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 세계 문학의 수용자에서 전파자로” [책이 돌아왔다②]

입력 2024-10-20 10:22   수정 2024-10-20 10:34

[커버스토리 : 책이 돌아왔다②]
“한국문학이 세계 문학의 수용자에서 전파자로 확정되는 역사에 섰습니다.” 오형엽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겸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은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이같이 평가했다.

2010년대 이후 한국이 세계 문화의 주역에 섰지만 이번 노벨문학상으로 명실상부 한국문학이 K콘텐츠와 함께 세계적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다.
한국인에게 노벨상은?
지구상 6대 부문에서 인류 문명 발달에 기여한 이에게 수여되며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전 세계 모든 이들이 노리는 상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인에게 노벨상은 조금 더 특별한 의미다.

무려 1923년부터 한국인의 ‘노벨상 집착’이 기록으로 나타나는데 당시 동아일보는 “세상에 명예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노벨상을 타는 것 같이 명예로운 일은 없다. 조선인으로서 노벨상을 탈 만한 사람이 출생하기까지는 지식계급이 아직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겠다”고 썼다.

이후엔 역대 대통령마다 ‘노벨상’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20년 전 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화상 수상 이후 번번이 낙방했다. 매년 10월 노벨상 수상 발표 시즌이면 ‘한국에선 왜 노벨상이 안 나오나’가 아고라에 올랐다. 한국이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의 강국으로 발돋움했다지만 노벨상이 갖는 의미가 선진국의 또 다른 증표와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한강 작가(이하 한강)의 문학상 수상에 윤석열 대통령은 “대한민국 문학 사상 위대한 업적이자 온 국민이 기뻐할 국가적 경사”라고 했고 문재인 전 대통령은 “드디어 이런 날이 오는구나 싶다”고 축하했다.

국민들도 내일처럼 기뻐했다. 한강은 문학동네 편집부를 통해 전한 서신에서 “하루 동안 거대한 파도처럼 따뜻한 축하의 마음들이 전해져온 것도 저를 놀라게 했다.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전했다.
첫 노벨문학상, 한강은?
한강은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소설가였던 아버지 한승원은 글로 생계를 꾸리기 힘들었고 그녀의 가족은 어린 시절 자주 이사를 다녔다. 한강은 뉴욕타임스와의 2016년 인터뷰에서 “어린아이에게는 힘든 경험이었지만 책이 주변에 있어 괜찮았다”고 회상했다.

한강이 9살 때 가족은 서울로 이사했고 불과 4개월 후 그의 고향 광주에서 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 이 사건에서 정부군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고 수백 명이 사망했다.

한강은 이 사건을 직접 목격하지는 않았지만 민주화운동에서 학살된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첩 하나가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계기가 됐다고 토로했다. 한강은 “그때 저는 열세 살이었다”며 “그 사진첩은 제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하게 된 비밀스러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때부터 간직해온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세 번째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부터 탐구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2004년에 출간된 ‘채식주의자’는 한 여자가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멀리하고, 그러면서 죽음에 다가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그는 “인간은 선로에 떨어진 어린아이를 구하려고 목숨을 던질 수도 있는 존재이지만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잔인한 일을 저지르기도 한다”며 “인간성의 스펙트럼에 대한 고민에서 소설이 시작한다”고 말했다.

반면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와 말을 잃은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섯 번째 장편소설 ‘희랍어 시간’은 다른 질문을 던진다. 한강은 “우리가 이런 세계를 껴안고 살아가야 한다면 그 삶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소설”이라며 “어둠 속에서 여자가 남자의 손바닥 위에 검지로 글씨를 쓰며 대화하는 장면은 제가 써왔던 것 중에 가장 환한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그는 다시 인간의 폭력성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2014년 펴낸 소설은 5·18 광주 민주화운동이 진압된 후 시위대에 있었던 친구의 시신을 찾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담은 ‘소년이 온다’다.

그는 “저에게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던 그 시간을 정면으로 통과하지 않으면 어디로든 갈 수 없다는 절박한 생각에 소설에 매달렸다”고 털어놨다. 그는 “광주는 어떻게 보면 민주화운동에 국한된 것이 아닌 광범위한 뜻이 있는 보통명사가 됐다”며 “광주에서 시작해 인간의 존엄성으로 나아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강의 작품은 출간 직후에도 완판될 만큼 인기를 얻었지만 모두에게 호감을 얻는 소설은 아니었다. 일부 책들은 처음에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얻었고 특히 ‘채식주의자’는 “매우 극단적이고 기이한” 작품으로 평가받았다고 한강은 말했다.

2016년 ‘채식주의자’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하고 2018년 ‘흰’으로 같은 상 최종후보에 오른 한강 작가는 2021년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로 다시 컴백했다. 5월 광주의 이야기를 담은 ‘소년이 온다’와 짝을 이루는 제주 4·3사건을 다룬 소설이다. 그가 1990년대 제주에 3개월 정도 내려가 살던 때 이웃 할머니와 동네를 걷다 제주 4·3의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작품의 바탕이 됐다.

인간의 폭력성 동시에 숭고함이 그의 글을 따라다녔지만 그는 당시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이 소설은 지극한 사랑에 관한 소설”이라며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는 생각을 ‘소년이 온다’ 이후로 하게 됐고 이 소설을 쓰면서 더 깊게 생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그녀는 20년 넘게 소설과 시를 발표해왔지만 영어로 번역되기 전까지 국제적인 인정을 받지 못했다. 번역가 데보라 스미스가 채식주의자의 첫 10페이지를 영국 출판사에 보낸 후 출간됐다. 2016년 영어판이 출간되며 찬사를 받은 이후 채식주의자는 페미니즘 성향의 실험적 소설 번역 붐을 일으켰다.
왜, 한강인가
“역사적 트라우마를 직시하고 인간 생명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강렬한 시적 산문.”

