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그룹의 종합식품기업 현대그린푸드는 지난 9월 30일 평택 미군기지(USAG 험프리스)에 미국의 프리미엄 수제버거 브랜드 ‘재거스’의 첫 매장을 오픈했다. 재거스는 미국 1위 스테이크 전문 브랜드 ‘텍사스 로드하우스’의 창업자가 만든 수제버거 전문점이다.
미국에서 인디애나, 켄터키 등 남부와 중동부 주를 중심으로 11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풍부한 육즙과 깊은 풍미를 앞세워 미국에서도 점차 사업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현대그린푸드와 손잡고 한국에 진출함으로써 미국 이외 국가에 첫 매장을 열게 됐다.
국내에서 프리미엄 버거 열풍이 일고 있다. 이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눈여겨본 대기업들이 연이어 해외 유명 프리미엄 버거 브랜드를 한국에 들여와 점포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SPC의 ‘쉐이크쉑버거’, 한화갤러리아의 ‘파이브가이즈’, BHC의 ‘슈퍼두퍼’ 등이 대표 격이다. 이번에 현대그린푸드까지 재거스를 들여오면서 국내 프리미엄 버거 시장을 둘러싼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국내에서 프리미엄 버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함에 따라 이를 새로운 수익 사업으로 키워내겠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목표다.
이번에 현대그린푸드가 론칭한 재거스만 봐도 대표 메뉴인 ‘크레이지 굿 치즈버거’의 단품 가격은 1만3100원에 달한다. 여기에 5300원을 추가해야 감자튀김과 탄산음료가 포함된 세트메뉴를 구매할 수 있다. 맥도날드, 롯데리아, 버거킹 등의 기존 패스트푸드 햄버거 브랜드의 세트 가격이 1만원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금액이 약 두 배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프리미엄 버거에 선뜻 지갑을 열고 있다. 신선하고 질 좋은 재료를 사용한 차별화된 맛과 해외에서 쌓아올린 브랜드 파워를 앞세운 프리미엄 햄버거 가게는 문을 열었다 하면 이를 맛보기 위한 방문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다. 이번에 현대그린푸드가 재거스를 들여온 것도 이 같은 업계 트렌드를 파악한 뒤 내린 결정이다.
한국에서 프리미엄 버거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한 건 2016년부터다. 허영인 SPC그룹 회장의 차남인 허희수 SPC 부사장이 파이브가이즈, 인앤아웃과 함께 ‘미국의 3대 버거’로 불리는 쉐이크쉑을 국내에 들여온 것이다. 쉐이크쉑은 한국 론칭 전부터 이미 유명했다. 블로그나 SNS 등을 통해 ‘뉴욕에 가면 꼭 들러야 할 햄버거 맛집’으로 소문이 났다.
멀리 해외에 나가야 맛볼 수 있던 쉐이크쉑이 서울 강남에 첫 문을 열자 소비자들이 보인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햄버거 하나를 사기 위해 3~4시간 넘게 줄을 서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국내 SNS는 쉐이크쉑 관련 인증샷과 해시태그로 도배가 됐다. SPC에 따르면 오픈 초기 쉐이크쉑 강남점의 하루 평균 판매량은 3500개가량이었다. 입점 1년 만에 글로벌 매장 가운데 매출 1위를 달성했다. 한국에서 쉐이크쉑의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SPC는 프리미엄 버거가 가격대는 높지만 건강하고 신선한 재료를 사용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시장을 공략했으며 큰 성공을 거뒀다. 한 업계 관계자는 “프리미엄 버거의 인기로 ‘정크푸드’의 대명사였던 햄버거에 대한 인식도 ‘웰빙푸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첫 오픈했을 당시만큼은 아니지만 쉐이크쉑의 인기는 여전하다. 현재 전국에서 운영 중인 쉐이크쉑 매장은 총 29개다. SPC는 처음 쉐이크쉑을 가지고 올 때 2025년까지 25개점을 내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를 훌쩍 뛰어넘었다.
