업이 손잡고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전략이다. 수평적 가치사슬(VC)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단순히 제품을 내다 파는 수준도 넘어서야 한다. 저렴한 인건비와 판로 확대만 노리고 중국 시장에 앞다퉈 진출했다가 쓴맛을 본 전례를 곱씹을 필요가 있다. 현지 기업을 파트너로 인식하거나 외국 자본도 과감히 받아들이는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정부 정책도 해외 판로 확대 지원을 넘어서는 대대적인 정비가 시급하다. 내륙에 갇히면 ‘한강의 기적’은 일어날 수 없다. 태평양을 넘어 지중해로, 대서양으로 흘러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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