노벨상위원회는 한강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유를 이와 같이 설명했다.

전문가들이 꼽는 이유도 이와 같다. 크게 세 가지다. 주제적 측면, 형식적 측면, 미학적 측면이다.

첫째는 그의 주제다. 2020년 영화 ‘기생충’으로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은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고 수상 소감을 밝히며 할리우드의 중심에서 우리나라 사람 최초로 트로피를 높이 들어 올렸다.

한강의 작품도 그렇다. 그는 한국인이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5월 민주화운동과 제주 4·3사건을 다뤘지만 그 특수성에는 인간의 폭력성이란 보편성이 있었다. 일본 유력 일간지인 아사히신문은 10월 13일 사설에서 한강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며 우크라이나와 중동 가자지구 등지에서 지금도 무고한 목숨이 폭력에 의해 사라지는 와중에 “전쟁, 격차, 분단, 고뇌로 가득한 세계에서 점점 더 국경을 넘어 보편성을 지닐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강 작가가 수상 후 큰 잔치를 열려 했던 아버지를 만류하며 “세계에 많은 고통이 있고 우리는 좀 더 조용하게 있어야 한다. 그게 내 생각이어서 잔치를 열지 말라고 한 것”도 이와 상통한다.

둘째는 형식이다. 그의 작품의 중요한 특징은 역사적 사건을 사회적인 담론이나 사건으로 재구성하는 전통적 재현 방식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건을 인간의 깊은 심연으로 끌어내려서 인간의 본성을 직시하게끔 한다는 점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성의 스펙트럼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옥스퍼드대 문학 교수인 앙키 무케르지는 한강의 작품을 거의 20년 동안 해마다 가르쳤다고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그는 “한강의 글은 정치적”이라며 “신체의 정치, 성별의 정치, 국가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의 정치 등 모든 것이 정치적이지만 문학적 상상력을 절대 놓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설교조가 아닌 매우 유쾌하고 기발하며 초현실적”이라고 덧붙였다.

셋째는 강렬한 시적 산문, 즉 그의 미학이다. 주제 의식은 무겁고 진중하지만 문체는 잔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여성적이다. 오형엽 교수는 “작품의 주제의식과 시적 산문이라는 문체가 사실 조화를 이루기 쉽지 않다”며 “근데 이 둘이 충돌하면서 오히려 한강만이 가지는 특유의 매력이 발산됐다”고 설명했다.
한강의 기적과 열풍
한국인 첫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강 본인도 놀랄 만한 열풍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강의 책은 노벨상 수상 후 엿새 만에 누적 기준으로 100만 부 넘게 팔렸다. 출간이나 수상 후 이처럼 빠른 속도로 판매량이 증가한 건 출판계에 유례가 없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출간 두 달여 만에 60만 부를 돌파하면서 파죽지세의 기세를 이어갔지만 100만 부를 돌파하기까지는 8개월이 걸렸다.

외신도 한강 열풍에 주목하고 있다. 한강의 수상을 계기로 주변부에 머물렀던 한국문학이 세계 문학의 중심부에 진출하는 전기가 마련될 것이란 전망이다. AFP는 “오스카에 이어 TV 드라마와 K팝 스타들이 세계 시장을 점령했고 이제는 노벨문학상마저 가져갔다”면서 한류가 어엿한 세계 문화 속의 ‘메이저’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한강, 무엇을 읽을까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의 작품이 궁금하지만 어떤 책부터 읽어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노벨상을 주관하는 스웨덴 아카데미의 스티브 셈샌드버그가 추천하는 한강의 대표작을 살펴볼 만하다.

<채식주의자>

채식주의자는 201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수상하며 한강의 국제적인 돌파구가 된 소설이다. 이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한 중년 여성의 이야기이다. 여주인공은 소설 속에서 침묵을 지키며 그녀의 이야기는 남편, 시동생, 언니의 시각을 통해 세 가지 다른 관점으로 전개된다. 이들의 반응은 혐오에서 성적 집착, 질투에 이르며 가족에게 수치심을 안겨준 그녀의 침묵과 결단력에 선명하게 대비된다. 이를 통해 한강은 직업 중심적이고 엄격한 사회 규범에 집착하는 가부장적인 사회를 날카롭게 묘사한다.

<희랍어 시간>

짧지만 심리적으로 깊이 있는 소설은 외부 세계와의 중요한 연결고리를 잃어가는 두 사람의 친밀한 초상화다. 가정 폭력을 겪은 여주인공은 말을 잃고 남주인공은 유전성 질환으로 시력을 잃어간다. 여자는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고대 그리스어를 배우며, 그녀의 그리스어 선생님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다. 이 소설은 두 사람이 서로의 상실감을 통해 공감하며 소통하려는 과정을 그린 섬세한 사랑 이야기이자 언어와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소년이 온다>

‘소년이 온다’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벌어진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다층적인 시점을 통해 많은 인물들의 삶을 그린다. 한강은 가해자와 피해자, 생명과 죽음의 경계가 흐려지는 모습을 묘사하며, 독자에게 과거와 계속해서 마주하며 살아가는 의미를 새롭게 전달한다.
한강의 작품들은 우리에게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다시 경험하게 하며, 그녀의 정직하고 경이로운 문학을 통해 우리는 삶의 복잡한 현실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정채희 기자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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