지난해 쉐이크쉑의 월매출은 약 90억원 이상으로 추정된다. 연간으로 따지면 1000억원이 넘는다. 덩치가 거치자 결국 지난해 말 SPC는 쉐이크쉑 한국사업부를 물적 분할해 ‘빅바이트컴퍼니’를 신설하기에 이르렀다.
한화갤러리아는 미국에서 쉐이크쉑의 강력한 라이벌로 꼽히는 파이브가이즈의 한국 운영권을 따내며 2023년 첫 매장을 오픈했다. 쉐이크쉑과 마찬가지로 출시 전부터 큰 화제몰이를 하며 단숨에 시장 안착에 성공했다. 한화그룹 3세인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직접 나서 사업을 진두지휘하며 현재 5개까지 매장 수를 늘렸다.
치킨 업계 1위 BHC도 새 성장동력으로 프리미엄 버거를 낙점했다. 2022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기반의 유명 햄버거 브랜드 슈퍼두퍼를 한국에 들여왔다. 현재 슈퍼두퍼 점포 수는 총 3곳이다.
최근엔 현대그린푸드까지 프리미엄 버거 시장 경쟁에 참전했다. 물론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현대그린푸드의 경우 아직 완전하게 프리미엄 버거 시장에 발을 내디뎠다고 보긴 어렵다. 재거스 1호점이 미군기지 내에 입점해 있어 국내 소비자들은 방문이 불가능하다. 다만 업계에서는 조만간 현대그린푸드가 서울 및 수도권 주요 상권으로 재거스 점포를 확장해나갈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현대그린푸드가 앞서 미국 1위 스테이크 전문 브랜드 ‘텍사스 로드하우스’를 한국에 선보였을 때에도 우선 평택 미군기지에 1호점을 낸 뒤 차차 일반인들도 이용할 수 있게 점포를 확장해 나갔기 때문이다. 현재 텍사스 로드하우스는 전국에 8개 점포가 운영 중이다.
재거스도 이와 비슷한 확장 전략을 전개할 전망이다. 현대그린푸드의 행보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재거스의 맛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미국 본사에 조리 인력까지 직접 보내 교육을 받게 할 정도로 심혈을 기울였다. 현지의 맛을 그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다. 모든 재료도 미국에서 직접 공수해 사용한다. 현대그린푸드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공개할 수 없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을 살펴 매장 수를 늘려나갈 것”이라고 했다.
단가가 높은 프리미엄 버거가 인기를 끌며 한동안 정체됐던 햄버거 시장 규모도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2020년까지 2조원대였던 햄버거 시장 규모는 지난해 5조원까지 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햄버거 시장의 무게추가 프리미엄으로 기울자 가성비만을 앞세웠던 맥도날드, 버거킹 등의 브랜드도 프리미엄급 햄버거를 내놓고 있다. 예컨대 버거킹은 올해 초 고급 치즈와 패티를 사용한 2만원대 신메뉴를 선보이기도 했다.
프리미엄 버거 열풍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외식시장에 갑자기 등장해 반짝 돌풍을 일으키다 사라지고 있는 마라탕, 탕후루와 달리 햄버거는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이 간편한 식사로 즐겨왔다”며 “최근에는 프리미엄 버거가 등장하면서 채소와 밀가루, 단백질 등 영양소를 고루 갖춘 ‘탄탄지’ 메뉴로도 주목받고 있다”고 했다.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유명 햄버거 브랜드 인앤아웃이 직접 한국에 진출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며 국내 첫 수제버거 전문점으로 한때 인기를 끌었던 크라제도 다시 매장을 열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크라제는 1998년 한국 최초로 프리미엄 버거 전문점을 열고 한때 반짝 인기를 누렸으나 무리한 확장과 신규사업 실패 등으로 모든 점포의 문을 닫았다. 현재는 LF 소속으로 가정간편식(HMR)만 출시하며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개인들도 프리미엄 버거를 아이템 삼아 창업에 뛰어드는 추세다. 최근 주요 상권들을 가보면 곳곳마다 프리미엄 버거집 간판이 내걸린 것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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